카카오는 순자산 36%에 'AI'라는 이름을 붙였다. AI가 지우는 것도 직업이 아니라 계단의 첫 칸이다
오늘 오전, 두 숫자가 서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오늘 아침에 뉴스 두 개를 같은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 봤다. 하나는 카카오가 회사를 둘로 쪼갠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 취업자 수가 45개월 연속 줄었다는 통계다. 붙여놓은 이유는 단순했다. 기업이 AI를 이유로 몸을 바꾸는 장면과 그 몸에 들어갈 사람이 줄어드는 장면이 같은 원인에서 나온 건지 보고 싶었다. 절반만 맞았다. 그리고 확인하는 동안 찾지도 않았던 질문 하나가 따라붙어서 글이 끝까지 불편해졌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2026년 8월 21일 카카오 이사회가 인적분할을 결의했다. 신설법인 이름은 카카오AI, 존속법인 이름은 카카오X다. 분할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으로 카카오AI 0.36, 카카오X 0.64. 카카오AI는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AI·광고·커머스를 묶는 "AI 코어 컴퍼니"를 자임했고 2030년까지 매출 6조 원 이상을 목표로 걸었다. 12월 17일 임시주주총회, 2027년 1월 1일 분할 완료, 1월 27일 재상장이 예정된 일정이다.
같은 날 오전 10시 50분, 카카오 주가는 전날보다 13.18% 내린 3만 3,600원까지 밀렸다. 종가는 7.49% 하락한 3만 5,800원이었다.
한쪽에서는 회사가 AI에 몸을 걸었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발표를 듣고 주식을 던졌다. 이 어긋남이 며칠 전부터 머리에 걸려 있던 다른 숫자와 붙었다. 45개월. 15~29세 청년 취업자 수가 전년 같은 달보다 줄어든 연속 개월 수다. 2026년 7월 한 달만 19만 1,000명이 줄었다.
기업은 AI를 이유로 몸을 바꾸고, 그 몸 안에서 청년이 들어갈 자리는 45개월 연속 줄고 있다. 이 글은 그 두 흐름이 같은 지점에서 만나는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답하기 싫은 질문을 붙여야 한다.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건 2040년 무렵이다. 그 아이에게 무슨 직업을 권해야 하나.
미리 말해두면, 나는 그 목록을 내놓지 못한다. 글의 나머지는 왜 못 내놓는지, 그리고 목록이 아니라면 무엇을 붙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AI에 집중"이라는 발표에서 AI가 받은 자산은 36%였다
분할비율부터 보자. 카카오AI 0.36, 카카오X 0.64. 회사 이름에 AI를 붙인 쪽이 순자산의 36%를 가져간다. 나머지 64%는 테크핀(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페이증권)·콘텐츠(카카오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모빌리티(카카오모빌리티)를 묶은 카카오X로 간다. 매출 목표도 카카오X가 2030년 10조 원 이상으로 카카오AI의 6조 원보다 크다.
그러니까 이 분할은 "AI 사업부를 키운다"가 아니다. 자산 기준으로는 AI 쪽이 소수다.
그런데 카카오AI가 가져가는 36%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카카오톡, 광고, 커머스. 국내 메신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앱과, 그 앱에 붙어 이미 매출을 만들고 있는 두 사업이다. 신규 사업이 아니라 이 회사의 본체다.
카카오가 오늘 한 일은 새 AI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돈을 벌고 있던 카카오톡 묶음을 'AI'라는 이름 아래로 재분류한 것에 가깝다. 보도자료가 든 분할 사유도 그 방향을 정확히 가리킨다. "사업 규모가 확대되고 복잡도가 심화되면서 하나의 의사결정 체계로는 각 사업별 전략을 속도감 있게 실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모델 이야기는 없다. 데이터, GPU, 연구 인력 이야기도 없다. 의사결정 체계와 속도 이야기다. 분할이 바꾸는 것은 AI 역량이 아니라 자본배분의 단위와 결재선의 길이다.
