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는 회사가 사고 격차는 옆자리에서 생긴다

밝은 사무실에 나란히 붙은 책상 두 개

앞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뭔가 계속 걸렸습니다.

기록을 남겨라, 찾을 수 있게 해라, 데이터를 어떻게 쌓았는지가 결국 승부처다. 쓰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 쓰고 읽어보니 이상했습니다. 이 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요.

회의록 쓰라는 말, 티켓 남기라는 말, 데이터를 한군데 모으라는 말. 새로 발견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최신 기술 이야기를 한다고 앉았는데 결론이 20년 된 잔소리로 끝난 셈입니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AX라는 새 단어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단어 쪽을 뒤져봤습니다. AX가 정확히 무슨 뜻이고 언제부터 이렇게 쓰였는지요.

정의는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Artificial Intelligence Transformation. 인공지능 전환. 실체 없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SK C&C는 2025년 5월 13일에 사명을 SK AX로 바꾸겠다고 발표하고 그해 6월 1일부터 적용했습니다. 회사 이름에 붙일 정도면 최소한 업계에서 통용되는 말은 맞습니다.

정의를 확인하고 나니까 오히려 더 헷갈렸습니다. 전환한다는 건 알겠는데 뭐가 전환된다는 건지가 안 잡혔습니다.

문장의 주어가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전환한다. 조직이 전환한다. 그룹이 전환한다. 지난 두 달 동안 제가 실제로 본 변화는 전부 사람 한 명 단위였습니다. 주어가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사명을 버즈워드로 바꾼다는 것

SK AX의 사명 해석은 이렇습니다. AI for Future, AI for Innovation, AI for Expansion, 그리고 AI for X. 마지막 X는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붙였습니다. 2027년까지 전사 생산성을 30% 이상 올리고 10년 안에 글로벌 AX 서비스 톱10에 들겠다는 목표도 같이 냈습니다(전자신문, AI타임스).

이걸 조롱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한 축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30%라는 숫자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2027년에 확인 가능한 약속이고, 못 지키면 지적당할 숫자입니다. AX를 말하는 자료 대부분이 이런 숫자를 안 냅니다. 생산성 향상, 업무 혁신, 경쟁력 강화처럼 나중에 달성 여부를 따질 수 없는 말로 채웁니다. 검증 가능한 약속을 하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다만 사명을 바꿨다는 사실 자체는 다르게 읽힙니다. IT 서비스 회사가 자기 이름을 업계 유행어로 갈아 끼웠다는 건, 그 단어가 지금 시장에서 팔린다는 뜻입니다. 단어가 실체를 가리키는 단계를 지나서 단어 자체가 상품이 된 겁니다.

이름은 원래 그런 신호를 줍니다. 어떤 회사가 자기 이름에 뭘 넣는지를 보면 그 시점에 뭐가 돈이 되는지가 보입니다. 90년대 말에는 이름 뒤에 닷컴을 붙였고, 한동안은 앞에 스마트를 붙였고, 그다음엔 디지털이었습니다. 지금은 AI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대체로 몇 년 뒤에 조용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 계보를 따라가면 바로 앞에 DX가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 10년쯤 팔렸고, 컨설팅 자료가 산더미로 나왔고, 전담 조직이 생겼고, 부서 이름이 바뀌었고,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지겨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 D를 A로 바꿔 넣은 게 지금입니다. 다음 글자가 뭐가 될지도 대충 짐작이 갑니다.

흥미로운 건 DX 때 했던 얘기와 지금 하는 얘기가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를 모아라, 사일로를 깨라, 일하는 방식을 바꿔라, 위에서부터 드라이브를 걸어라.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놓고 디지털을 AI로만 바꿔도 대부분 말이 됩니다. 그때 안 됐던 이유와 지금 안 될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겁니다.

이건 냉소가 아니라 관찰입니다. 컨설팅과 SI 업계는 팔 물건이 필요하고, 팔 물건에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일하는 방식을 좀 정리합시다"는 견적서에 못 씁니다. "전사 AX 전환 로드맵 수립"은 쓸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인데 이름이 다르면 가격이 다릅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여기서 냉소를 한 번 눌러야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단어가 팔린다는 것만으로는 타이밍이 설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AX라는 말 자체는 몇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SK C&C가 사명을 바꾼 것도 작년입니다. 왜 하필 2026년 상반기에 여러 그룹이 거의 동시에 같은 문장을 내놨을까요. 유행이 돌았다고만 하기에는 시점이 너무 겹칩니다.

