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는 회사가 사고 격차는 옆자리에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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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뭔가 계속 걸렸습니다.
기록을 남겨라, 찾을 수 있게 해라, 데이터를 어떻게 쌓았는지가 결국 승부처다. 쓰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 쓰고 읽어보니 이상했습니다. 이 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요.
회의록 쓰라는 말, 티켓 남기라는 말, 데이터를 한군데 모으라는 말. 새로 발견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최신 기술 얘기를 하겠다고 앉았는데 결론이 20년 된 잔소리였습니다. 그러면 AX라는 새 단어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어 쪽을 좀 뒤져봤습니다. 정의는 깔끔했습니다. Artificial Intelligence Transformation, 인공지능 전환. SK C&C는 작년에 아예 사명을 SK AX로 바꿨습니다. 회사 이름에 붙일 정도면 업계에서 통하는 말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정의를 보고 나니 더 헷갈렸습니다. 전환한다는 건 알겠는데 뭐가 전환된다는 건지가 안 잡혔습니다. 문장의 주어가 늘 회사입니다. 회사가 전환한다, 조직이 전환한다, 그룹이 전환한다. 지난 두 달 동안 제가 실제로 본 변화는 전부 사람 한 명 단위였습니다.
사명에 유행어를 넣는다는 것
SK AX는 사명을 AI for Future, AI for Innovation, AI for Expansion, 그리고 AI for X로 풀었습니다. 마지막 X는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붙였고요. 2027년까지 전사 생산성을 30% 넘게 올리겠다는 목표도 같이 냈습니다(전자신문). 저는 이 30%가 오히려 정직해 보였습니다. 2027년이 되면 맞았는지 틀렸는지 따질 수 있는 숫자니까요. AX 얘기하는 자료 대부분은 이런 숫자를 안 내고 생산성 향상, 업무 혁신, 경쟁력 강화처럼 나중에 아무도 못 따지는 말로 채웁니다.
사명을 바꿨다는 것 자체는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IT 서비스 회사가 자기 이름을 업계 유행어로 갈아 끼웠다는 건 그 단어가 지금 팔린다는 뜻입니다. 단어가 뭔가를 가리키는 단계를 지나서 단어 자체가 상품이 된 거죠.
회사 이름에 뭘 넣는지 보면 그 시점에 뭐가 돈이 되는지 보입니다. 90년대 말에는 뒤에 닷컴을 붙였고, 한동안은 앞에 스마트를 붙였고, 그다음엔 디지털이었습니다. 지금은 AI고요. 그 이름들은 대체로 몇 년 뒤에 조용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바로 앞에 DX가 있었습니다. 디지털 전환. 10년쯤 팔렸고, 컨설팅 자료가 산더미로 나왔고, 전담 조직이 생기고 부서 이름이 바뀌고, 그러다 사람들이 지겨워했습니다. 거기서 D를 A로 바꾼 게 지금입니다. 다음 글자가 뭐가 될지도 대충 짐작이 갑니다.
DX 때 하던 얘기와 지금 하는 얘기가 꽤 겹칩니다. 데이터를 모아라, 부서 사이 벽을 허물어라, 일하는 방식을 바꿔라, 위에서부터 밀어붙여라. 문장을 그대로 두고 디지털만 AI로 바꿔도 거의 다 말이 됩니다. 그때 안 됐던 이유와 지금 안 될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겁니다.
컨설팅과 SI 업계는 팔 물건이 필요하고, 팔 물건에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일하는 방식을 좀 정리합시다"는 견적서에 못 씁니다. "전사 AX 전환 로드맵 수립"은 쓸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인데 이름이 다르면 가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요
단어가 팔린다는 것만으로는 타이밍이 설명이 안 됩니다. AX라는 말은 몇 년 전에도 있었고 SK가 이름을 바꾼 것도 작년입니다. 올해 상반기에 여러 그룹이 거의 동시에 같은 문장을 내놓은 건 유행만으로 보기엔 시점이 너무 겹칩니다.