이 구분은 나중에 아이 진로 얘기로 넘어갈 때 다시 쓸 것이므로 한 번 더 못을 박아두자. 라벨을 다시 붙이는 일과 역량을 새로 얻는 일은 다르다. 앞의 것은 이사회 하루로 되고, 뒤의 것은 안 된다.
시장이 팔았던 이유는 AI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럼 시장은 왜 던졌나. AI 전환을 의심했다면 그것도 하나의 해석이지만, 기사에 나온 반응은 다른 데를 가리킨다.
2026년 8월 국내외 증권사 SOTP 컨센서스 평균 기준 카카오그룹의 잠재가치는 34조 2,000억 원이고, 최근 3개월 평균 시가총액은 16조 8,000억 원이었다. 17조 4,000억 원의 격차다. 회사를 부분의 합으로 계산하면 34조인데 시장은 17조로 값을 매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분할은 교과서적인 선택이다. 카카오AI를 따로 세우면 메신저·광고·커머스 묶음이 AI 회사의 배수를 받을 수 있고, 카카오X는 투자·자회사 관리 회사로 별도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카카오가 이 카드를 처음 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과거에 사업 부문 분할과 계열사 상장을 반복했고, 그렇게 상장한 계열사 대부분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상태다. 같은 논리로 쪼갠 회사들의 결과를 주주들이 이미 봤다. 그래서 발표 당일의 13%는 AI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분할이라는 수단에 대한 학습된 반응으로 읽는 쪽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카카오는 이미 AI를 하고 있었다. AI 앱 카나나를 내놨고, 카카오톡을 AI 비서 방향으로 개편했다. 개편 후 일평균 체류시간은 24분에서 26분으로 늘었고, 'ChatGPT for Kakao'는 출시 10일 만에 이용자 200만 명을 넘겼다. 나쁜 숫자는 아니다. 그런데 카나나의 이용자 지표와 수익화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같은 시기에 나왔다.
늘어난 체류시간은 2분이다. 이 2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가 이 회사의 지금 상태를 잘 보여준다. 8%가 늘었다고 하면 성장이고, 24분에서 26분이라고 하면 거의 제자리다. 같은 사실이다.
그러니 "카카오는 왜 AI에 집중하는가"의 정직한 답은 이렇다. AI를 새로 잘하게 되려고가 아니다. 이미 갖고 있던 자산을 AI라는 이름으로 다시 값 매기려고다. 그게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다. 자산의 값이 잘못 매겨져 있다고 판단한 회사가 구조를 바꾸는 건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다. 다만 그 판단은 역량 획득과 다른 종류의 일이고, 이 둘을 섞으면 다음 문단부터 나오는 노동시장 얘기에서 원인을 잘못 짚게 된다.
그래도 카카오톡을 AI 회사라고 부르는 데는 근거가 있다
앞에서 이 분할을 라벨 갈이에 가깝다고 썼다. 그 판단은 유지하지만, 반대쪽 논리도 세워두는 게 공정하다. 카카오가 왜 하필 AI를 이름으로 골랐는지에는 나름 단단한 근거가 있다.
지금 AI 산업의 구조를 보면, 모델 자체는 빠르게 흔한 물건이 되고 있다. 몇 달 단위로 상위 모델이 바뀌고, 어제의 최고 성능이 오늘 오픈 가중치로 풀린다. 그런 시장에서 값이 남는 자리는 모델이 아니라 모델을 사람의 손 안에 배달하는 경로다. 카카오가 가진 게 정확히 그거다. 국내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하루에 여러 번 여는 앱 하나. 보도자료의 표현대로 "에이전틱 AI 시대의 차별화된 이용자 경험과 수익모델"을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기술이 아니라 이 접점이다.
한 회사가 5,000만 이용자를 AI 에이전트 사용자로 만들겠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는 국내에 몇 개 없다. 모델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된다. 'ChatGPT for Kakao'가 열흘에 200만 명을 모은 방식이 이미 그 증명이다. 남의 모델을 자기 채널에 얹어도 숫자가 나온다.