도구 쪽이 바뀌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 사내 AI 도입이라는 건 대체로 창 하나였습니다. 브라우저 탭을 열고, 필요한 내용을 붙여넣고, 답을 받아서 다시 문서로 옮깁니다. 이 구조에서는 회사 데이터가 어떻게 쌓여 있든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손으로 퍼 날랐으니까요. 지식 베이스가 엉망이어도 개인 생산성은 조금 올랐습니다. MIT 보고서가 도입률은 높은데 사업 성과로는 안 이어진다고 했던 그 구간이 정확히 여기입니다.

지금은 연결됩니다. Anthropic이 모델과 외부 도구를 잇는 규격을 공개 표준으로 내놓으면서 커넥터 생태계가 생겼고, Claude든 ChatGPT든 이제 문서 저장소나 메신저, 이슈 트래커에 직접 붙습니다. 붙여넣는 게 아니라 모델이 제 업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는 쪽으로 제품 방향이 옮겨간 겁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붙여넣기 시절에는 우리 회사 문서가 얼마나 잘 정리돼 있는지가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연결되는 순간 그게 전부가 됩니다. 앞 글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쌓아뒀느냐가 결국 남는 질문이라고 썼는데, 그 질문이 갑자기 승부처가 된 시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모델 성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모델이 회사 데이터에 닿을 수 있게 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들이 동시에 움직인 게 순전히 유행 때문은 아닙니다. 이제 붙일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붙일 수 있게 되니까 그동안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붙였는데 가져올 게 없다는 것요.

보안 쪽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모델이 사내 시스템에 직접 연결된다는 건 권한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붙여넣기 시절에는 회사가 개입할 지점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금지하거나 눈감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연결되는 순간부터는 회사가 안 하면 아무도 못 합니다. 조직 단위 대응이 필요해진 게 이 시점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단어는 마케팅이 맞습니다. 그 밑에서 일어난 변화는 진짜였습니다. 이 둘을 같이 봐야 합니다. 유행어라고 무시하면 실제로 바뀐 걸 놓치고, 반대로 단어를 곧이곧대로 받으면 회사가 전환하면 사람이 따라온다는 잘못된 그림을 갖게 됩니다.

정의는 있는데 주어가 없습니다

문제는 단어가 팔린다는 게 아닙니다. 팔리는 단어는 원래 그렇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단어가 상정하는 단위가 실제 단위와 안 맞는다는 겁니다.

AX는 회사 단위 명사입니다. 전사 전환, 조직 개편, 그룹 차원의 노선 선택. 실제로 2026년 6월에 국내 주요 그룹들이 내놓은 것도 다 그 층위였습니다. 삼성은 외부 모델을 계열사 전반에 열었고, SK는 민감 영역을 자체 모델로 내재화하는 쪽에 무게를 뒀고, LG는 ExaOne 중심 하이브리드로 갔습니다(메트로서울). 노선 세 개가 선명하게 갈렸고 기사도 그 대비를 중심으로 썼습니다.

노선이 갈리는 자리에서 실제로 계산되는 건 단가입니다. 봄에 회사 GPU 워크스테이션 한 대에 로컬 모델을 올려놓고 다섯 명이 동시에 들어오자 토큰 속도가 다시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걸 시트당 단가로 환산해본 적이 있는데, 그 계산을 한 번 해보면 내재화냐 개방이냐가 노선 선언보다 워크로드별 견적에 훨씬 가깝다는 게 보입니다.

제가 두 달 동안 본 격차는 그 층위에 없었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팀, 같은 도구를 받은 두 사람 사이에 있었습니다.

한쪽은 주간보고를 에이전트로 씁니다. 한 주 동안 남은 흔적을 수집해서 초안을 받고 다듬습니다. 5분 걸립니다. 다른 한쪽은 손으로 씁니다. 40분 걸리고 결과는 더 부실합니다. 앞 글에서 이걸 누락률 문제로 정리했는데, 여기서 보면 다른 게 보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전환의 대상인가요.