도구 쪽이 바뀐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 사내 AI 도입은 대체로 창 하나였습니다. 브라우저 탭을 열고, 필요한 걸 붙여넣고, 답을 받아서 다시 문서로 가져옵니다. 이 구조에서는 회사 데이터가 어떻게 쌓여 있든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손으로 퍼 날랐으니까요. 지식 베이스가 엉망이어도 개인 생산성은 조금 올랐습니다. 도입률은 높은데 사업 성과로는 안 이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던 게 딱 이때입니다.
지금은 연결됩니다. Anthropic이 모델과 외부 도구를 잇는 규격을 공개 표준으로 내놓고 나서 커넥터가 쏟아졌고, Claude든 ChatGPT든 문서 저장소나 메신저, 이슈 트래커에 바로 붙습니다. 붙여넣는 게 아니라 모델이 업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는 쪽으로 제품이 바뀌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큰 차이입니다. 붙여넣던 때는 우리 회사 문서가 얼마나 정리돼 있는지가 아무 의미가 없었는데, 연결되는 순간 그게 전부가 됩니다. 앞 글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쌓아뒀느냐가 남는 질문이라고 썼는데, 그 질문이 갑자기 중요해진 게 이 시점입니다. 모델이 똑똑해져서가 아니라 모델이 회사 데이터에 닿을 수 있게 돼서요.
그러니 회사들이 한꺼번에 나선 게 유행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붙일 수 있게 됐고, 붙여보니까 그동안 안 보이던 게 보였을 겁니다. 붙였는데 가져올 게 없다는 거요.
연결해 놓고 "지난 분기에 이 고객사랑 뭐 합의했지?"라고 물으면, 모델은 성실하게 문서 저장소를 찾아봅니다만 그런 문서가 애초에 없습니다. 합의는 회의실에서 말로 했고, 누군가의 수첩에 적혔거나 아무 데도 안 적혔습니다. 모델은 그럴듯한 답을 내놓거나 못 찾았다고 합니다. 둘 다 모델 잘못이 아닌데 체감으로는 AI가 별로라는 결론이 나기 쉽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싼 도구를 붙였는데 쓸모가 없어 보이니 뭔가 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고, 그 크게 하는 일에 붙는 이름이 AX인 것 같습니다.
보안 쪽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모델이 사내 시스템에 직접 붙으면 권한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데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붙여넣던 때는 회사가 끼어들 데가 사실상 없어서 금지하거나 눈감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연결되고부터는 회사가 안 하면 아무도 못 합니다. 조직 단위로 뭔가 해야 하는 때가 온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단어는 마케팅인데 그 밑에서 바뀐 건 진짜라서 어느 쪽으로 봐야 할지 좀 애매합니다. 유행어라고 넘기면 실제로 바뀐 걸 놓칠 것 같고, 단어를 곧이곧대로 받으면 회사가 전환하면 사람이 따라온다는 그림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정의는 있는데 주어가 안 맞습니다
AX는 회사 단위 명사입니다. 전사 전환, 조직 개편, 그룹 차원의 노선. 올해 6월에 국내 주요 그룹들이 내놓은 것도 다 그 층위였습니다. 삼성은 외부 모델을 계열사 전반에 풀었고, SK는 민감한 영역을 자체 모델로 들여오는 쪽에 무게를 뒀고, LG는 ExaOne 중심의 하이브리드로 갔습니다. 기사들도 이 세 노선이 서로 다르다는 걸 중심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노선을 정할 때 실제로 계산되는 건 단가입니다. 봄에 회사 GPU 워크스테이션 한 대에 로컬 모델을 올려놓고 다섯 명이 동시에 들어오자 토큰 속도가 다시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걸 시트당 단가로 환산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계산을 한 번 해보면 내재화냐 개방이냐는 노선 선언이라기보다 일감별 견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제가 두 달 동안 본 격차는 그 층위에 없었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팀, 같은 도구를 받은 두 사람 사이에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주간보고를 에이전트로 씁니다. 한 주 동안 남은 흔적을 모아서 초안을 받고 다듬습니다. 5분 걸립니다. 다른 사람은 손으로 씁니다. 40분 걸리고 결과는 더 부실합니다. 앞 글에서는 이걸 누락률 얘기로 썼는데, 여기서 보면 다른 게 보입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전환의 대상일까요. 회사 문서에서는 둘 다 똑같이 "AX 대상 인원" 한 명으로 세어질 겁니다. 교육 이수 여부를 체크하면 둘 다 이수했을 거고, 계정 발급 여부를 보면 둘 다 발급받았을 겁니다. 회사가 보는 칸에서는 두 사람이 구분이 안 됩니다.
