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중간관리자는 정말 사라질까? - Jack Dorsey의 조직 실험

밝은 사무실 복도에 열린 문이 연달아 이어지고 맨 끝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장면

회사에서 이런 얘기가 돌았습니다. 경영진이 외부 업체 몇 군데를 둘러보고 왔는데 거기서 본 게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개발자가 AI와 직접 기획을 하고, 기획자가 필요한 부분을 직접 만들고, 디자이너가 개발자를 기다리지 않고 수정해서 빌드까지 올리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위에서 나왔고, 그게 조직을 한 단계씩 타고 내려와서 결국 각 팀에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의 형태로 도착했습니다.

저는 그 방향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제 사이드 프로젝트가 이미 그렇게 굴러가고 있거든요. 오디오북 앱 하나를 혼자 만들고 있는데, 관리자 화면과 앱과 백엔드와 배포 도구가 한 저장소 안에 같이 들어 있고, 그 사이를 오가는 일을 제가 직접 하지 않습니다. 저는 방향이 맞는지만 봅니다. 기획도 인프라 구성도 디자인도 단위 테스트도 통합 테스트도 그 안에서 돌아갑니다. 이게 되는 걸 몇 달 겪고 나면 회사 조직도가 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용 쪽이 아니었습니다. 이 질문이 여기까지 도착한 경로 쪽이었습니다.

그 얘기는 마지막에 다시 하겠습니다. 먼저 이 흐름의 출처로 보이는 쪽을 좀 봤습니다.

위계는 정보를 나르려고 생겼다는 주장

잭 도시가 올해 초에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라는 글을 냈습니다. 세쿼이아의 로엘로프 보타와 같이 썼고요. 2월 말에 블록이 만 명 넘던 인원에서 사천 명을 줄였는데, 그게 비용 절감이 아니라 영구적인 구조 변경이라는 게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주장 자체는 꽤 깔끔합니다. 기업의 위계는 원래 문제 하나를 풀려고 생겼다는 겁니다. 한 사람이 전부 볼 수 없을 만큼 조직이 커졌을 때 정보를 어떻게 흘려보낼 것인가. 관리자는 아래에서 맥락을 모아 올리고, 위에서 온 메시지를 아래로 전달하고, 팀 사이의 정렬을 유지합니다. 로마 군대 이래로 이천 년 동안 그 역할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게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이제는 AI가 그걸 끊기지 않고 대규모로 할 수 있으니 전달자가 필요 없어진다는 논리입니다.

도시 본인은 작년 12월에 Opus 4.6과 Codex 5.3을 써보다가 마음을 굳혔다고 했습니다. 큰 코드베이스 안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걸 보고 나서요. 그리고 앞으로 일 년 안에 대부분의 회사가 비슷한 구조 변경을 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실제로 제 쪽에서 사라진 게 정확히 그 일이거든요. 예전에 제일 많은 시간을 먹던 건 만드는 일 자체가 아니라 만드는 일과 만드는 일 사이였습니다. 화면 하나 바꾸려면 시안이 나와야 하고, 시안이 나오면 그게 구현 가능한지 확인해야 하고, 확인하다 보면 원래 의도가 뭐였는지 다시 물어봐야 하고, 물어보면 그새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고요. 이 왕복이 길었던 이유는 각자가 남의 영역을 건드릴 수 없어서였습니다.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줄 몰라서요. 그 장벽이 낮아지니까 왕복이 줄어드는 건 맞습니다.