앞사람은 회사가 AX를 말하기 전부터 그렇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내 도구가 열리기 전에는 다른 걸 썼을 뿐입니다. 회사가 뭘 해줘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뒷사람은 도구를 받았는데 안 씁니다. 회사가 도구를 줬는데도 안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회사 단위 개입이 앞사람한테는 불필요했고 뒷사람한테는 안 먹혔습니다.

전환의 주어가 회사라면, 이 회사는 뭘 전환한 걸까요.

한 층 위로 올라가도 같은 그림입니다. 팀장 중에도 팀원들 위클리를 일일이 읽어서 손으로 종합하는 사람이 있고 AI에 정리를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직급, 같은 양의 입력, 다른 처리 방식. 여기서도 갈리는 건 조직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그러니까 이 격차는 계층마다 반복됩니다. 그리고 조직도에는 안 그려집니다. 조직도에 그려지는 건 부서와 보고선이지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가 아닙니다. AX 전략이 조직도 위에서 논의되는 한, 실제로 격차가 있는 축은 논의 테이블에 아예 안 올라옵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대책이 엉뚱한 데로 가기 때문입니다. 격차가 부서 사이에 있다고 보면 부서별 도입률을 관리하게 됩니다. A본부 30%, B본부 70% 같은 표가 만들어지고 낮은 쪽을 독려합니다. 실제 분포는 모든 부서 안에 잘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이 섞여 있는 형태입니다. 부서 평균을 올리라고 하면 이미 쓰는 사람이 더 쓰게 되고 안 쓰는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평균은 오르는데 격차도 같이 오릅니다.

잘 쓰는 사람은 이미 알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들은 AX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자기 방식으로 체계를 만들어놓고 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사내 AX 프로그램은 대체로 아무것도 안 해줍니다. 이미 하고 있는 걸 이름 붙여서 다시 알려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넉 달째 개인 자동화 레포를 하나 굴리는데, 거기에 스킬 21개와 에이전트 6개, 훅 3개가 들어 있습니다. 회사가 AX 조직 개편을 하기 두 달 전에 이미 그러고 있었습니다. 회사 방침 때문에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제가 편하려고 만든 겁니다.

이런 걸 만드는 과정은 전혀 거창하지 않습니다. 같은 작업을 세 번쯤 반복하면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 그 절차를 어딘가에 적어두게 됩니다. 적어둔 걸 다음에 또 쓰다 보면 조금씩 다듬어집니다. 그게 쌓인 결과가 스킬 21개입니다. 설계해서 만든 게 아니라 귀찮아서 쌓인 것에 가깝습니다.

핵심은 도구를 잘 골랐다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반복 가능한 형태로 적어뒀다는 쪽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프롬프트 모음으로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문서 템플릿으로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냥 메모장에 순서를 적어놨습니다. 형태는 다 다른데 하는 일은 같습니다. 자기가 매번 하는 판단을 밖으로 꺼내놓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조직마다 몇 명씩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조용히 있습니다.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승인 안 된 도구를 쓰고 있어서 말하기 애매한 경우가 첫 번째입니다. 자랑처럼 보일까 봐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일 흔한 건 그냥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귀찮아서 만든 메모 몇 장이지 공유할 만한 방법론이 아닙니다.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는 줄 압니다.

그래서 조직 안에 이미 답이 있는데 아무도 그걸 답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좀 웃긴 일이 벌어집니다. 회사가 AX를 하겠다고 나서면 대개 밖에서 찾습니다. 컨설팅을 부르고, 사례집을 사고, 다른 회사가 어떻게 했는지 조사합니다. 그 시간에 사내에서 이미 그렇게 일하고 있는 사람 다섯 명을 찾아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한데, 그건 프로젝트처럼 안 보입니다. 견적서에 쓸 수도 없습니다.

규모가 작지도 않습니다. Verizon의 2026 DBIR은 회사 기기에서 정기적으로 AI를 쓰는 직원을 45%로 봤고, Okta 조사에서는 지식 노동자 52%가 미승인 도구를 쓴다고 인정했으며, PagerDuty 조사에서는 66%가 사내 정책상 허용 안 된다고 믿으면서도 썼다고 답했습니다. UpGuard 조사는 직원 81%까지 올려 잡습니다(Cybersecurity Dive, CIO).