앞사람은 회사가 AX를 말하기 전부터 그렇게 일했습니다. 사내 도구가 열리기 전엔 다른 걸 썼을 뿐이고, 회사가 뭘 해줘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뒷사람은 도구를 받았는데 안 씁니다. 회사 단위 개입이 앞사람한테는 필요 없었고 뒷사람한테는 안 먹혔습니다. 그러면 이 회사는 뭘 전환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 층 위로 가도 비슷합니다. 팀장 중에도 팀원 위클리를 일일이 읽어서 손으로 종합하는 사람이 있고 AI한테 정리를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직급에 같은 양의 입력인데 처리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여기서도 차이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납니다.
이런 격차는 계층마다 반복되는데 조직도에는 안 그려집니다. 조직도에 그려지는 건 부서와 보고선이지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가 아니니까요. AX 전략을 조직도 위에서 얘기하는 동안에는 실제로 격차가 있는 쪽은 테이블에 아예 안 올라옵니다.
그러면 대책이 엉뚱한 데로 갑니다. 격차가 부서 사이에 있다고 보면 부서별 도입률을 관리하게 됩니다. A본부 30%, B본부 70% 같은 표가 만들어지고 낮은 쪽을 독려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모든 부서 안에 잘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부서 평균을 올리라고 하면 이미 쓰는 사람이 더 쓰고 안 쓰는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평균은 오르는데 격차도 같이 벌어집니다.
잘 쓰는 사람은 이미 알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들은 AX라는 말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자기 방식으로 뭔가를 만들어 놓고 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사내 AX 프로그램은 대개 별로 해주는 게 없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걸 이름 붙여서 다시 알려주는 정도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넉 달째 개인 자동화 레포를 하나 쓰고 있는데 거기에 스킬 21개, 에이전트 6개, 훅 3개가 들어 있습니다. 회사가 AX 조직 개편을 하기 두 달 전부터 그랬습니다. 회사 방침 때문에 시작한 게 아니고 그냥 제가 편하려고 만들었습니다.
만드는 과정도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작업을 세 번쯤 반복하면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 그 절차를 어딘가에 적어둡니다. 적어둔 걸 다음에 또 쓰다 보면 조금씩 다듬어집니다. 그게 쌓인 게 스킬 21개입니다. 설계했다기보다 귀찮아서 쌓였습니다.
도구를 잘 고른 게 아니라 자기 일을 반복할 수 있는 형태로 적어둔 쪽이 차이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프롬프트 모음으로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문서 템플릿으로, 어떤 사람은 그냥 메모장에 순서를 적어뒀습니다. 형태는 다 다른데 하는 일은 같습니다. 매번 하는 판단을 밖으로 꺼내 놓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조직마다 몇 명씩 있고, 대개 조용합니다. 승인 안 된 도구를 쓰고 있어서 말하기 애매한 사람도 있고, 자랑처럼 보일까 봐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일 흔한 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본인한테는 귀찮아서 만든 메모 몇 장이지 공유할 만한 방법론이 아닙니다.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는 줄 압니다.
