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인적분할과 청년 취업 통계를 나란히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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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뉴스 두 개를 한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 봤습니다. 하나는 카카오가 회사를 둘로 쪼갠다는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년 취업자 수가 45개월째 줄고 있다는 통계였습니다. 같이 놓고 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회사가 AI를 이유로 몸을 바꾸는 장면과 그 몸에 들어갈 사람이 줄어드는 장면이 같은 데서 나온 건지 궁금했습니다. 반쯤은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다 보니 찾지도 않던 질문이 하나 따라붙어서 끝까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카카오 이사회가 8월 21일에 인적분할을 결의했습니다. 새로 생기는 회사는 카카오AI, 남는 회사는 카카오X입니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 기준으로 카카오AI 0.36, 카카오X 0.64입니다. 카카오AI는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AI와 광고와 커머스를 묶은 AI 코어 컴퍼니라고 스스로를 소개했고, 2030년까지 매출 6조 원을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12월에 임시 주총을 하고, 내년 1월 1일에 분할을 마치고, 1월 말에 다시 상장하는 일정입니다.
같은 날 오전에 카카오 주가는 전날보다 13% 넘게 빠졌습니다. 장이 끝날 때는 7%대 하락으로 닫혔습니다. 한쪽에서는 회사가 AI에 몸을 걸었다고 말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 말을 듣고 주식을 던진 겁니다.
이 어긋남이 며칠 전부터 머리에 걸려 있던 다른 숫자와 붙었습니다. 45개월입니다. 15~29세 청년 취업자 수가 1년 전 같은 달보다 줄어든 게 그만큼 이어졌습니다. 7월 한 달에만 20만 명 가까이 줄었습니다.
회사는 AI를 이유로 몸을 바꾸고, 그 회사 안에서 청년이 들어갈 일자리는 45개월째 줄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다가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일을 시작하는 건 2040년 무렵인데, 그 아이한테 무슨 직업을 권해야 하나요. 저는 아직 그 목록을 못 내놓겠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이 질문이 머리에서 잘 안 떠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AI에 집중한다는 발표에서 AI 쪽이 받은 건 36%였습니다
분할 비율을 다시 보면 이름에 AI를 붙인 쪽이 순자산의 36%를 가져갑니다. 나머지 64%는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증권 같은 테크핀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같은 콘텐츠, 그리고 카카오모빌리티를 묶은 카카오X로 갑니다. 매출 목표도 카카오X 쪽이 더 큽니다. 그러니까 자산으로만 보면 AI 쪽이 작은 쪽입니다.
그런데 그 36% 안에 뭐가 들었는지를 보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 카카오톡, 광고, 커머스입니다. 국내 메신저를 사실상 혼자 쥐고 있는 앱과, 그 앱에 붙어서 이미 돈을 벌고 있는 두 사업입니다. 새 사업이 아니라 이 회사 본체입니다.
저는 카카오가 오늘 한 게 새 AI 조직을 만든 거라기보다, 이미 돈을 벌고 있던 카카오톡 묶음을 AI라는 이름 아래로 다시 분류한 거에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도자료에 적힌 분할 이유도 그쪽입니다. 사업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의사결정 체계 하나로는 사업별 전략을 빠르게 실행하기 어려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겁니다.
이 문장에는 모델 얘기가 없습니다. 데이터나 GPU나 연구 인력 얘기도 없습니다. 의사결정 체계와 속도 얘기입니다. 분할이 바꾸는 건 AI 실력이 아니라 돈을 나누는 단위와 결재선인 것 같습니다. 이름을 다시 붙이는 일과 실력을 새로 얻는 일은 다릅니다. 앞의 건 이사회 하루면 되는데, 뒤의 건 그렇게 안 됩니다. 이 차이가 뒤에서 아이 진로 얘기를 할 때 다시 생각났습니다.
시장이 판 건 AI를 못 믿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장은 왜 던졌을까요. AI 전환을 의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기사에 나온 반응은 좀 다른 데를 가리켰습니다.
증권사들이 계열사 가치를 하나하나 더해서 계산한 카카오그룹 가치는 34조 원 정도인데, 최근 시가총액은 17조 원 안팎이었습니다. 부분을 더하면 34조인데 시장은 그 절반으로 값을 매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 차이를 줄이려고 회사를 쪼개는 건 꽤 흔한 방법입니다. 카카오AI를 따로 세우면 메신저와 광고와 커머스 묶음이 AI 회사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카카오X는 투자와 자회사 관리 회사로 따로 평가를 받습니다.