그러니까 전환하라고 지시받기 전에 이미 절반 가까이가 알아서 전환해 있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좀 김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숫자를 다르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도입 캠페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양성화하는 문제라는 쪽으로요. 그러면 과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설득하고 교육하고 독려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쓰고 있는 사람들이 떳떳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됩니다. 전자는 몇 년이 걸리고 후자는 몇 달이면 됩니다.

못 쓰는 사람은 이 단어 때문에 겁을 먹습니다

반대쪽은 더 문제입니다.

AI를 아직 잘 못 쓰는 사람한테 AX라는 말을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 옆에서 몇 번 봤습니다. 표정이 굳습니다.

당연합니다. ChatGPT에 뭘 물어봐야 할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인공지능 전환이라고 하니까요. 도구 하나 익히는 것도 부담인데 전환이라는 말은 자기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바꾸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게다가 회사가 조직까지 개편하면서 밀고 있으면, 이건 못 따라가면 도태된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시작을 안 합니다.

너무 큰 걸 요구받았다고 느낄 때 사람은 작은 것도 안 하게 됩니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방어에 가깝습니다. 어차피 저 수준에 못 갈 거면 어설프게 손대서 못한다는 걸 확인당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는 판단입니다. 합리적이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얹힙니다. 전환이라는 말은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틀렸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해온 사람한테 그건 도구를 배우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 방식은 이제 끝났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면 학습이 아니라 자존심 문제가 됩니다. 배우기 싫은 게 아니라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 그동안이 부정되는 구조라서 못 들어오는 겁니다.

사실 이 사람한테 필요한 건 전환이 아니라 티켓 하나 남기는 습관이었습니다. 그건 지금 하는 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던 대로 하되 흔적만 남기면 됩니다. 앞 글에서 봤듯이 요구 수준도 내려갔습니다. 잘 쓸 필요 없고 남기기만 하면 정리는 기계가 합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도 안 가르쳐줍니다. 전환 로드맵은 있고 도구 사용법 교육도 반나절짜리로 있는데, 자기 일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기느냐는 커리큘럼에 없습니다. 재미없고 티가 안 나기 때문입니다. 강의 제목으로도 안 예쁩니다.

교육 방식도 대체로 어긋나 있습니다.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하는데, 잘 쓰는 사람의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면 못 쓰는 사람은 더 위축됩니다. 저기까지 가야 하는구나 싶어서요. 보여줘야 하는 건 완성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세 번째 시도쯤입니다. 어설프고 반쯤 되다 만 상태. 그게 훨씬 도움이 되는데 아무도 그걸 공유하지 않습니다.

구도가 좀 웃깁니다. 이 단어는 이미 하고 있는 사람한테는 필요 없고, 안 하고 있는 사람한테는 겁을 줍니다. 정확히 필요한 사람한테 안 닿습니다.

격차는 그사이에 벌어집니다. 앞사람은 원래 쓰던 걸 계속 쓰고 뒷사람은 시작을 못 하니까, AX 프로그램을 돌린 다음에도 두 사람 사이 거리는 그대로입니다. 운이 나쁘면 더 멀어집니다. 앞사람은 사내 도구까지 추가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아무도 제대로 못 세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근거로 쓰이는 숫자들도 한 번 보겠습니다.

앞에서 섀도우 AI 사용률을 인용하면서 45%, 52%, 66%, 81%를 나란히 적었습니다. UpGuard 조사에서 보안 리더는 88%까지 갑니다. 이 범위가 좀 심합니다. 45%와 88%는 다른 세상입니다. 절반이 쓰는 조직과 열에 아홉이 쓰는 조직은 전혀 다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조사 방법이 달라서 그렇다는 설명은 맞는 말이지만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벌어진다는 건 아직 아무도 이걸 제대로 못 세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들은 발표 자료에 아주 잘 인용됩니다. 자기 주장에 맞는 걸 골라 쓰면 됩니다. 위기감을 조성하려면 88%를 쓰고, 아직 초기 단계라고 말하려면 45%를 씁니다.

MIT의 95%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성형 AI 파일럿의 95%가 손익 영향을 못 냈다는 그 숫자는 지금 AX 관련 자료 어디에나 있습니다. 앞 글에서도 썼습니다. 성공 정의가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 파일럿 6개월 후 손익만 봤다는 지적, 효율 개선이나 이탈률 감소가 계산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다 붙어 있습니다. 한 비판자는 이 연구에 무게를 두지 말라고, 통계적으로 유효한 물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Marketing AI Institute).