그러니까 카카오AI라는 이름의 실질은 "우리는 AI를 연구한다"가 아니라 "AI가 최종 사용자에게 닿는 마지막 구간을 우리가 갖고 있다"에 가깝다. 그 자산을 광고·커머스와 한 법인에 묶어 놓은 것도 앞뒤가 맞는다. 대화 맥락을 읽어 선물하기로 연결한다는 시나리오는 AI 기술 발표가 아니라 광고·커머스 매출 시나리오다.
이 근거를 인정하고 나면 아까의 판단이 더 선명해진다. 카카오가 파는 것은 AI 역량이 아니라 유통망의 재평가다. 그리고 유통망은 이미 있었다. 오늘 새로 생긴 게 아니다. 회사가 자기 자산을 다시 값 매기는 일과, 그 자산을 만드는 사람을 새로 키우는 일은 완전히 다른 항목이라는 얘기로 다시 돌아온다.
채용 시장의 숫자들은 '직업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 쪽 숫자를 보자.
2026년 1분기 조사에서 신입직만 채용하는 기업은 2.6%였고,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2025년 1~11월 기준 전년 대비 43% 급감했다. 전체 신규채용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팬데믹 이전(2014~2019년) 평균 36.9%에서 최근(2024~2026년) 29.3%로 내려왔다. AI 고노출 업종에서 일을 잃고 미취업 상태인 사람은 2016~2019년 3만 7,000명에서 2022년 7월~2026년 6월 4만 9,000명으로 약 32% 늘었다.
이 숫자들을 한 줄로 줄이면 "AI가 일자리를 없앴다"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줄이면 두 가지를 놓친다.
먼저 45개월이라는 기간이 AI보다 길다. 2026년 7월에서 45개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2022년 10월 무렵이다. ChatGPT 공개는 2022년 11월 말이었다. 청년 취업자 감소가 시작된 시점이 생성 AI의 대중화보다 앞선다. 인구 구조, 경기, 정년 관련 압력, 경력직 선호로의 전환이 이미 진행 중이었고 AI는 그 흐름에 나중에 올라탔다. AI 하나로 45개월을 설명하려는 글은 그 지점에서 이미 틀렸다.
그리고 이게 이 글의 축인데, 숫자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대상이 '직업'이 아니다. 신입직만 채용하는 기업이 2.6%라는 건 회사가 그 직무를 없앴다는 뜻이 아니다. 그 직무를 경력자로 채운다는 뜻이다. 마케터가 사라진 게 아니고 신입 마케터 자리가 사라졌다. 개발자가 사라진 게 아니고 1년차 개발자를 뽑아 가르치는 예산이 사라졌다.
사무직에서 실제로 무엇이 넘어갔는지를 나열해 보면 이 구분이 더 잘 보인다. 회의 녹취를 정리해 요약본으로 만드는 일, 여러 부서에서 온 엑셀을 하나로 합치고 서식을 맞추는 일, 외부 문서에서 필요한 항목만 뽑아 표로 옮기는 일, 들어온 문의를 유형별로 1차 분류하는 일, 보고서 초안의 문장을 다듬는 일. 이 목록의 공통점은 둘이다. 정답이 있고, 확인이 쉽다. 그래서 AI에 넘기기 좋은 과업이고, 동시에 신입에게 맡기기 좋은 과업이었다. 넘기기 좋은 기준과 배우기 시작하는 자리의 기준이 같았던 것이 지금 벌어지는 일의 핵심이다.
한국 노동시장에는 여기에 겹쳐 있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대규모 신입 공채로 뽑아 사내에서 키우는 모델이 오래 표준이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은 AI가 오기 전부터 이미 수시·경력 채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즉 '가르쳐서 쓰는' 경로가 먼저 얇아진 상태에서 AI가 그 위에 얹혔다. 신입만 채용하는 기업 2.6%라는 숫자를 AI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 2.6%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있던 흐름과 새 도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면 되돌리는 힘이 두 배로 필요하다.