문제는 카카오가 이 카드를 처음 쓰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회사는 예전에도 사업 부문을 떼어내고 계열사를 상장하는 걸 여러 번 했고, 그렇게 상장한 계열사 대부분이 지금 공모가 아래에 있습니다. 주주들은 같은 논리로 쪼갠 회사들이 어떻게 됐는지 이미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의 13%를 AI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분할이라는 방법 자체에 대해 학습된 반응으로 읽고 있습니다. 회사는 이번엔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을 거고, 주주들은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다고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같은 발표를 두고 이렇게까지 온도가 다른 걸 보면 AI라는 단어만으로는 이제 아무도 설득이 안 되는 때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카카오는 이미 AI를 하고 있었습니다. AI 앱 카나나를 냈고, 카카오톡을 AI 비서 쪽으로 바꿨습니다. 개편하고 나서 하루 평균 체류시간이 24분에서 26분으로 늘었고, ChatGPT for Kakao는 열흘 만에 이용자 200만 명을 넘겼습니다. 나쁜 숫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같은 때에 카나나는 이용자 지표나 언제 돈이 될지가 여전히 잘 안 보인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늘어난 체류시간이 2분입니다. 저는 이 2분을 어떻게 읽느냐가 이 회사의 지금 상태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8% 늘었다고 하면 성장이고, 24분에서 26분이라고 하면 거의 그대로입니다. 같은 사실인데 어느 쪽 말로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회사는 앞쪽 말로 하고 싶을 거고 시장은 뒤쪽 말로 듣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이 어딘가로 보고 있는데, 하루에 몇 번씩 여는 앱에서 2분이 늘었다는 건 적지 않은 일이지만, 회사 하나를 AI 회사라고 부를 만큼의 변화로는 아직 안 보입니다.
그래서 카카오가 왜 AI에 집중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AI를 새로 잘하려고라기보다 이미 가진 자산을 AI라는 이름으로 다시 값 매기려고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게 잘못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기 자산 값이 잘못 매겨져 있다고 본 회사가 구조를 바꾸는 건 평범한 경영 판단입니다. 다만 그건 실력을 얻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고, 둘을 섞어서 보면 뒤에 나오는 일자리 얘기에서 원인을 잘못 짚게 될 것 같습니다.
카카오가 하필 AI를 이름으로 고른 데는 나름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지금 AI 판을 보면 모델 자체는 빠르게 흔한 물건이 되고 있습니다. 몇 달마다 제일 좋은 모델이 바뀌고, 어제 최고 성능이던 게 오늘 오픈 가중치로 풀립니다. 그런 데서 값이 남는 건 모델이 아니라 그 모델을 사람 손에 갖다주는 길입니다. 카카오가 가진 게 딱 그겁니다. 국내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여는 앱 하나요. 5,000만 명을 AI 에이전트 사용자로 만들겠다고 말할 수 있는 회사는 국내에 몇 곳 없고, 모델을 직접 안 만들어도 됩니다. ChatGPT for Kakao가 열흘에 200만 명을 모은 게 그걸 보여줍니다. 남의 모델을 자기 채널에 얹어도 숫자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카카오AI라는 이름의 속은 우리가 AI를 연구한다가 아니라, AI가 사람한테 닿는 마지막 구간을 우리가 쥐고 있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광고와 커머스와 한 법인에 묶은 것도 앞뒤가 맞습니다. 대화 맥락을 읽어서 선물하기로 이어준다는 시나리오는 AI 기술 발표가 아니라 광고와 커머스 매출 얘기니까요. 이렇게 보고 나니 오히려 처음 생각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카카오가 파는 건 AI 실력이 아니라 유통망을 다시 평가받는 거고, 그 유통망은 원래 있던 겁니다. 회사가 자기 자산 값을 다시 매기는 일과 그 자산을 만들 사람을 새로 키우는 일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채용 숫자들은 직업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사람 쪽 숫자입니다.
올해 1분기 조사에서 신입만 뽑는 회사는 2.6%였고,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작년에 전년보다 43%가 줄었다고 합니다. 전체 신규 채용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도 팬데믹 전보다 눈에 띄게 내려왔고,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일을 잃고 아직 못 구한 사람은 몇 년 사이에 30%쯤 늘었습니다.