그 반론을 같이 적는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95%만 떼어 씁니다. 그게 훨씬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95%가 실패한다는 문장은 파는 쪽에 완벽하게 유리합니다. 당신 회사도 그냥 두면 저 95%에 들어간다, 그러니 제대로 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하다. 같은 숫자가 위기감과 해결책을 동시에 만듭니다. 이런 숫자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유통량이 늘어납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 보고서 안에는 전문 벤더에서 사면 67% 성공하고 내부에서 직접 만들면 22% 성공한다는 대비도 있었습니다(Forbes). 이 항목이 인용되는 빈도는 95%보다 훨씬 낮은데, 인용될 때는 대개 벤더 쪽 자료에서입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어떤 문장이 살아남고 어떤 문장이 안 살아남는지를 보면, 그 숫자가 어디에 쓰이는지가 보입니다.

이걸 지적하면서 저도 앞 글에서 95%를 제목에 넣었습니다. 안 넣었으면 안 읽혔을 겁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반론을 같이 적어뒀는데, 솔직히 제목만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이 구조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숫자를 아예 쓰지 말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AX 자료를 볼 때 붙어 있는 숫자가 세 종류 중 어디인지는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직접 세어본 것, 설문으로 물어본 것, 그리고 다른 자료에서 옮겨 적은 것. 세 번째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중 상당수는 원 출처까지 따라가면 두 번째로 끝납니다. 자기 회사에서 직접 센 숫자를 들고 오는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앞 글에서 결정 열 개를 손으로 세어보라고 쓴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조사보다 그게 정확합니다. 표본이 열 개라도 우리 회사 표본이니까요.

섀도우 AI 조사에서 제일 재밌었던 건 사용률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경영진 쪽 사용률이 더 높게 나온다는 겁니다. UpGuard 조사에서 직원은 81%인데 보안 리더는 88%였습니다. 다른 조사에서도 리더급이 미승인 도구 사용의 주요 축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CIO). The Register는 아예 상사들이 부하 직원의 섀도우 AI 사용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습니다(The Register).

정책을 만드는 쪽과 그 정책을 어기는 쪽이 상당히 겹친다는 뜻입니다.

이걸 위선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한 신호로 읽는 게 맞다고 봅니다. 승인된 도구가 불편하면 지위와 무관하게 사람은 편한 걸 씁니다. 임원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정할 게 많고 시간이 없는 쪽일수록 편한 걸 찾을 이유가 큽니다. 그러니까 이 숫자가 말하는 건 도덕 문제가 아니라 도구 문제입니다. 사내 도구가 충분히 좋으면 아무도 몰래 안 씁니다. 몰래 쓰는 비율은 사내 도구 품질을 재는 지표에 가깝습니다.

이 해석은 AX 자료에 잘 안 등장합니다. 대신 통제를 강화하자는 쪽으로 갑니다. 금지 목록을 만들고 차단하고 교육합니다. 정작 금지 목록을 만든 사람이 그날 저녁에 그 도구를 씁니다.

통제 쪽으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대충 예상이 됩니다. 차단하면 우회합니다. 회사 계정이 막히면 개인 계정으로 하고, 개인 계정도 막히면 휴대폰으로 합니다. 그 순간 조직은 더 나빠집니다. 원래는 회사 도구 안에서 흔적이라도 남던 작업이 아예 안 보이는 곳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통제하려다 관측을 잃습니다.

여기서 앞 글 얘기와 다시 만납니다. 몰래 쓰는 작업은 기록으로 안 남습니다. 남길 수가 없습니다. 승인 안 된 도구로 만든 결과물의 출처를 티켓에 적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섀도우 AI가 많은 조직은 자동으로 기록 밀도가 낮은 조직이 됩니다. 사람들이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한 일을 적을 수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법은 통제 강화가 아니라 승인 범위를 넓히는 쪽에 가깝습니다. 쓸 만한 도구를 안에서 제공하고, 어디까지 되는지를 명확히 하고, 그 안에서 쓴 건 떳떳하게 적게 하는 것. 임원이 몰래 쓰고 있다는 숫자는 사실 그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입니다. 도구가 필요하다는 걸 조직의 모든 층에서 확인해준 셈이니까요.