기사 제목 하나가 이걸 그대로 말한다. 「가뜩이나 신입 안 뽑는데 AI까지…사라지는 청년층 '경력 사다리'」. 사라지는 건 사다리다. 사다리가 걸려 있던 벽은 그대로 있다.
사라지는 게 계단의 첫 칸이라는 직접 증거
'경력 사다리'는 비유지만, 이걸 데이터로 분리해낸 연구가 있다. 스탠퍼드 디지털 이코노미 랩의 Erik Brynjolfsson, Bharat Chandar, Ruyu Chen이 미국 ADP 급여 데이터로 쓴 「Canaries in the Coal Mine?」이다.
핵심 결과는 이렇다. 생성 AI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뒤, AI 노출도가 가장 높은 직종의 22~25세 초기 경력자 고용이 상대 기준으로 13% 감소했다. 기업 단위 충격을 통제한 뒤의 값이다. 회사 자체가 어려워져서 사람을 덜 뽑은 효과를 빼고도 남는 감소다. 최신 판본에서는 그 격차가 반사실적 추정치 대비 19%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같은 데이터에서 결정적인 대조가 나온다. 경력자에게는 AI 노출도에 따른 고용 격차가 관찰되지 않았다. 같은 직종, 같은 회사, 같은 기간이다. 다른 건 나이와 연차뿐이다.
직업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이렇게 안 나온다. 그럼 경력자 고용도 같이 빠져야 한다. 젊은 층에서만 빠지고 경력자에게서는 안 빠진다는 건, AI가 먹은 것이 그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직업 안에서 연차 낮은 사람에게 배정되던 작업이라는 얘기다. 저자들이 초기 경력자를 광산의 카나리아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 있다. 갱도가 무너지기 전에 가스에 먼저 반응하는 위치라는 것이다.
번역 시장이 이 구조의 가장 깔끔한 표본이다. 경향신문이 취재한 번역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감 자체의 감소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대신 형태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번역을 통째로 맡겼는데, 이제는 기계가 만든 1차 번역물을 주면서 '포스트 에디팅'만 해달라고 한다.
초벌이 사라졌다. 번역가는 안 사라졌다.
그런데 초벌은 정확히 신입이 하던 일이다. 신인 번역가가 단가 낮은 초벌을 몇백 건 치면서 문장 감각을 만들고, 그 감각으로 나중에 포스트 에디팅과 감수를 하는 경로가 있었다. 앞 칸이 없어지면 뒤 칸은 남아도 올라갈 방법이 없다. 학교들도 이걸 읽은 것 같다. 같은 기사에 이화여대가 '통번역과 인공지능' 수업을 개설했고, 성균관대 번역·테솔대학원이 언어·AI대학원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사실이 나온다. 번역이라는 직업을 버린 게 아니라 진입 경로를 다시 설계하려는 움직임이다.
나는 그 계단을 올라간 다음 계단을 치웠다
여기서 남의 얘기로만 쓰면 정직하지 않다. 이 블로그를 만드는 방식이 바로 그 초벌 제거다.
이 사이트의 글은 리서치·초고·편집·검수 단계를 나눠 자동화한 하네스로 만든다. 그 안에서 AI에 넘긴 작업이 무엇인지 나열해 보면 이렇다. 자료 검색과 1차 정리, 초고 작성, 오탈자와 문장 다듬기, 체크리스트 대조.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하던 일의 목록과 거의 겹친다. 회의록 정리, 자료 취합, 초안 만들어 선배에게 빨간 펜 받기.
내 커밋의 92%가 AI 도구 위에 얹혀 있다는 것을 세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 숫자를 의존도 리스크로 읽었는데, 오늘 다시 보면 다른 것도 보인다. 그 92%가 예전이라면 여러 사람의 여러 연차에 걸쳐 나뉘던 작업이다.