이걸 한 줄로 줄이면 AI가 일자리를 없앴다가 될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줄이면 두 가지를 놓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45개월이 AI보다 길다는 겁니다. 올해 7월에서 45개월을 거슬러 가면 2022년 10월쯤인데, ChatGPT가 나온 건 2022년 11월 말이었습니다. 청년 취업자가 줄기 시작한 게 생성 AI가 퍼지기 전입니다. 인구 구조, 경기, 정년 쪽 압력, 경력직을 더 찾는 흐름이 이미 있었고 AI는 거기에 나중에 올라탄 것 같습니다. AI 하나로 45개월을 다 설명하려고 하면 거기서부터 틀립니다.
다른 하나가 저한테는 더 중요했는데, 이 숫자들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게 직업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입만 뽑는 회사가 2.6%라는 건 회사가 그 일을 없앴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을 경력자로 채운다는 뜻입니다. 마케터가 없어진 게 아니라 신입 마케터를 뽑는 일이 없어진 거고, 개발자가 없어진 게 아니라 1년차 개발자를 뽑아서 가르치는 예산이 없어진 겁니다.
사무직에서 실제로 뭐가 넘어갔는지 떠올려 보면 더 잘 보입니다. 회의 녹취를 정리해서 요약하는 일, 여러 부서에서 온 엑셀을 하나로 합치고 서식을 맞추는 일, 바깥 문서에서 필요한 항목만 뽑아 표로 옮기는 일, 들어온 문의를 종류별로 1차로 나누는 일, 보고서 초안 문장을 다듬는 일. 이 일들은 정답이 있고 확인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AI한테 넘기기 좋은데, 동시에 신입한테 맡기기 좋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AI한테 넘기기 좋은 일과 사람이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 같은 일이었다는 게 지금 벌어지는 일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하나가 더 겹쳐 있습니다. 대규모 공채로 신입을 뽑아서 회사 안에서 키우는 방식이 오래 표준이었는데, 이건 AI가 오기 전부터 이미 수시 채용과 경력 채용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가르쳐서 쓰는 길이 먼저 좁아진 상태에서 AI가 그 위에 얹힌 겁니다. 그래서 2.6%를 AI 하나로 설명할 수 없고, 같은 이유로 그 숫자가 쉽게 돌아오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원래 있던 흐름과 새 도구가 같은 쪽을 가리키면 되돌리기가 두 배로 어렵습니다.
가뜩이나 신입 안 뽑는데 AI까지, 사라지는 청년층 경력 사다리라는 기사 제목이 이걸 그대로 말합니다. 없어지는 건 사다리입니다. 사다리가 걸려 있던 벽은 그대로 있습니다. 벽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일을 하고 있고, 위에서 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일 겁니다. 아래에서 올라가려는 사람만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걸 압니다. 저는 이 글을 벽 위에서 쓰고 있다는 게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없어지는 게 첫 칸이라는 것
경력 사다리는 비유인데, 이걸 데이터로 떼어낸 연구가 있습니다. 스탠퍼드 디지털 이코노미 랩의 Erik Brynjolfsson, Bharat Chandar, Ruyu Chen이 미국 ADP 급여 데이터로 쓴 Canaries in the Coal Mine?입니다.
생성 AI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뒤로 AI 노출도가 제일 높은 직종에서 22~25세 초기 경력자 고용이 상대적으로 13% 줄었습니다. 회사 자체가 어려워서 사람을 덜 뽑은 효과를 빼고도 남는 감소이고, 최신판에서는 그 차이가 더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같은 데이터에서 경력자 쪽은 AI 노출도에 따른 고용 차이가 안 보였습니다. 같은 직종, 같은 회사, 같은 기간인데 다른 건 나이와 연차뿐입니다.
직업이 통째로 없어지는 거라면 이렇게 안 나왔을 겁니다. 경력자도 같이 빠졌어야 합니다. 젊은 쪽만 빠지고 경력자는 안 빠졌다는 건, AI가 가져간 게 그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직업 안에서 연차 낮은 사람한테 가던 일이라는 얘기 같습니다. 연구자들이 초기 경력자를 광산의 카나리아라고 부른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갱도가 무너지기 전에 가스에 먼저 반응하는 쪽이니까요.