이건 전환이 아니라 표준화입니다

여기서 좀 불편한 얘기를 하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록이 촘촘한 사람은 평가에서 유리합니다. 한 주에 열두 건이 남은 사람과 일곱 건이 남은 사람이 나란히 있으면, 열두 건 쪽이 더 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앞 글에서 이걸 누락률 문제라고 썼고 그건 맞습니다. 뒤집으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저 사람은 정말 더 한 건가, 아니면 더 잘 보이는 건가.

둘 다일 겁니다. 그리고 그 비율을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반응합니다. 일을 더 하는 쪽이 아니라 잘 보이게 남기는 쪽으로 최적화합니다. 티켓을 잘게 쪼개고, 이미 끝난 일도 굳이 기록으로 남기고, 남이 볼 만한 자리에 흔적을 배치합니다. 오래된 KPI 게임과 정확히 같은 형태입니다. 세는 걸 정하면 사람들은 그걸 만듭니다.

이건 앞 글에서 제가 게이트 만들었다가 걷어낸 얘기와 구조가 같습니다. 측정 대상이 측정값을 직접 생산하는 구조요. 기록량을 지표로 삼는 순간 기록은 업무의 흔적이 아니라 업무의 산출물이 됩니다. 그러면 그 데이터로 뭘 하려던 원래 목적도 같이 망가집니다. 에이전트가 수집해오는 게 실제 일이 아니라 보여주려고 만든 것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록은 장려하되 기록량은 세지 않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 지켜지는 걸 별로 못 봤습니다. 세지 않으면 장려가 안 되고 세는 순간 망가집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이 걱정을 앞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조직은 과잉 기록이 아니라 기록 부재가 문제입니다. 열두 건 남기는 사람이 흔해진 다음에 할 걱정이고, 아직 거기까지 안 갔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남는 그림이 꽤 단순해집니다.

조직 안에는 이미 자기 방식을 만들어놓고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반쯤은 몰래 쓰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안 쓰거나 못 씁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은 앞사람들의 방식을 찾아내서 나머지가 쓸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그건 전환이 아닙니다. 표준화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좋은 방식을 발견하고, 재현 가능한 형태로 다듬고, 나머지에게 배포하는 것. 소프트웨어 조직이 오래 해온 일이고 이름도 이미 있습니다. 사내 표준, 베스트 프랙티스, 플레이북. 새로울 게 없습니다.

앞 글 결론도 결국 거기였습니다. 지라에 등록하고 회의 결과를 남기라는 말은 2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달라진 건 규율이 아니라 그걸 안 지켰을 때의 손해와 지켰을 때의 이득이었습니다.

두 단어의 차이가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 하는 일이 꽤 다릅니다.

전환으로 접근하면 목표 상태를 먼저 그립니다. 우리 회사가 도달해야 할 모습을 정의하고, 현재와의 차이를 재고, 그 간극을 메우는 계획을 짭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산출물이 로드맵과 조직도입니다.

표준화로 접근하면 지금 잘 되고 있는 자리를 먼저 찾습니다. 왜 저 사람은 되고 이 사람은 안 되는지를 보고, 되는 쪽의 조건을 추려내서 옮겨 심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산출물은 템플릿이나 체크리스트, 아니면 그냥 잘하는 사람이 쓴 문서 몇 개입니다.

앞의 방식은 목표가 선명한 대신 현재 조직에 뭐가 있는지를 안 봅니다. 그래서 이미 답을 갖고 있는 다섯 명을 지나칩니다. 뒤의 방식은 덜 멋있는 대신 첫 달부터 뭔가 굴러갑니다.

문제는 표준화가 안 팔린다는 겁니다.

"우리 회사 일하는 방식을 표준화합시다"라고 하면 아무도 예산을 안 줍니다. 지루하고, 새롭지 않고, 성과가 다음 분기에 안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미 예전에 해봤다가 흐지부지된 기억이 있습니다. 반면 "AX 전환"이라고 하면 예산이 납니다. 조직도 바꿀 수 있습니다. 임원이 대외적으로 말할 거리가 생깁니다.

그래서 같은 일에 새 이름이 붙습니다. 저는 이게 사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직이 원래 그렇게 움직입니다. 다만 안에 있는 사람이 이걸 모르면 손해입니다. 전환이라는 말에 압도돼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구되는 게 표준화라는 걸 알면 할 일이 훨씬 명확해집니다. 그리고 훨씬 작아집니다.