그래서 조직 안에 이미 답이 있는데 아무도 그걸 답으로 안 보는 상태가 됩니다.
저도 제 레포를 남한테 보여줄 생각을 거의 안 해봤습니다. 회사 일에 쓰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블로그를 굴리려고 만든 거라 회사 사람한테 내밀기가 좀 이상합니다. 거기 적힌 규칙도 제 습관에 맞춰서 쓴 거라 남이 보면 왜 이렇게 했는지 모를 것 같고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겁니다. 자기한테 맞춘 거라 남한테는 안 맞을 거라고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절반쯤은 누구한테나 통하는 순서라서, 그 절반을 골라내는 일을 누가 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회사가 AX를 하겠다고 나서면 대개 밖을 봅니다. 컨설팅을 부르고 사례집을 사고 다른 회사가 어떻게 했는지 조사합니다. 그 시간에 사내에서 이미 그렇게 일하는 사람 다섯 명을 찾아서 물어보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할 텐데, 그건 프로젝트처럼 안 보입니다. 견적서에 쓸 수도 없고요.
몰래 쓰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섀도우 AI 조사가 여럿 나와 있는데, 낮게 잡은 데는 직원 절반 조금 못 되게, 높게 잡은 데는 열에 여덟 넘게 쓴다고 봅니다. 정책상 안 되는 줄 알면서 썼다는 답도 꽤 많았습니다. 전환하라고 지시받기 전에 이미 상당수가 알아서 전환해 있었던 거죠. 회사 입장에서는 좀 김빠지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건 도입 캠페인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드러내놓고 쓰게 하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설득하고 교육하고 독려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쓰는 사람들이 떳떳하게 쓸 수 있게 해주는 일이요. 앞의 건 몇 년이 걸리고 뒤의 건 몇 달이면 될 것 같습니다.
못 쓰는 사람은 이 단어에 겁을 먹습니다
반대쪽은 더 걱정입니다.
AI를 아직 잘 못 쓰는 사람한테 AX라는 말을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 옆에서 몇 번 봤습니다. 표정이 굳습니다.
ChatGPT에 뭘 물어봐야 할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인공지능 전환이라고 하니까요. 도구 하나 익히는 것도 부담인데 전환이라는 말은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바꾸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회사가 조직까지 개편하면서 밀고 있으면 못 따라가면 밀려난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그래서 시작을 안 합니다.
너무 큰 걸 요구받았다고 느끼면 사람은 작은 것도 안 하게 됩니다. 게으른 게 아니라 방어에 가깝습니다. 어차피 저기까지 못 갈 거면 어설프게 손댔다가 못한다는 걸 확인당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고, 따져보면 합리적이기까지 합니다.
전환이라는 말에는 지금 방식이 틀렸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20년 동안 자기 방식으로 일해온 사람한테 그건 도구를 배우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 방식은 끝났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면 배움이 아니라 자존심 문제가 됩니다. 배우기 싫은 게 아니라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 그동안이 부정되니까 못 들어오는 겁니다.
이 사람한테 필요한 건 전환이 아니라 티켓 하나 남기는 습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지금 하는 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던 대로 하되 흔적만 남기면 됩니다. 앞 글에서 봤듯이 요구 수준도 내려갔습니다. 잘 쓸 필요 없이 남기기만 하면 정리는 기계가 합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도 안 가르쳐줍니다. 전환 로드맵은 있고 반나절짜리 도구 사용법 교육도 있는데, 자기 일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기느냐는 커리큘럼에 없습니다. 재미없고 티도 안 나고 강의 제목으로도 안 예쁩니다.
