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사주는 AI를 쓰다가 내 돈으로 또 샀다
AI에 쓰는 돈을 줄여보려고 했다. 회사가 ChatGPT를 지원하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한 게 개인 구독 해지였다. 6개월 동안 매달 빠져나가던 20달러가 사라졌고, 카드 명세서에서 한 줄이 지워졌다. 계획대로였다.
오늘 그 줄이 돌아왔다. 옆에 한 줄이 더 붙은 채로.
14일이 6개월이 되던 과정
내가 AI를 처음 제대로 만진 건 ChatGPT였다. 무료 체험 14일로 시작했다. 그때는 이게 얼마짜리인지 감이 없어서, 체험 기간이라니까 그냥 눌렀다.
써보니까 너무 좋았다. 이건 좀 부끄러운 표현인데 달리 쓸 말이 없다. 그냥 좋았다.
14일이 끝나고 무료 플랜으로 하루를 버텼다. 딱 하루였다. 응답이 느려지고, 모델이 조용히 아래 등급으로 내려가고, 하루 질문 수 상한에 걸리는 걸 연달아 겪고 나니, 내가 지난 2주 동안 쓴 게 무료 플랜이 아니었다는 게 그제서야 몸으로 이해됐다. 다음 날 결제했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갈 게 있다. 무료 체험은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보여주려고 있는 게 아니다. 무료 플랜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보여주려고 있다.
이 구조가 꽤 정교하다. 만약 처음부터 무료 플랜만 줬다면 나는 "AI는 이 정도구나" 하고 판단을 끝냈을 거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불편한 줄도 몰랐을 거다. 그런데 14일 동안 위쪽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아래로 내리면, 같은 무료 플랜이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된다. 없던 걸 파는 게 아니라 있던 걸 뺏는 방식이다. 사람은 안 가진 걸 얻는 것보다 가진 걸 잃는 데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는 그 설계에 정확히 걸렸고, 걸린 걸 알면서도 결제했다. 설계를 알아본다고 해서 안 걸리는 게 아니었다. 그게 잘 만든 제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 14일 동안 내 작업 방식이 바뀌어 있었고, 바뀐 방식을 되돌리는 게 20달러보다 비쌌다.
그렇게 6개월을 썼다.
회사가 사주기 시작하자 지운 줄
6개월쯤 지났을 때 회사에서 ChatGPT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업무 계정이 생겼고, 내가 개인 돈으로 쓰던 것과 같은 모델을 회사 워크스페이스에서 쓸 수 있게 됐다.
당연히 개인 구독을 끊었다. 같은 걸 두 번 살 이유가 없었다. 이때 내가 한 판단은 "같은 모델이면 같은 물건"이었다. 이 문장이 나중에 틀린 걸로 밝혀지는데, 그건 뒤에서 얘기하겠다.
얼마 뒤 Claude 지원도 붙었다. 이 시점의 내 상태는 꽤 이상적이었다. 두 개의 최상위 모델을 쓰는데 내 카드에서는 한 푼도 안 나갔다. 회사가 도구를 사주는 회사에 다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실제로 이 조합이 잘 굴러갔다. ChatGPT Work로 브라우저 탭 일곱 개를 줄여본 것도 이 시기였다. 회사 계정이라 사내 문서와 연결되는 게 핵심이었고, 개인 계정으로는 애초에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회사 계정의 가치가 모델이 아니라 연결된 데이터에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이 상태가 오래 안 갔다.
팀 플랜인데 한도가 먼저 찼다
문제는 Claude Code에서 터졌다. 회사 팀 플랜으로 Claude Code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사용 한도가 자꾸 꽉 찼다.
처음에는 내가 뭘 잘못 쓰나 했다. 컨텍스트를 너무 많이 넣나, 세션을 안 끊나, 큰 파일을 습관적으로 통째로 읽히나. 하나씩 줄여봤는데 아무리 아껴 써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막혔다.
한창 작업 중에 막히면 손실이 두 겹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남은 작업이 멈추는 거고, 실제로 아픈 건 그 세션에 쌓인 맥락이 통째로 날아가는 거다. 어느 파일을 왜 그렇게 고쳤고, 어떤 방향은 이미 시도해서 버렸는지가 전부 그 세션 안에 있다. 다시 붙일 때는 그걸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 재설명 비용이 정확히 한도를 또 태운다. 막혀서 잃은 맥락을 복구하는 데 다시 한도를 쓰는 구조라서, 한 번 막히면 그 뒤로 효율이 계속 떨어진다.