AX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뒤져봤을 때도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전환의 단위가 회사라고 적혀 있는데 제가 실제로 본 변화는 전부 사람 한 명 단위였거든요. 도시의 글은 그 개인 단위 변화가 충분히 쌓이면 조직도 자체를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주장이고, 그게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계속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조율이라는 말에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도시가 없앴다고 말하는 건 "조율"입니다. 다만 저는 회사에서 조율이라고 부르는 일에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가 섞여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핸드오프 비용입니다. 기획자가 화면을 그려서 개발자에게 넘기고, 개발자가 디자인 수정을 요청하고, 디자이너가 다시 받아서 고치는 왕복. 회의록을 쓰고 티켓을 남기고 스펙 문서를 갱신하는 일. 이건 정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때 붙는 비용이고, 각자가 남의 영역을 직접 만질 수 없어서 생긴 겁니다. AI가 지금 실제로 없애고 있는 게 이쪽이 맞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해 조정 비용입니다. 이건 정보가 느리게 전달돼서 생긴 게 아니라, 원하는 게 서로 다른 사람이 여럿이라서 생깁니다. 마케팅은 이번 분기에 내보내고 싶고, 개발은 부채를 갚고 싶고, 대표는 둘 다 원합니다. 세 사람이 같은 회의실에 앉아서 같은 자료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도 이 충돌은 그대로 남습니다. 정보 부족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니까요.

도시의 글은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놓고, 위계가 하던 일은 정보 라우팅이었다고 정리한 다음, AI가 라우팅을 하니까 위계가 필요 없다고 넘어갑니다. 앞 절반은 맞는데 뒤 절반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한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두 팀이 같은 화면을 각자 손보고 있고, 둘 다 자기 AI와 함께 작업해서 각자 완성했습니다. 배포 요청이 같은 날 올라옵니다. 두 수정은 서로 충돌합니다. 자, 여기서 AI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충돌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머지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도 알려줄 수 있고요. 일정도 다시 짜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필요한 건 "누가 양보하느냐"입니다. 이건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의 문제이고, 답을 낸 사람이 나중에 그 답 때문에 욕을 먹어야 끝나는 종류의 문제입니다. AI는 양보를 시킬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킬 수는 있는데, 양보한 쪽이 납득하지 않으면 그 결정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자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기획자가 AI와 같이 만든 기능이 배포되고, 그게 새벽 세 시에 터졌다고 해봅시다. 만든 사람은 그 시간에 자고 있고, 깨워도 고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만들 때는 AI가 붙어 있었으니까 됐는데 장애 상황에서 로그를 읽고 원인을 좁히는 건 같은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결국 누군가 다른 사람이 불려 나갑니다.

이 구분이 실제로 드러나는 자리가 하나 있는데, 회의입니다.

AI 도구가 들어온 뒤에 회의가 줄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할 겁니다. 저도 안 줄었습니다. 이게 좀 이상한 일이거든요. 회의의 존재 이유가 정보 공유라면 지금쯤 확실히 줄었어야 합니다. 누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뭐가 막혔는지는 이제 물어보지 않아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안 줄어듭니다. 회의 시간의 상당 부분이 원래 정보 공유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합의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었습니다. 다들 이미 아는 얘기를 한 시간 동안 다시 하는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아서 반대 안 했다는 사실을 만들어야 나중에 일이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데 대체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정보 공유용 회의는 확실히 줄고 있습니다. 주간 현황 공유 같은 건 문서 하나로 대체됐거나 대체되는 중이고요. 그런데 합의용 회의는 그대로 있고 오히려 늘어난 쪽도 있습니다. 각자 만들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맞춰야 할 것도 같이 늘어났거든요. 이게 제가 말하는 두 비용의 차이가 실제로 보이는 지점입니다.

만드는 권한은 빠르게 퍼졌는데 고치는 책임은 안 퍼진 겁니다. 이건 AI 도입의 부작용이라기보다 도입 속도의 차이에서 생기는 일인데, 조직 설계에서는 이쪽이 더 오래 갑니다. 권한을 넓히는 건 도구를 주면 되지만 책임을 넓히는 건 사람이 그걸 받겠다고 해야 되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은 안 받겠다고 합니다. 저라도 안 받습니다.

리소스 부족이 지금까지 결정을 대신 내려줬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면 저는 이 지점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이건 안 만듭니다"라는 결정은 대부분 명시적으로 내려진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사람이 없어서 못 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많고 개발자는 셋인데, 그러면 위에서 세 개만 고르게 되고 나머지는 자동으로 빠집니다. 누가 "이건 가치가 없으니 안 합니다"라고 판단해서 뺀 게 아니라 손이 모자라서 빠진 겁니다. 리소스 부족이 우선순위 결정을 사실상 대행해왔습니다.