이 비유가 저한테는 좀 서늘하게 읽혔습니다. 카나리아가 먼저 쓰러진다는 건, 지금 22살에서 25살인 사람들이 이 변화를 제일 먼저 몸으로 겪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 사람들은 자기가 뭘 잘못해서 안 뽑히는 줄 알 수도 있습니다. 이력서를 더 고치고, 자격증을 하나 더 따고, 면접 연습을 더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연구대로라면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그 나이와 연차에 배정되던 일 자체가 줄어든 데 있습니다. 노력으로 메울 수 있는 종류의 빈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번역 쪽이 이걸 제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번역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일감 자체는 생각만큼 많이 줄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일의 모양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번역을 통째로 맡겼는데, 이제는 기계가 만든 1차 번역을 주면서 포스트 에디팅만 해달라고 한다고요. 초벌이 없어졌고 번역가는 안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초벌이 바로 신입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신인 번역가가 싼 초벌을 몇백 건씩 하면서 문장 감각을 만들고, 그 감각으로 나중에 포스트 에디팅과 감수를 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앞 칸이 없어지면 뒤 칸이 남아 있어도 올라갈 방법이 없습니다. 학교들도 이걸 알아챈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가 통번역과 인공지능이라는 수업을 열었고, 성균관대 번역·테솔대학원은 이름을 언어·AI대학원으로 바꿨습니다. 번역이라는 직업을 버린 게 아니라 들어오는 길을 다시 짜보려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계단을 올라간 다음에 치웠습니다
이걸 남 얘기로만 쓰기는 좀 그렇습니다. 제가 일하는 방식이 바로 그 초벌을 없애는 쪽이니까요.
이 사이트 글은 리서치, 초고, 편집, 검수 단계를 나눠서 자동화한 하네스로 만듭니다. 거기서 AI한테 넘긴 일을 늘어놓아 보면 자료 찾고 1차로 정리하기, 초고 쓰기, 오탈자 잡고 문장 다듬기, 체크리스트 대조하기입니다. 제가 사회 초년생 때 하던 일과 거의 겹칩니다. 회의록 정리하고, 자료 모으고, 초안 만들어서 선배한테 빨간 펜 받던 일이요.
제 커밋의 92%가 AI 도구 위에 올라가 있다는 걸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숫자를 의존도 위험으로 읽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다른 게 보입니다. 그 92%가 예전 같으면 여러 사람의 여러 연차에 나눠져 있던 일입니다.
제가 이 하네스를 쓸 수 있는 건 AI가 만든 초벌이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서입니다. 문장은 매끄러운데 사실이 어긋날 때, 논지가 거꾸로 가 있을 때, 상관관계를 인과처럼 써놨을 때를 잡아냅니다. 그 감각은 초벌을 수천 번 직접 해봤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 값은 이미 치렀고, 지금 저는 그 이자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분할 기사와 45개월 통계를 같이 놓고 불편했던 게 이거였습니다. 다음 사람은 그 값을 치를 데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신입이었다면 이 하네스가 하는 일을 저한테 맡겨줄 선배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선배 입장에서는 AI한테 시키는 게 더 빠르고 덜 귀찮으니까요. 저부터가 그 선배 쪽에 서 있습니다. 저는 사다리를 올라간 다음에 사다리를 접어서 창고에 넣었습니다. 도구 몇 개를 세팅해서 혼자서요. 회사가 AI 전환을 선포하지 않아도 AI 격차는 같은 사무실 책상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걸 지난달에 썼는데, 이 얘기에는 세대 버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는 회사 사이보다 연차 사이에서 먼저 벌어집니다.
AI가 잡일을 없애주니 신입도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저는 이 말이 잘 안 믿깁니다. 그러려면 회사가 아직 검증 안 된 사람한테 중요한 일을 맡기는 위험을 져야 합니다. 잡일은 그 검증을 싸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검증 장치는 없애고 위험은 그대로 두면, 회사 입장에서 제일 합리적인 건 신입을 안 뽑는 겁니다. 2.6%가 그 결과처럼 보입니다.
이 직업을 하라는 목록이 자꾸 틀리는 이유
아이 얘기를 하기 전에 떠오르는 사례가 하나 있었습니다.
2016년에 제프리 힌턴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그만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딥러닝이 5~10년 안에 사람의 영상 판독을 넘어설 게 완전히 명백하다고요. 당시 제일 권위 있는 사람이 제일 분명한 근거를 들고 한 말이었습니다. 판독은 이미지 분류 문제이고, 이미지 분류는 딥러닝이 사람을 처음으로 넘어선 영역이었으니까요.
10년이 지났는데 미국은 영상의학과 공석이 수천 개고, 메이오 클리닉의 영상의학과 인원은 오히려 크게 늘었고, 연봉도 올랐습니다. 힌턴 본인도 틀렸다고 인정했습니다.