나중에 알아보니 팀 좌석의 한도 구조가 개인 요금제와 다르게 잡혀 있었다. 공개된 자료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구분 | 사용량 배수 | 리셋 방식 |
|---|---|---|
| 개인 Pro (월 $20) | 1배 (기준) | 세션 단위 |
| Team Standard 좌석 | 1.25배 | 주간 |
| Team Premium 좌석 (좌석당 월 $100) | Standard의 5배 (Pro의 6.25배) | 주간 + 모델별 별도 상한 |
| 개인 Max | 상위 | 5시간 롤링 윈도 |
Claude Code 자체가 팀 플랜에서는 Premium 좌석에 붙는다. 그리고 핵심은 배수가 아니라 리셋 방식 쪽이다.
Premium 좌석은 전체 모델 한도와 Sonnet 계열 한도가 따로 돌아가고, 둘 다 세션 시작 후 7일 뒤에 리셋된다. 5시간마다 회복되는 개인 Max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롤링 윈도는 크게 한 번 쓰고 점심 먹고 오면 어느 정도 돌아와 있다. 주간 상한은 화요일에 크게 쓰면 목요일에 남는 게 없고, 그 주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다.
내가 겪은 게 이거였다. 총량이 모자란 게 아니라 총량이 회복되는 속도가 내 작업 리듬과 안 맞았다.
그래서 개인 카드로 Claude Pro를 결제했다. 회사 계정으로 하다가 막히면 개인 계정으로 넘어가서 이어서 했다.
이게 첫 번째 이중 구독이었다. 그리고 이 지출은 계산이 됐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 선택 | 월 추가 부담 | 얻는 것 |
|---|---|---|
| 회사 좌석만 쓴다 | 0원 | 주 단위로 막힘 |
| 회사 좌석 + 개인 Pro | $20 | 막혔을 때 넘어갈 자리 |
| 회사가 전원 Premium으로 올린다 | 좌석당 $100 | 회사가 인원수만큼 곱해서 부담 |
세 번째 줄이 안 되는 이유가 명확하다. 회사는 좌석을 인원수만큼 사야 한다. Claude Code를 하루 종일 도는 사람과 가끔 문서 요약에 쓰는 사람이 같은 조직에 있는데, 앞사람 기준으로 좌석을 맞추면 뒷사람 몫까지 5배 가격으로 사게 된다. 나는 개인이라 나 하나만 사면 된다. 회사가 못 하는 최적화를 내가 20달러로 한 거다.
이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종류의 지출이었다. 더 쓰니까 더 냈다.
이 시점에 내 상태를 정리하면 이렇다. 회사 지원 ChatGPT, 회사 지원 Claude, 그리고 개인 결제 Claude Pro. AI 지출은 다시 20달러가 됐지만 마음은 편했다.
오늘 뜬 고지 한 줄
오늘 ChatGPT에 접속했더니 안내가 하나 떠 있었다. 요지는 이거였다. 내 채팅 내역을 회사 관리자가 볼 수 있다.
나는 이걸 보고 한동안 화면을 그냥 봤다. 놀랐다기보다는, 몰랐다는 게 이상했다. 나는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데이터가 어디에 남는지를 남들보다 자주 생각하는 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회사 워크스페이스에 뭘 넣었는지 한 번도 이 각도로 세어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짚고 가자. 이건 회사가 몰래 뭘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ChatGPT의 Business·Enterprise 워크스페이스에서는 관리자가 Compliance API와 감사 로그를 통해 구성원의 대화를 열람하고 내보내고 삭제할 수 있다. 이건 뒤에 숨겨둔 기능이 아니라 문서로 공개된 관리자 기능이다. 그리고 OpenAI는 이 접근의 용도를 소송, 규제 조사, 보안 감사로 명시한다. 일상적인 인사 관리나 근태 감시용이 아니라고 못 박아둔다.
그러니까 정확한 문장은 "관리자가 내 대화를 본다"가 아니다. "관리자가 내 대화를 볼 수 있는 경로가 존재하고, 그 경로를 언제 여는지는 내가 정하지 않는다"다.
회사가 그 버튼을 가진 이유
한쪽만 보면 글이 얕아지니까 반대편도 적어둔다. 회사가 이 기능을 켜둔 건 대체로 회사가 나빠서가 아니라 회사도 안 켤 수가 없어서다.