이게 좋은 방식이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쁜 방식이었죠. 진짜 중요한 게 순서에서 밀리는 일이 늘 있었으니까요. 다만 그 제약이 브레이크 역할은 했습니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아도 뭔가는 걸러졌습니다.

AI가 그 제약을 풉니다. 이제 셋이서도 열 개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지금까지 리소스가 대신 내려주던 결정을 사람이 직접 내려야 합니다. "할 수 있지만 안 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자리가 처음으로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정의 부담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안 만들기로 하는 판단이 더 자주 필요해지고, 그 판단은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내려야 합니다.

중간관리자가 하던 일 중에 일정 조율은 눈에 보이는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이 무엇을 안 할지 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일인데, 이쪽은 원래도 잘 안 보였습니다. 안 만들어진 것은 기록에 안 남으니까요. 그래서 조직도를 밖에서 보면 관리자가 회의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제 프로젝트는 성공 사례가 아니라 반례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제 얘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오디오북 프로젝트에서 조율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게 되는 이유는 좀 다른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AI가 유능해서가 아닙니다. 이해관계자가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요구사항을 내는 사람, 그걸 검수하는 사람, 우선순위를 정하는 사람, 잘못됐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전부 저입니다. 제가 화요일에 정한 방향을 목요일에 뒤집어도 아무한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능 하나를 접기로 하면 그냥 접힙니다. 반대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조정할 대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 프로젝트가 증명하는 건 "AI가 있으면 조율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이해관계자가 한 명이면 조율이 필요 없다"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AI가 나오기 전에도 참이었습니다. 혼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여러 개 굴려보면서 느낀 것도 이쪽에 가깝습니다. 빨라진 건 맞는데, 빨라진 이유를 제가 정확히 짚고 있는지는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회사에서 같은 구조를 만들려면 AI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팀마다 "여기까지는 혼자 결정한다"는 권한 경계를 새로 그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그 권한 재설계는 손대지 않은 채로 직군 경계만 허무는 쪽으로 진행됩니다. 기획자가 코드를 짜고 개발자가 디자인을 고치기 시작하는데, 승인은 여전히 예전 라인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관리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남의 영역까지 만들어놓고 결재는 그대로 받는 상태가 됩니다. 조율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예전에는 화면 하나에 대해 결정할 사람이 한 명이었는데, 이제 세 명이 각자 만들어놓고 결재판에 올라오니까요. 핸드오프 비용은 줄었는데 이해 조정 비용은 늘어난 겁니다.

도시의 새 조직도에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재밌는 건, 도시가 실제로 설계한 조직에 이 얘기가 이미 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블록이 남긴 역할은 셋이라고 합니다. 깊은 전문성을 가진 개별 기여자가 있고, 이 사람들은 관리자가 아니라 모델에서 맥락을 받아서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결정"합니다. 그다음에 DRI라고 부르는 역할이 있는데, 여러 영역에 걸치는 특정 문제를 소유하고 모델에서 자원을 끌어올 권한을 가집니다. 마지막이 플레이어 코치입니다. 기존 관리자를 대체하는 자리고, 현장에서 계속 손을 움직이면서 사람을 키우는 역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시와 보타의 문장은 이렇습니다. 영구적인 중간관리 계층은 필요 없다. 옛 위계가 하던 나머지 전부는 시스템이 조율한다.

저는 이 문장에서 "나머지 전부"가 걸립니다.

일단 그들 스스로가 나머지 전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예와 사람 육성은 빼놨거든요. 그게 플레이어 코치의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위계가 하던 일 중에 최소한 한 덩어리는 사람한테 남겨야 한다는 걸 이미 인정한 셈입니다.