저는 왜 틀렸는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기술 예측이 틀린 건 아닙니다. AI는 실제로 판독을 잘하게 됐습니다. 틀린 건 그 직업이 어디까지냐에 대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의학과 의사가 하는 일은 판독만이 아니라, 다른 과 의사와 협진하고, 치료 방향을 같이 정하고, 조직검사와 시술을 하는 일까지입니다. 판독은 그 묶음의 한 조각이었고, 그 조각이 자동화되자 나머지 조각을 할 사람 시간이 오히려 귀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업은 일의 묶음이고 AI는 일 단위로 가져간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직업 단위로 미래를 예측하면 해상도가 안 맞습니다. 이 직업은 없어진다와 이 직업은 안전하다가 똑같이 틀리는 이유가 같습니다. 둘 다 묶음 단위로 세고 있으니까요.
ATM과 은행 창구 직원 얘기도 자주 나옵니다. 미국에 현금인출기가 깔릴 때 창구 직원은 사라질 거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지점 하나에 필요한 창구 직원은 줄었지만 지점 운영비가 내려가면서 지점 수가 늘었고, 전체 창구 직원 수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게 기계가 들어와도 일자리는 는다는 얘기의 단골 근거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꺼낼 때 보통 뒷부분이 빠집니다. 2010년 이후 모바일 뱅킹이 퍼지면서 창구 직원 수는 결국 줄기 시작했습니다. ATM이 못 한 걸 스마트폰이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 사례가 자동화는 일자리를 늘린다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자동화가 일의 일부만 가져가면 남은 일의 값이 오르고, 사람이 하던 몫을 거의 다 가져가는 도구가 나오면 그때는 줄어든다는 얘기에 가깝습니다. 30년 동안 안심하라는 근거로 쓰이다가 유효기간이 끝난 사례인 셈입니다. 저는 지금 AI를 두고 나오는 안심하라는 말들도 비슷한 운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도구가 일의 일부만 가져가니 괜찮다는 말은 맞을 수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맞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도 일의 내용은 바뀌었습니다. 현금을 세던 일에서 상품을 권하고 상담하는 일이 됐습니다. 직업 이름은 그대로인데 안에 든 게 바뀐 겁니다. 아이한테 직업 이름을 권하는 게 별로 쓸모가 없는 이유가 여기서도 보입니다. 30년 뒤에 그 이름이 남아 있어도 그 안에서 하는 일이 지금과 같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영상의학과 얘기를 안심하라는 근거로 쓰는 것도 저는 좀 조심스럽습니다. 전문의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1년차 전공의가 판독을 배우는 과정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앞에서 본 구조라면 그쪽이 먼저 얇아졌을 수도 있습니다. 직업은 살아 있는데 입구만 좁아진 상태요. 밖에서 보면 그 직업은 여전히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입구가 좁아진 건 들어가려고 해본 사람만 알게 됩니다. 지금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게 그런 모양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뭘 권해야 하나
부모들이 이 질문을 붙잡는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불안하면 뭔가 정답이 적힌 종이를 쥐고 싶어지니까요. 그래서인지 이 질문에 목록으로 답하는 글이 많습니다. AI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프롬프트 전문가, 로봇 정비, 돌봄, 심리상담 같은 것들이요. 저는 그 목록을 못 쓰겠습니다. 목록을 쓰는 순간 직업 단위로 세게 되고, 2016년의 힌턴과 같은 종류의 실수를 하게 될 것 같아서요. 그 사람은 저보다 훨씬 많이 알았고 근거도 훨씬 분명했는데도 틀렸습니다.
목록 대신 남는 건 질문 몇 개입니다.
계단의 첫 칸을 회사 밖에서 만들 수 있을까요. 회사가 3년짜리 수련 기회를 안 준다면 그 3년을 대신할 걸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개된 결과물, 끝까지 해본 프로젝트, 남이 확인할 수 있는 기록 같은 것들이요. 취미가 아니라 이력을 대신하는 거로요. 저도 개인 프로젝트 네 개를 AI와 하면서 네 번 같은 데서 막혔던 기록을 남긴 적이 있는데, 막힌 기록이 잘된 기록보다 이력으로는 더 쓸 만했습니다.