교육은 대개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식으로 하는데, 잘 쓰는 사람의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못 쓰는 사람은 더 움츠러듭니다. 저기까지 가야 하는구나 싶어서요. 보여줘야 하는 건 완성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세 번째 시도쯤일 겁니다. 어설프고 반쯤 되다 만 상태. 그게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아무도 그걸 공유하지 않습니다. 저도 누구한테 보여준다면 레포에 있는 스킬의 지금 모양을 보여주지, 처음 적어뒀던 몇 줄짜리 메모를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구도가 좀 웃깁니다. 이 단어는 이미 하는 사람한테는 필요 없고, 안 하는 사람한테는 겁을 줍니다. 정작 필요한 사람한테 안 닿습니다.
말이 위에서 내려온다는 것도 좀 걸립니다. AX는 대표 신년사나 조직 개편 공지에 먼저 나오고, 팀 회의에는 한참 뒤에 나옵니다. 그 사이에 단어는 점점 커지고 무거워집니다. 팀원이 처음 듣는 AX는 이미 회사의 명운이 걸린 말이 돼 있습니다. 그 무게를 들고 와서 "그럼 일단 ChatGPT부터 써볼까요"라고 하기는 어색합니다. 차라리 아무 이름 없이 옆 사람이 "이거 이렇게 하니까 편하던데요" 했으면 훨씬 쉽게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격차는 그사이에 벌어집니다. 앞사람은 쓰던 걸 계속 쓰고 뒷사람은 시작을 못 하니까 AX 프로그램을 돌린 다음에도 두 사람 거리는 그대로입니다. 운이 나쁘면 더 멀어집니다. 앞사람은 사내 도구까지 덤으로 얻었으니까요.
숫자는 아무도 제대로 못 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 섀도우 AI 숫자를 대충 뭉뚱그려 적었는데, 사실 조사마다 너무 다릅니다. 절반이 안 되는 쪽부터 보안 리더 기준으로 열에 아홉 가까이까지 나옵니다. 절반이 쓰는 조직과 열에 아홉이 쓰는 조직은 전혀 다른 대응이 필요할 텐데요.
조사 방법이 달라서라고들 하는데 그걸로 설명이 다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벌어지면 아직 아무도 이걸 제대로 못 세고 있다는 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숫자일수록 발표 자료에 잘 인용됩니다. 위기감을 만들고 싶으면 높은 걸 쓰고, 아직 초기라고 말하고 싶으면 낮은 걸 쓰면 되니까요.
MIT의 95%도 비슷합니다. 생성형 AI 파일럿 95%가 손익에 영향을 못 냈다는 그 숫자는 지금 AX 자료 어디에나 있습니다. 앞 글에서도 썼습니다. 성공 정의가 너무 좁다, 파일럿 몇 달 뒤 손익만 봤다, 효율 개선 같은 건 계산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다 붙어 있고, 통계적으로 유효한 물건이 아니니 무게를 두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같이 적는 자료는 거의 못 봤습니다. 95%만 떼어 씁니다. 그게 훨씬 쓸모 있으니까요.
95%가 실패한다는 문장은 파는 쪽에 딱 맞습니다. 당신 회사도 그냥 두면 저 95%에 들어간다, 그러니 제대로 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하다. 같은 숫자가 위기감과 해결책을 한꺼번에 만듭니다. 이런 숫자는 맞든 틀리든 계속 돌아다닙니다.
같은 보고서 안에 외부 벤더에서 사면 성공률이 높고 내부에서 직접 만들면 훨씬 낮다는 대비도 있었습니다. 이건 95%보다 훨씬 덜 인용되는데, 인용될 때는 대개 벤더 쪽 자료에서입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어떤 문장이 살아남고 어떤 문장이 묻히는지를 보면 그 숫자가 어디에 쓰이는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 저도 앞 글 제목에 95%를 넣었습니다. 안 넣었으면 안 읽혔을 것 같아서요. 본문에 반론도 같이 적어두긴 했는데, 제목만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AX 자료에 붙어 있는 숫자는 세 종류 같습니다. 직접 세어본 것, 설문으로 물어본 것, 다른 자료에서 옮겨 적은 것. 세 번째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중 상당수는 원래 출처까지 따라가 보면 설문으로 끝납니다. 자기 회사에서 직접 센 숫자를 들고 오는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앞 글에서 결정 열 개를 손으로 세어보라고 쓴 것도 그래서입니다. 표본이 열 개라도 우리 회사 표본이니까요.