내가 이 하네스를 굴릴 수 있는 이유는 AI 초벌이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서다. 문장이 매끄러운데 사실이 어긋나는 순간, 논지가 반대로 뒤집히는 순간, 근거가 상관관계인데 인과처럼 적힌 순간을 잡아낸다. 그 감각은 초벌을 수천 번 직접 해봤기 때문에 생겼다. 원가는 이미 지불됐고, 지금 나는 그 자산의 이자로 산다.
오늘 분할 기사와 45개월 통계를 같은 화면에 놓고 불편했던 지점이 여기였다. 다음 사람이 그 원가를 지불할 자리가 없다. 나는 사다리를 올라간 다음 사다리를 접어서 창고에 넣었다. 도구 몇 개를 세팅해서 혼자 그렇게 했다. 회사가 AI 전환을 선포하지 않아도 AI 격차는 옆자리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내가 지난달에 쓴 글의 요지였는데, 이 얘기에는 세대 판본도 있다. 격차는 회사 사이보다 연차 사이에서 먼저 벌어진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흔히 나오는 위로를 한 번 의심해야 한다. "AI가 잡일을 없애주니 신입도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려면 회사가 중요한 일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잡일은 그 검증을 값싸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검증 장치를 없애고 위험은 그대로 두면, 회사의 합리적 선택은 신입을 뽑지 않는 것이다. 신입직만 채용하는 기업 2.6%라는 숫자가 그 선택의 결과로 보인다.
"AI 시대엔 이 직업" 목록이 구조적으로 틀리는 이유
이쯤에서 아이 얘기로 넘어가고 싶은데,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례가 하나 있다.
2016년 제프리 힌턴은 영상의학과 전문의 양성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딥러닝이 5~10년 안에 인간의 영상 판독을 능가한다는 것이 "완전히 명백"하다고 했다. 이 예측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가장 명확한 근거를 들고 한 것이었다. 판독은 이미지 분류 문제고, 이미지 분류는 딥러닝이 인간을 넘어선 첫 영역이었다.
10년이 지났다. 2025년 초 기준 미국에서 영상의학과 공석이 4,000개를 넘었고 채용에 몇 달이 걸린다. 메이오 클리닉의 영상의학과 인원은 힌턴의 발언 이후 55% 늘어 400명을 넘겼고, 평균 연봉은 약 57만 1,000달러까지 올랐다. 힌턴 본인도 예측이 틀렸다고 인정했다.
왜 틀렸는지가 중요하다. 기술 예측이 틀린 게 아니다. AI는 실제로 영상 판독을 잘하게 됐다. 틀린 건 직업의 범위에 대한 판단이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일은 판독만이 아니다. 다른 과 의사와 협진하고, 치료 방향 결정에 참여하고, 조직검사와 중재 시술을 한다. 판독은 그 묶음의 한 조각이었다. 조각 하나가 자동화되자 나머지 조각을 처리할 사람의 시간이 오히려 귀해졌다.
여기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있다. 직업은 과업의 묶음이고, AI는 과업 단위로 먹는다. 직업 단위로 미래를 예측하면 해상도가 안 맞는다. "이 직업은 없어진다"와 "이 직업은 안전하다"가 똑같이 틀리는 이유가 같다. 둘 다 묶음을 단위로 세고 있다.
자동화 논쟁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를 하나 더 붙이면 이 얘기가 완성된다. ATM과 은행 창구직원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에 현금인출기가 깔릴 때 창구직원은 사라진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는 지점당 필요한 창구직원이 21명에서 13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지점 운영비가 내려가면서 도시 지역 지점 수가 43% 늘었고, 전체 창구직원 수는 약 50만 명에서 2010년 무렵 60만 명 가까이로 오히려 증가했다. 경제학자 James Bessen이 정리한 이 결과는 이후 "기계가 들어와도 일자리는 늘어난다"는 주장의 표준 근거가 됐다.