우리 팀에서 위클리를 제일 잘 뽑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그 순서를 문서 한 장으로 적습니다. 그걸 팀 채널에 붙여둡니다. 다음 주에 한 명이 따라 해보고 안 되는 지점을 알려주면 문서를 고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로드맵도 필요 없고 예산도 안 듭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 한 장이 전사 전환 계획서보다 실제로 사람을 움직입니다. 같은 팀 사람이 쓰는 방식이라 신뢰가 되고, 우리 업무에 맞춰져 있고, 무엇보다 분량이 한 장이라 읽힙니다. 컨설팅 산출물은 대개 이 세 조건을 하나도 못 맞춥니다.


여기서 끝내면 그냥 투덜거림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단어가 마케팅이어도 그게 만든 결과는 진짜입니다.

20년 동안 안 되던 게 있습니다. 자기 일을 티켓으로 남기는 것. 회의 결과를 문서로 확인하는 것. 결정에 근거를 붙이는 것. 수없이 지시했고 수없이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앞 글에서 봤듯이 산수가 안 맞아서였습니다. 비용은 개인이 내고 이득은 조직이 가져갔습니다.

지금은 두 가지가 동시에 바뀌었습니다. 개인 쪽 산수가 바뀌었고, 조직 쪽에 예산이 생겼습니다.

AX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이 예산은 안 났을 겁니다. 지식 베이스를 만들고 권한 체계를 설계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일에 몇 개 조직이 붙는 일은, "문서화 개선 과제"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안 일어납니다. 그런 제안서는 20년 동안 계속 반려됐습니다. 단어가 멍청해도 그 단어가 연 창은 진짜로 열려 있습니다.

버즈워드의 실제 기능이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걸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이미 다들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우선순위를 못 주던 일에 갑자기 예산과 명분을 붙여주는 것. 내용은 하나도 안 새로운데 그걸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좀 우스운 방식이지만 조직이 원래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러니 밖에서 보면 유행어 놀음이고 안에서 보면 20년 만에 온 기회입니다. 둘 다 맞습니다. 이 두 시선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게 지금으로선 제일 쓸모 있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하나만 갖고 있으면 냉소만 하다 끝나거나 로드맵만 그리다 끝납니다.

그리고 창은 닫힙니다. DX가 그랬듯이 몇 년 뒤에는 이 말도 지겨워질 것이고, 그때쯤 다른 글자가 나올 겁니다. 예산도 그쪽으로 갑니다. 그때 남아 있는 건 그동안 실제로 쌓아둔 데이터와 습관뿐입니다. 로드맵 문서는 안 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지금 하는 게 맞습니다. 냉소는 냉소대로 유지하되 창이 열려 있는 동안 챙길 건 챙기는 것. 이 단어를 믿을 필요는 없는데, 이 단어가 만든 자리는 쓸 수 있습니다.

개인 입장에서도 계산은 같습니다. 회사가 전환에 성공하든 말든 제가 남긴 기록은 제 것으로 남습니다. 조직 개편은 또 있을 거고 도구도 몇 번 더 바뀔 텐데, 지난 2년 동안 제가 뭘 어떻게 결정했는지가 검색 가능한 형태로 쌓여 있으면 그건 어디로 옮겨도 따라옵니다. AX가 뭐든 간에 이건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제가 두 달 전에 본 그 옆자리는 아직 손으로 위클리를 씁니다. 회사는 그사이 조직을 개편했고 에이전트를 열었고 세션도 몇 번 했습니다. 그 사람 금요일은 아직 40분입니다.

한번 옆에서 같이 해볼까 생각은 했는데 아직 말은 못 꺼냈습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가르치려 드는 걸로 안 들릴지 모르겠어서요. 잘못 꺼내면 네 방식은 낡았다는 말이 되고, 그건 제가 이 글에서 하지 말라고 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글에서 교육이 어떻고 사례 공유가 어떻고 한참 썼는데 정작 두 발짝 옆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전환이라는 말이 큰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단위로 이야기하면 뭔가 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뭐가 바뀌려면 결국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티켓 하나 남기는 것부터 해봐야 합니다. 그건 로드맵에 안 들어가고 KPI로도 안 잡힙니다.

전환됐다고 말하려면 여기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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