다만 이건 좀 불편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3년을 만드는 건 시간과 돈이 있는 집 아이한테 유리합니다. 회사가 주는 수련은 월급을 받으면서 하는 거고, 스스로 만드는 수련은 월급 없이 하는 거니까요. 경력 사다리가 개인 자산으로 바뀌면 그건 노력 문제가 아니라 계층 문제가 됩니다. 저는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고, 결국 각자 알아서 하라는 말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AI가 낸 걸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제 경우로 얘기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바로 막히는 게, 초벌을 일로 해볼 수 없는 사람은 그 감각을 어디서 얻느냐는 겁니다. 저는 일로 못 하면 연습으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비효율적인 걸 하는 시간이요. AI한테 물으면 3초에 나오는 걸 30분 들여서 직접 해보는 시간, 번역기를 끄고 한 단락을 직접 옮겨 보는 시간, 계산기 없이 어림해 보고 나중에 맞춰 보는 시간 같은 것들이요. 어른이 아이한테 사줄 수 있는 게 이 비효율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이게 겉으로 보기에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3초면 될 걸 30분 붙잡고 있는 아이를 보면 어른부터 답답해할 것 같습니다. 그 답답함을 참아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학교가 할 일도 여기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AI를 두고 하는 얘기는 대체로 막을지 허용할지인데, 정말 정해야 하는 건 어떤 일을 일부러 손으로 남겨둘지인 것 같습니다.
몸과 책임이 붙은 일인지도 생각해 봅니다. 현장 일, 돌봄, 시술, 수리, 얼굴을 보고 믿음을 얻어야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늦게 대체될 거라는 얘기가 지금까지의 자동화와는 맞아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걸 피난처라고 부르지는 못하겠습니다. 로봇이 얼마나 빨리 좋아지느냐에 달려 있고, 무엇보다 이쪽 일 상당수가 임금과 대우가 낮습니다. AI가 못 하는 일이 곧 괜찮은 일은 아닙니다. 끝까지 남는 일이라고 해서 좋은 일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 더 있다면 직업을 고르는 주기가 짧아졌다는 겁니다. 한 직업으로 40년을 산다는 전제로 진로를 고르는 건 이미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는 건 직업 이름이 아니라 갈아탈 때 덜 아프게 하는 습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새 도구를 만나면 끝까지 만져보는 습관, 모르는 분야 문서를 읽어내는 습관, 자기가 뭘 모르는지 말할 수 있는 습관이요. 저는 제 하네스가 반년 만에 낡는 걸 보면서 이 주기를 실감했습니다. 40년이 아니라 반년이었습니다.
스탠퍼드 연구는 미국 데이터라서 한국에 숫자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은 경력직 선호, 정년, 인구 구조가 또 다르게 얽혀 있으니까요. 그래도 같은 직종 안에서 연차에 따라 다르게 빠진다는 모양은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본 신입 공고와 2.6%라는 숫자가 그 모양과 꽤 닮아 있어서, 저는 숫자보다 그 닮은 모양이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초벌만 없어진다는 것도 지금 도구 수준에서의 얘기일 겁니다. 오늘의 AI는 초벌은 잘 만들고 검증은 잘 못해서 검증이 사람 쪽에 남아 있는데, 도구가 검증까지 하게 되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더는 사람 몫이 아니게 될 수 있습니다. 그건 안전한 데가 아니라 지금 마침 사람 쪽에 남아 있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카카오 분할이 정말 실행 속도를 올릴지도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내년 1월 재상장 뒤에 카카오AI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카나나가 돈이 되는지 숫자가 나와야 알 것 같습니다.
카카오가 오늘 한 건 이미 가진 자산을 둘로 나눠서 한쪽에 AI라는 이름을 붙인 겁니다. 결의는 이사회 하루에 끝났고 나머지는 주총과 재상장 일정표에 적혀 있습니다. 이름을 다시 붙이는 건 그렇게 됩니다. 사다리를 다시 놓는 건 그렇게 안 됩니다. 신입 공고가 43% 줄었는데 그걸 43% 되돌려 놓는 결의는 어느 이사회도 못 합니다. 회사마다 신입을 가르치는 비용을 다시 내겠다고 정해야 생기는 일이고, AI가 그 비용을 계속 싸게 대신해 주는 동안에는 그렇게 정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아이한테 이 직업을 하라고 말하면 틀린 단위로 말하는 것 같고, AI를 잘 쓰면 된다고 말하면 제가 값을 치르고 얻은 능력을 아이한테 공짜로 넘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카카오AI는 내년 1월 말에 시장의 답을 받고,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2040년쯤 받을 겁니다. 그 사이에 어른들이 해야 할 건 목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없어진 첫 칸을 대신할 뭔가를 만들어 두는 일 같은데, 저는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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