섀도우 AI 조사에서 제일 재밌었던 건 사용률이 아니라 윗사람 쪽이 더 많이 쓴다는 거였습니다. 직원보다 보안 리더 쪽 숫자가 더 높게 나왔고, 리더급이 미승인 도구를 쓰는 주요 축이라는 다른 조사도 있었습니다. The Register는 아예 상사들이 부하 직원의 섀도우 AI 사용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과 그 정책을 어기는 사람이 꽤 겹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게 오히려 정직한 신호 같습니다. 승인된 도구가 불편하면 지위와 상관없이 사람은 편한 걸 씁니다. 임원도 다르지 않고, 결정할 게 많고 시간이 없을수록 편한 걸 찾을 이유가 더 큽니다. 이건 도덕 문제가 아니라 도구 문제로 보입니다. 사내 도구가 충분히 좋으면 아무도 몰래 안 씁니다. 몰래 쓰는 비율은 사내 도구가 얼마나 쓸 만한지를 재는 숫자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런데 AX 자료는 대개 통제를 강화하자는 쪽으로 갑니다. 금지 목록을 만들고 차단하고 교육합니다. 금지 목록을 만든 사람이 그날 저녁에 그 도구를 씁니다.
차단하면 우회합니다. 회사 계정이 막히면 개인 계정으로 하고, 개인 계정도 막히면 휴대폰으로 합니다. 그러면 조직은 더 나빠집니다. 원래는 회사 도구 안에서 흔적이라도 남던 작업이 아예 안 보이는 데로 넘어가니까요. 통제하려다 아무것도 못 보게 됩니다. 막는 쪽은 막았으니 줄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데서 그대로 쓰고 있는 상태가 제일 나쁜 것 같습니다. 숫자상으로는 사용률이 내려가니까 보고서에는 성과로 올라갈 텐데, 그 숫자가 말해주는 건 덜 쓴다는 게 아니라 덜 보인다는 것일 겁니다.
여기서 앞 글 얘기와 다시 만납니다. 몰래 쓰는 작업은 기록으로 안 남습니다. 남길 수가 없습니다. 승인 안 된 도구로 만든 결과물의 출처를 티켓에 적을 사람은 없으니까요. 섀도우 AI가 많은 조직은 저절로 기록이 듬성듬성한 조직이 됩니다. 사람들이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한 일을 적을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통제를 강화하기보다 승인 범위를 넓히는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쓸 만한 도구를 안에서 주고, 어디까지 되는지 분명히 하고, 그 안에서 쓴 건 떳떳하게 적게 하는 거요. 임원이 몰래 쓰고 있다는 숫자는 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도구가 필요하다는 걸 조직의 모든 층에서 확인해준 셈이니까요.
전환이라기보다 표준화
좀 불편한 얘기도 하나 있습니다.
기록이 촘촘한 사람은 평가에서 유리합니다. 한 주에 열두 건 남긴 사람과 일곱 건 남긴 사람이 나란히 있으면 열두 건 쪽이 더 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앞 글에서 누락률 문제라고 썼고 그건 맞는데, 반대로 보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저 사람은 정말 더 한 건가, 더 잘 보이는 건가. 둘 다일 텐데 그 비율을 아무도 모릅니다.
이게 계속되면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반응합니다. 일을 더 하는 쪽이 아니라 잘 보이게 남기는 쪽으로요. 티켓을 잘게 쪼개고, 끝난 일도 굳이 기록하고, 남이 볼 만한 데 흔적을 둡니다. 오래된 KPI 게임하고 똑같습니다. 세는 걸 정하면 사람들은 그걸 만듭니다.