법인이 유료 AI 워크스페이스를 도입하는 순간 회사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을 같이 산다. 구성원이 고객 개인정보를 프롬프트에 붙여넣었다면 그건 회사의 개인정보 처리 사고다. 소스 코드가 통째로 들어갔다면 그건 회사 자산의 외부 반출이다. 나중에 규제 기관이나 법원이 "그 시점에 어떤 데이터가 어디로 갔는지 대라"고 하면 회사는 대야 한다. 감사 로그가 없으면 그때 회사는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래서 이 기능은 감시 도구이기 전에 입증 도구다. 그리고 감시 도구와 입증 도구는 기술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같은 API를 열면 둘 다 된다. 구분은 정책과 절차에서만 생기고, 정책은 사람이 바꾼다.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침해 사고를 알아챈 뒤 공개까지 한쪽은 7일, 한쪽은 40개월이 걸렸던 사례를 정리하면서 내가 세었던 것도 유출 규모가 아니라 "언제 알았고 언제 말했나"였다. 그때 40개월이라는 숫자를 만든 건 기술이 아니라 그 위에 있던 판단 층이었다. 오늘 내가 본 것도 같은 자리에 있다. 기능은 중립이고, 그 기능을 언제 쓸지 정하는 층이 내 밖에 있다.
내가 산 건 차단이 아니다
개인 구독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회사 워크스페이스의 관리자 권한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미 쌓인 기록도 그대로다. 나는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제했다.
내가 산 건 분리다.
회사 계정에 넣을 것과 내 계정에 넣을 것을 내가 나눌 수 있는 상태. 그게 전부다. 업무 코드와 업무 문서는 회사 워크스페이스에 넣는 게 맞다. 애초에 그러라고 산 좌석이고, 그렇게 쓰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안전하다. 문제는 내가 그 경계를 안 지키고 있었다는 거다.
문제는 내가 그 경계를 엄밀하게 지키고 있었냐는 거다. 업무 계정이 손에 잡히는 자리에 있으면 업무와 개인 작업의 경계는 흐려진다. 창을 새로 열고 계정을 바꾸는 것보다 이미 열려 있는 탭에 이어서 묻는 게 빠르니까.
그리고 개별 대화가 무해한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게 이 고지를 보고 내가 제일 늦게 깨달은 부분이다. 연속된 기록은 개별 대화의 합이 아니라 다른 물건이다. 몇 달치를 시간순으로 이어붙이면 그건 내가 뭘 궁금해했고 뭘 반복해서 붙잡고 있었는지의 궤적이 된다. 나는 그런 문서를 만든 적이 없다. 만들어진 거다.
관리자가 그걸 실제로 열어볼 거라고 걱정한 건 아니었다. 그 판단을 내가 못 한다는 게 걸렸다.
아까 "같은 모델이면 같은 물건"이라고 판단했다고 썼는데, 그게 틀린 지점이 여기다. 모델은 같다. 응답 품질도 같다. 다른 건 그 대화가 누구 계정에 남느냐다. 나는 6개월 전에 그 항목을 아예 비교 대상에 안 넣고 계산을 끝냈다.
두 번째 이중 구독이 여기서 나왔다. 첫 번째는 용량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소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용량은 더 쓰면 더 내는 거라 계산이 되지만, 소유는 얼마를 내야 충분한지 계산이 안 된다.
그래서 내 구독을 전부 적어봤다
두 번째 결제를 하고 나서, 지금 내가 매달 뭘 사고 있는지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앉아서 적었다.
AI 도구
| 항목 | 결제 주체 | 월 금액 |
|---|---|---|
| ChatGPT (업무 워크스페이스) | 회사 | — |
| Claude (업무 좌석) | 회사 | — |
| Claude Pro | 개인 | $20 |
| ChatGPT Plus | 개인 | $20 |
| Google One AI Plus | 개인 | 11,000원 (출시가) |
Google One AI Plus는 2026년 1월 27일에 한국을 포함한 35개국에 나왔고 출시 시점 국내 가격이 월 11,000원, 월 200 AI 크레딧에 저장공간 200GB였다. 이후 구글이 글로벌 기준가를 월 7.99달러에서 4.99달러로 내리고 저장공간을 400GB로 늘렸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청구서에 찍히는 금액은 내가 기억하는 금액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인하는 자동으로 반영되기도 하고 갱신 시점에 걸리기도 한다.
AI만 세면 달러 40에 원화 만 원 남짓이다. 환율을 1,400원으로 잡으면 대략 월 6만 7천 원, 연 80만 원.
이 표의 함정은 위쪽 두 줄이다. 회사 부담분을 0원으로 적는 순간 이 지출이 싸 보인다. 실제로는 내가 쓰는 AI의 총 원가에 좌석 두 개 값이 더 붙어 있고, 나는 그중 내 카드에 찍히는 부분만 보고 있다. 내가 관리하는 숫자와 실제로 나를 위해 지출되는 숫자가 다르다. 회사 지원이 끊기는 날 이 표는 갑자기 두 배가 된다.