그런데 이 사례를 인용할 때 보통 잘리는 뒷부분이 있다. 2010년 이후 모바일 뱅킹이 퍼지면서 창구직원 수는 결국 줄기 시작했다. ATM이 못 한 일을 스마트폰이 했다. 그러니 ATM 이야기의 정확한 교훈은 "자동화는 일자리를 늘린다"가 아니다. 자동화가 과업의 일부만 먹으면 남은 과업의 값이 올라가고, 사람이 하던 몫을 거의 전부 먹는 도구가 나오면 그때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안심의 근거로 30년 쓰이다가 유효기간이 끝난 사례다.
그리고 늘어난 40년 동안에도 일의 내용은 바뀌었다. 현금을 세는 일에서 상품을 권하고 상담하는 일로 옮겨갔다. 직업 이름은 그대로 남았고 안에 든 것이 교체됐다. 아이에게 직업 이름을 권하는 방식이 왜 정보량이 적은지가 여기서도 보인다. 30년 뒤 그 이름이 남아 있다 해도, 그 안에서 하는 일이 지금과 같을 근거는 없다.
그래서 영상의학과 사례를 안심의 근거로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전문의 수요가 늘었다는 사실이 곧 1년차 전공의가 판독을 배우는 과정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별도로 확인해야 하는 다른 질문이고, 앞 절에서 본 구조라면 그쪽이 먼저 얇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직업은 살았는데 입구만 좁아진 상태. 지금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모양이 그쪽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이에게 무슨 직업을 권해야 하나
이 질문에 목록으로 답하는 글이 많다. AI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프롬프트 전문가, 로봇 정비, 돌봄, 심리상담. 나는 그 목록을 못 쓴다. 앞 절이 그 이유다. 목록을 쓰는 순간 직업 단위로 세게 되고, 2016년의 힌턴과 같은 종류의 실수를 하게 된다.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많이 알았고 훨씬 명확한 근거가 있었는데도 틀렸다.
목록 대신 남는 건 질문 세 개다. 확신 있는 답이 아니라, 지금까지 본 구조 위에서 성립하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첫째, 계단의 첫 칸을 밖에서 만들 수 있나. 회사가 3년짜리 수련 자리를 안 준다면 그 3년의 대체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공개된 산출물, 끝까지 굴려본 프로젝트, 남이 검증할 수 있는 기록. 취미가 아니라 이력 대체물로서다. 나도 개인 프로젝트 네 개를 AI와 굴리면서 네 번 같은 자리에서 막혔던 기록을 남긴 적이 있는데, 막힌 기록이 성공 기록보다 이력으로 더 쓸 만했다.
그런데 이 조언에는 정직하게 붙일 단서가 있다. 스스로 3년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돈이 있는 집 아이에게 유리하다. 회사가 주는 수련은 급여를 받으면서 하는 것이고, 스스로 만드는 수련은 급여 없이 하는 것이다. 경력 사다리가 개인 자산으로 대체되면 그건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 계층 문제가 된다. 이 조언은 그 불공정을 해결하지 못한다. 각자 대처하라는 말에 가깝다.
둘째, AI 출력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나. 이건 앞에서 내 경우로 설명한 능력이다. 그리고 곧바로 정직한 반론이 붙는다. 초벌을 일감으로 해볼 수 없는 사람이 검증 감각을 어디서 얻나.
내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다. 일감으로 못 하면 훈련으로 해야 한다. 즉 효율이 나쁜 것을 일부러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AI에 물으면 3초에 나오는 것을 30분 들여 직접 해보는 시간. 번역기를 끄고 한 단락을 직접 옮겨보는 시간. 계산기 없이 값을 어림하고 나중에 대조하는 시간. 어른이 아이에게 사줄 수 있는 게 이 비효율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역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지금 학교가 AI를 어떻게 다룰지 논쟁하는 방식은 대체로 금지냐 허용이냐인데, 실제로 설계해야 하는 건 어느 과업을 일부러 손으로 남길지의 목록이다.
셋째, 몸과 책임이 붙은 일인가. 현장 작업, 돌봄, 시술, 수리, 대면 신뢰가 필요한 일. 이쪽이 상대적으로 늦게 대체될 것이라는 관측은 지금까지의 자동화 패턴과 맞는다. 하지만 이걸 피난처로 부르지는 못하겠다. 로봇 쪽 진전이 걸려 있고, 무엇보다 이 영역의 상당 부분이 임금과 처우가 낮다. "AI가 못 하는 일"이 곧 "괜찮은 일"은 아니다.