앞 글에서 제가 게이트를 만들었다가 걷어낸 얘기와도 같은 모양입니다. 측정받는 쪽이 측정값을 직접 만드는 구조요. 기록량을 지표로 삼는 순간 기록은 일의 흔적이 아니라 일의 산출물이 됩니다. 그러면 그 데이터로 하려던 원래 목적도 같이 망가집니다. 에이전트가 모아오는 게 실제 일이 아니라 보여주려고 만든 것들이 되니까요.
기록은 장려하되 기록량은 세지 않는 게 맞다고 보는데, 실제로 지켜지는 건 별로 못 봤습니다. 세지 않으면 장려가 안 되고 세는 순간 망가집니다. 그래도 지금 대부분의 조직은 기록이 넘쳐서가 아니라 없어서 문제라, 이건 열두 건 남기는 사람이 흔해진 다음에 할 걱정 같습니다.
조직 안에는 이미 자기 방식을 만들어서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몰래 씁니다. 나머지는 안 쓰거나 못 씁니다. 회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앞사람들의 방식을 찾아내서 나머지도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건 전환보다는 표준화에 가깝습니다.
이미 있는 좋은 방식을 찾고, 다시 해볼 수 있는 모양으로 다듬고, 나머지에게 나눠주는 것. 소프트웨어 조직이 오래 해온 일이고 이름도 이미 있습니다. 사내 표준, 베스트 프랙티스, 플레이북. 새로울 게 없습니다. 앞 글도 결국 거기서 끝났습니다. 지라에 등록하고 회의 결과를 남기라는 말은 20년 전에도 있었고, 달라진 건 규율이 아니라 안 지켰을 때 손해와 지켰을 때 이득이었습니다.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 하는 일이 꽤 다릅니다. 전환으로 가면 목표 상태를 먼저 그립니다. 회사가 가야 할 모습을 정하고, 지금과의 차이를 재고, 그걸 메울 계획을 짭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산출물은 로드맵과 조직도입니다. 표준화로 가면 지금 잘 되는 쪽부터 찾습니다. 왜 저 사람은 되고 이 사람은 안 되는지를 보고, 되는 쪽 조건을 추려서 옮겨 심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산출물은 템플릿이나 체크리스트, 아니면 그냥 잘하는 사람이 쓴 문서 몇 개입니다.
앞쪽은 목표가 선명한 대신 지금 조직에 뭐가 있는지를 안 봅니다. 그래서 이미 답을 갖고 있는 다섯 명을 그냥 지나칩니다. 뒤쪽은 덜 멋있는 대신 첫 달부터 뭔가 굴러갑니다.
문제는 표준화가 안 팔린다는 겁니다. "우리 일하는 방식을 표준화합시다"라고 하면 아무도 예산을 안 줍니다. 지루하고 새롭지 않고 다음 분기에 성과가 안 보입니다. 예전에 해봤다가 흐지부지된 기억도 있고요. "AX 전환"이라고 하면 예산이 나옵니다. 조직도도 바꿀 수 있고 임원이 밖에 나가서 말할 거리도 생깁니다.
그래서 같은 일에 새 이름이 붙습니다. 조직이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안에 있는 사람이 이걸 모르면 손해를 봅니다. 전환이라는 말에 눌려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생기니까요.
실제로 필요한 게 표준화라는 걸 알면 할 일이 훨씬 분명해지고 훨씬 작아집니다. 우리 팀에서 위클리를 제일 잘 뽑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그 순서를 문서 한 장으로 적고, 팀 채널에 붙여둡니다. 다음 주에 한 명이 따라 해보고 안 되는 데를 알려주면 문서를 고칩니다. 그게 다입니다. 로드맵도 필요 없고 예산도 안 듭니다.