플레이어 코치라는 이름을 좀 오래 들여다봤는데, 생각할수록 묘합니다. 현장에서 계속 손을 움직이면서 사람을 키우는 사람. 이거 그냥 좋은 관리자의 정의 아닌가요. 제가 지금까지 만난 괜찮은 팀장들은 대체로 이랬습니다. 코드를 읽을 줄 알았고, 판단이 필요한 자리에서 판단했고, 아래 사람이 자기보다 잘하게 되는 걸 막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도시가 없앤 건 관리 계층이 아니라 일을 모르면서 전달만 하던 관리자 쪽에 가깝습니다. 그건 없애는 게 맞고요. 다만 그건 조직 구조의 문제라기보다 그 자리에 누굴 앉혔느냐의 문제입니다. 원래 있어서는 안 될 자리가 있었던 거지, 관리라는 기능 자체가 불필요해진 건 아닙니다.

이 둘을 섞으면 이상한 결론이 나옵니다. 전달만 하던 사람이 필요 없어진 걸 보고 관리가 필요 없어졌다고 읽으면, 정작 판단하고 책임지던 사람까지 같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던 일은 사라지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흩어집니다. 흩어진 상태에서는 누구 일인지 불분명해지니까, 결국 아무도 안 하게 됩니다.

게다가 육성이라는 것도 따로 떼어놓으면 잘 안 굴러갑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과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붙어 있거든요. 평가 권한이 없는 육성은 조언이지 육성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옆에서 잘 봐줘도 그 사람의 승진에 제 의견이 안 들어가면, 몇 달쯤 지나서 그 사람은 저 말고 다른 데를 봅니다. 당연한 반응이고요.

그리고 평가야말로 이해 조정 비용이 제일 비싸게 드는 대목입니다. 성과 데이터를 모으는 건 모델이 사람보다 훨씬 잘할 겁니다. 누가 뭘 했는지, 어떤 결정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전부 붙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승진 자리가 하나인데 후보가 둘일 때, 그 데이터로 한 명을 고르는 건 데이터를 모으는 일과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모델이 "A의 기여가 더 큽니다"라고 출력했다고 해봅시다. B가 그걸 납득할까요. 납득 안 하면 B는 나갑니다. 사람이 그 말을 했을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는데, 따질 상대가 있느냐입니다. 사람이 결정했으면 B는 최소한 그 사람을 찾아가서 왜 그랬냐고 물을 수 있고, 답이 시원찮으면 화라도 낼 수 있습니다. 모델이 결정하면 그 자리가 없습니다. 이것도 결국 에스컬레이션 경로 얘기고, 앞의 질문들과 같은 뿌리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진짜로 안 없어지는 건 육성이 아니라 이해 조정과 책임 쪽이고, 그건 세 역할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DRI가 가진 게 "모델에서 자원을 끌어올 권한"인데, 이건 모델을 상대로 한 권한입니다. 사람 사이의 우선순위 충돌을 조정하는 권한과는 다릅니다. 두 DRI가 같은 자원을 원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안 적혀 있습니다.

같은 지점을 짚은 분석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카를로 토르니아이가 쓴 글인데, 질문 두 개가 정확했습니다. 모델의 우선순위가 표류할 때 누가 그걸 감사하는가. 그리고 DRI가 정식 에스컬레이션 경로 없이 시스템의 권고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는가.

에스컬레이션 경로라는 게 결국 위계의 다른 이름입니다. 위로 올릴 데가 있다는 건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위에 있다는 뜻이고요. 그걸 없애면서 대체물을 안 만들면, 시스템의 권고가 사실상 최종심이 됩니다. AI가 관리자를 대체한 게 아니라 AI가 반론 불가능한 관리자가 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감시 장치를 잔뜩 걸어놓고도 그게 한 번도 안 울린 걸 나중에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구조라고 봅니다. 장치는 있는데 그 장치를 검사할 자리가 비어 있는 거죠.