세 질문 다음에 하나가 더 있다. 직업을 고르는 주기가 짧아졌다는 사실이다. 한 직업으로 40년을 사는 전제 위에서 진로를 고르는 방식은 이미 유효하지 않다. 그러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직업 이름이 아니라 갈아타는 비용을 낮추는 습관에 가까워진다. 새 도구를 만났을 때 끝까지 만져보는 습관, 모르는 분야의 문서를 읽어내는 습관, 자기가 뭘 모르는지 말할 수 있는 습관. 나는 내 하네스가 반년 만에 낡는 것을 보면서 이 주기 얘기를 실감했다. 반년이다. 40년이 아니고.
이 글이 틀릴 수 있는 세 지점
여기까지 쓰고 나면 확인해야 할 게 남는다.
하나, 스탠퍼드 연구는 미국 데이터다. ADP 급여 데이터 기반이고 미국 노동시장의 구조를 반영한다. 한국은 경력직 선호로의 전환, 정년 관련 압력, 인구 구조가 다르게 얽혀 있다. 22~25세 13% 감소를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면 안 된다. 이 글에서 그 연구를 쓴 이유는 수치를 옮기려는 게 아니라 같은 직종 안에서 연차별로 다르게 빠진다는 구조가 관찰됐다는 점 때문이다. 구조는 옮겨볼 만하고 숫자는 아니다.
둘, 초벌만 사라진다는 관찰은 지금 도구 수준의 함수다. 오늘의 AI는 초벌을 잘 만들고 검증은 잘 못한다. 그래서 검증이 사람 쪽에 남았다. 도구가 검증까지 하게 되면 이 글의 두 번째 조언은 그날 무효가 된다. 검증 능력도 안전지대가 아니라 지금 마침 사람 쪽에 남아 있는 자리다.
셋, 카카오 분할이 실제로 실행 속도를 올릴지 나는 모른다. 발표 당일의 13%는 시장의 의견이고 의견은 자주 틀린다. 이 판단은 2027년 1월 27일 재상장 이후에 숫자로 나온다. 그때 카카오AI가 어떤 배수를 받는지, 카나나의 수익화 지표가 나오는지가 답이다. 나는 지금 그 답을 모르는 상태로 쓰고 있다.
이사회는 하루면 되고, 사다리는 안 된다
오늘 카카오가 한 일은 이렇다. 이미 갖고 있던 자산을 둘로 나눠 한쪽에 AI라는 이름을 붙였다. 순자산 기준 36%다. 결의는 이사회 하루에 끝났고, 나머지는 주주총회와 재상장 일정표에 적혀 있다.
라벨을 다시 붙이는 일은 그렇게 된다. 사다리를 다시 놓는 일은 그렇게 안 된다. 신입 공고가 43% 줄어든 자리에 공고를 43% 되돌려 놓는 결의는 어느 이사회도 할 수 없다. 그건 각 회사가 신입을 가르치는 비용을 다시 지불하겠다고 결정해야 생기는 일이고, AI가 그 비용을 계속 싸게 대체해주는 동안에는 그 결정을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 글은 해결책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라진 것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정도다. 사라진 건 직업이 아니다. 직업 안의 첫 칸이다. 아이에게 "이 직업을 해라"라고 말하는 순간 틀린 단위로 말하는 것이고, "AI를 잘 쓰면 된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이미 원가를 지불하고 얻은 능력을 아이에게 공짜로 넘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카카오AI는 2027년 1월 27일에 시장의 답을 받는다.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2040년쯤 받는다. 그 사이 14년 동안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목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없어진 첫 칸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어 두는 쪽일 것이다. 나는 그게 뭔지 아직 모르고, 이 글에서 제시한 세 가지도 그 자리를 채우기엔 한참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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