우습게 들릴 수 있는데 이 한 장이 전사 전환 계획서보다 사람을 더 많이 바꿀 것 같습니다. 같은 팀 사람이 쓰는 방식이라 믿음이 가고, 우리 일에 맞춰져 있고, 한 장이라 읽힙니다. 컨설팅 산출물은 이 셋 중에 하나도 못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장짜리 문서는 틀려도 괜찮다는 것도 좋습니다. 다음 주에 고치면 되니까요. 로드맵은 한 번 발표하고 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고치면 처음 계획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모양이 되니까 다들 그냥 두고, 현장에서는 로드맵과 상관없이 각자 하던 대로 합니다. 문서 한 장은 그런 체면이 걸려 있지 않아서 계속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단어가 마케팅이라고 해서 그게 만든 결과까지 가짜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안 되던 게 있습니다. 자기 일을 티켓으로 남기는 것, 회의 결과를 문서로 확인하는 것, 결정에 근거를 붙이는 것. 수없이 지시했고 수없이 안 됐습니다. 앞 글에서 봤듯이 산수가 안 맞아서였습니다. 비용은 개인이 내고 이득은 조직이 가져갔으니까요. 지금은 개인 쪽 산수가 바뀌었고, 조직 쪽엔 예산이 생겼습니다. 두 개가 한꺼번에 바뀌었습니다.
AX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이 예산은 안 나왔을 겁니다. 지식 베이스를 만들고 권한 체계를 설계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일에 조직 몇 개가 붙는 일은 "문서화 개선 과제"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안 일어납니다. 그런 제안서는 20년 동안 계속 반려됐습니다. 단어가 멍청해도 그 단어 덕분에 생긴 기회는 진짜로 있습니다.
버즈워드가 실제로 하는 일이 이건 것 같습니다. 새로운 걸 알려주는 게 아니라, 다들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무도 우선순위를 못 주던 일에 갑자기 예산과 명분을 붙여주는 것. 내용은 하나도 안 새로운데 그걸 할 수 있게 만듭니다. 밖에서 보면 유행어 놀음이고 안에서 보면 20년 만에 온 기회입니다. 냉소만 하다 끝나도 아깝고 로드맵만 그리다 끝나도 아까울 것 같습니다.
이 기회도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DX가 그랬듯이 몇 년 뒤엔 이 말도 지겨워지고 다른 글자가 나올 거고 예산도 그쪽으로 갈 겁니다. 그때 남는 건 그동안 실제로 쌓아둔 데이터와 습관뿐이고 로드맵 문서는 안 남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지금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단어를 믿을 필요는 없는데 단어가 만든 기회는 써도 되니까요.
개인 입장에서도 계산은 비슷합니다. 회사가 전환에 성공하든 말든 제가 남긴 기록은 제 것으로 남습니다. 조직 개편은 또 있을 거고 도구도 몇 번 더 바뀔 텐데, 지난 2년 동안 제가 뭘 어떻게 정했는지가 검색되는 형태로 쌓여 있으면 그건 어디로 가도 따라옵니다.
두 달 전에 제가 본 그 옆자리 동료는 아직 손으로 위클리를 씁니다. 회사는 그사이 조직을 개편했고 에이전트를 열었고 세션도 몇 번 했습니다. 그 사람 금요일은 아직 40분입니다.
옆에서 같이 한번 해볼까 생각은 했는데 아직 말을 못 꺼냈습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가르치려 드는 걸로 안 들릴지 모르겠어서요. 잘못 꺼내면 네 방식은 낡았다는 말이 되고, 그건 제가 위에서 하지 말라고 쓴 바로 그겁니다. 교육이 어떻고 사례 공유가 어떻고 한참 써놓고 정작 두 발짝 옆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회사 단위로 얘기하면 뭔가 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뭐가 바뀌려면 결국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티켓 하나 남겨보는 것부터 해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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