같은 분석이 문화 쪽 공백도 짚었는데 이쪽도 수긍이 갑니다. 위계는 정보만 나르는 게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지위와 소속감을 같이 만들어왔습니다. 이걸 없애면서 대체 구조를 안 세우면 빈자리가 생깁니다. 그 빈자리는 조직도에 안 보이는데 사람들은 확실히 느낍니다.

숫자는 아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블록의 실적은 감원 이후에 좋아졌습니다. 2분기 매출총이익이 전년 대비 스물다섯 퍼센트 늘었으니까요. 이걸 근거로 "봐라,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글도 이미 많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로는 아무것도 확인이 안 됩니다.

같은 기간에 캐시앱 대출과 카드 사용이 늘었고 스퀘어 결제량도 붙었습니다. 제품 쪽 모멘텀은 2월 발표 이전부터 있던 거고요. 감원 계획 자체가 2분기 말까지 이어지도록 잡혀 있어서 언제부터의 효과인지 자르기도 어렵습니다. 블록은 어느 직무에서 몇 명이 빠졌는지도, AI 기여분을 따로 떼어낸 근거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내놓은 건 엔지니어당 프로덕션 코드 변경이 1월에서 4월 중순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었다는 내부 지표 하나인데, 이건 회사가 고른 지표고 비교군이 없습니다.

반대 방향 자료도 있습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올해 1월에 낸 분석은 CEO들이 AI 때문이라고 말한 감원의 상당수가 실은 팬데믹 시기 과다 채용을 되돌린 것이라고 봤습니다. 미즈호의 애널리스트 한 명은 더 직설적으로, 이번 감축의 압도적 다수는 아마 AI 때문이 아닐 거라고 했고요.

가디언이 취재한 내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블록의 현직과 전직 직원들이 말하기를, AI가 만든 코드 변경의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이 손을 봐야 하고, 은행이나 송금처럼 규제가 걸린 영역은 AI가 주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깥에서는 조직도가 바뀌었다고 읽히는데 안에서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 가지 더 걸리는 게 있습니다. 도시는 일 년 안에 대부분의 회사가 비슷한 구조 변경을 할 거라고 했는데, 그가 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조건을 같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블록에서 사천 명을 줄이는 결정은 도시가 하면 끝나는 결정이었습니다. 창업자고, 지분 구조상 그렇고, 바깥에서 뭐라고 해도 밀고 갈 수 있는 위치입니다. 이사회를 설득하고 각 부문장의 반발을 조정하고 노조와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한 회사였다면 같은 결정이 같은 속도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나왔더라도 형태가 달라졌겠고요.

그러니까 이 실험은 이해 조정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조건에서 이해 조정이 필요 없다는 걸 보여준 셈입니다. 제 사이드 프로젝트와 구조가 똑같습니다. 규모만 다르지 결정권자가 한 명이라는 점에서요. 그런 조건에서 나온 결과를 결정권이 여러 갈래로 나뉜 회사에 그대로 옮기려고 하면, 옮겨지는 건 결론뿐이고 그 결론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은 안 따라옵니다.

앞에서 유럽 쪽 얘기를 짚은 분석도 같은 얘기였습니다. 협의 절차와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곳에서는 이 모델이 애초에 적용되지 않는다고요. 제도가 이해 조정을 강제로 붙여놓은 겁니다. 그게 비효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그 절차가 원래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가 그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저는 이 격차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실험은 원래 결론이 나오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문제는 지금 나와 있는 게 시작 시점의 선언뿐인데 그게 이미 성공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는 쪽입니다. 다른 회사 경영진이 이걸 보고 "블록도 했다는데"로 시작하면,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근거 자료로 한 단계 승격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회사에도 그 얘기가 도착했으니까요.

그 질문이 내려온 경로

처음에 적었던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중간관리 계층을 줄이자는 제안이 어떻게 저한테까지 왔는지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경영진이 외부에서 사례를 봤고, 그 내용이 조직의 위에서 정리됐고, 한 단계 아래로 전달됐고, 거기서 다시 각 팀에 질문의 형태로 내려왔습니다. 정확히 도시가 없애야 한다고 말한 그 경로입니다. 맥락을 모으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렬을 유지하는 그 일이요.

이게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문제가 정말 정보 라우팅뿐이었다면, 이 제안은 전사 공지 하나로 모두에게 동시에 도착했어야 합니다. 요즘은 그게 기술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단계를 밟아서 내려왔고, 각 단계에서 말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위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간다"였던 게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렇게 가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이 됐습니다.

왜 질문의 형태로 바뀌었을까요. 저는 그 단계에서 누군가가 반발을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대로 지시로 내리면 각 팀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물어보는 형태로 바꿔서, 팀장들이 스스로 동의한 모양을 만들려고 한 겁니다.

이게 바로 이해 조정입니다. 정보를 나르는 일이 아니라, 같은 정보를 받을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그에 맞게 말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요. 그리고 이 일을 한 사람은 정확히 이 제안이 없애자고 하는 그 계층에 있었습니다.

모델한테 이걸 시킬 수 있을까요. 문장은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각 팀의 사정을 넣어주면 톤도 맞춰줄 거고요. 갈리는 건 그렇게 나온 말을 팀장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쪽입니다. 사람이 하면 그 사람이 나중에 결과를 같이 집니다. 이 방향으로 갔다가 잘못되면 그 제안을 전달한 사람도 같이 물립니다. 그래서 받는 쪽이 그 말을 무게 있게 듣습니다. 모델이 보낸 메시지에는 그게 없습니다.

저는 이게 AI가 못 하는 일이라기보다 AI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일에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둘은 겹치지 않습니다. 코드는 AI가 충분히 쓸 수 있는데도 그 코드가 나간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사람이 집니다. 설계는 내가 했는데 결과물은 AI가 만든 상태를 몇 달 겪으면서 계속 걸렸던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산출물만 보면 누가 만들었는지 구분이 안 되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불려 나가는 건 여전히 저였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AX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쓰는데, 저는 그 실체가 "사람이 AI가 못 하는 것만 한다"보다는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것만 한다"에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는데 조직 설계로 옮기면 결과가 꽤 다릅니다.

앞의 문장으로 가면 AI 성능이 올라갈 때마다 사람 자리가 줄어듭니다. 뒤의 문장으로 가면 AI 성능이 올라가도 책임 구조는 그대로 남고, 오히려 만들 수 있는 게 많아진 만큼 결정할 거리가 늘어납니다. 조직이 AI 대응으로 개편될 때마다 신입 자리가 먼저 사라지는 것도 앞의 문장으로 읽은 결과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직군 경계가 흐려지는 방향 자체는 계속 갈 것 같습니다. 이미 가고 있고요. 저도 그렇게 일하고 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그게 관리 계층이 없어진다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없어지는 건 사람 사이를 오가던 전달 업무 쪽이고, 남는 건 결정과 그 결정을 지는 일 쪽인데, 지금 나오는 얘기들은 대체로 앞쪽만 보고 뒤쪽을 같이 없애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회사에서 AI 에이전트가 열렸을 때 같은 도구를 받고도 결과가 갈렸던 게 기록의 유무 때문이었는데, 이번 건도 비슷한 구조일 것 같습니다.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받을 쪽이 준비돼 있느냐의 문제요. 권한 경계를 다시 안 그리고 도구만 넣으면, 만들어지는 물건만 늘고 결재 줄은 그대로일 겁니다.

되물어볼 게 하나 있긴 합니다. 이 방향으로 가면 결재 라인도 같이 바뀌는 거냐고요. 각자 만드는 범위는 넓히면서 승인 절차는 그대로 두면 앞에서 적은 그 상태가 됩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이 오는지를 보면, 이번 얘기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건지 인원 얘기를 꺼내기 위한 준비인지도 어느 정도 갈릴 것 같습니다.

팀에서 의견을 물어왔을 때 뭐라고 답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방향에 동의한다고 말하면 그다음에 나올 얘기가 인원 얘기일 것 같아서요. 이 부분은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한 자료 (확인일: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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