미디어
| 항목 | 월 금액 |
|---|---|
| YouTube Premium | 14,900원 (안드로이드·PC 기준) |
| Netflix 프리미엄 | 17,000원 |
| ↳ 추가 회원 — 아버지 | +5,000원 |
| ↳ 추가 회원 — 동생 | +5,000원 |
| 합계 | 41,900원 |
이 줄은 내가 제일 정확하게 아는 줄이다.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를 유료화한다는 얘기를 나는 해외 뉴스로 먼저 봤다.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시행됐고, 한국에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래서 국내에 적용되자마자 아버지와 동생을 추가 회원으로 등록했다. 단속당하고 나서 허둥댄 게 아니라, 규칙이 바뀔 걸 알고 바뀌는 날 맞춰서 처리했다.
정책은 이렇다. 넷플릭스 계정의 이용 대상은 회원 본인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 그러니까 한 가구다. 따로 사는 사람과 나눠 쓰려면 추가 회원 슬롯을 사야 하고 1명당 월 5,000원이다. 프리미엄(17,000원)은 최대 2명, 스탠다드(13,500원)는 1명까지 붙일 수 있고, 광고형(5,500원)과 베이직(9,500원)은 아예 안 된다.
그래서 프리미엄의 동시 접속 4명과 추가 회원 2명은 서로 다른 숫자다. 4명은 우리 집 안에서 쓰는 자리고, 아버지와 동생은 거기 안 들어간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계정과 비밀번호와 프로필을 따로 받고 각자 한 대에서만 본다. 나한테 있는 건 결제 의무와 추가·삭제 권한뿐이다.
저 만 원은 그러니까 가족이 보태주는 돈이 아니다. 넷플릭스에 내는 돈이고, 27,000원 전액이 내 카드에서 나간다.
여기서 짚고 싶은 건 내가 몰랐다는 게 아니다. 나는 알았다. 짚고 싶은 건 알아도 결과가 같았다는 거다. 미리 알고 준비한 소비자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 "정해진 날에 만 원을 더 내는 것"이었다. 규칙을 먼저 안다고 해서 안 내게 되는 게 아니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아버지와 동생은 내 가족이 아니라 다른 가구다. 같이 안 사니까. 예전에 계정 하나로 되던 걸 "가구"라는 선을 새로 그어서 과금 대상으로 바꿨다. 가족의 범위를 정하는 게 통신사도 국가도 아니고 스트리밍 회사라는 것, 그게 이 줄의 진짜 내용이다.
YouTube Premium은 iOS 앱 안에서 결제하면 애플 인앱 수수료가 얹혀서 19,500원이 된다. 같은 상품인데 결제한 기기에 따라 4,600원, 연으로 55,200원 차이가 난다. 라이트 요금제는 8,500원이라 음악을 안 들으면 그쪽이 맞다.
미디어만 세면 월 41,900원, 연 50만 원이다.
도구·게임
1Password, 로블록스 게임 구독, 마인크래프트 게임 구독. 앞의 하나는 내 것이고 뒤의 둘은 아들 것이다.
게임 구독 두 개는 금액이 크지 않은데 이게 제일 안 세어진다. 결제일이 제각각이고, 인앱 결제라 카드 명세서에 게임 이름이 아니라 스토어 이름으로만 찍힌다. 명세서에 같은 스토어 이름으로 여러 줄이 찍혀 있으면 그게 구독인지 일회성 결제인지 그 줄만 봐서는 모른다.
나는 이 두 줄의 정확한 금액을 지금 못 적는다. 명세서를 열어봐야 안다.
1Password는 성격이 다르다. 이건 내가 실제로 끊을까 고민하고 대체품까지 써본 항목이다.
고민의 출발은 요금제였다. 나는 가족 요금제를 쓰는데 실제로는 나 혼자 쓴다. 1Password 가족 요금제는 월 $4.99에 5인까지인데 그중 한 자리만 쓰고 있는 셈이다. 액수가 커서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걸 알면서 계속 낸다는 게 걸리는 종류의 지출이다.
그래서 Bitwarden 무료 버전으로 옮기려고 했다. 셀프호스팅까지 붙여볼 생각이었다.
여기서 안 넘어갔는데, 정확히 말하면 막힌 게 아니다. UI가 별로였다. 기능이 없는 게 아니라 쓰는 맛이 떨어졌다. 비밀번호 관리자는 하루에 열 번 넘게 여는 물건이라 이 차이가 크게 온다. 자동 완성이 한 번에 안 붙거나 검색 결과가 한 단계 더 들어가야 나오면, 그 1~2초가 하루에 열 번 쌓이고 한 달이면 꽤 된다.
가격은 명백히 Bitwarden 쪽이 낫다. 무료 티어가 실제로 쓸 만하고 프리미엄도 연 10달러다. 1Password 가족 요금제의 5분의 1도 안 된다. 그런데 안 옮겼다.
셀프호스팅은 거기 얹힌 두 번째 부담이었다. 프리미엄 기능을 다 열려면 그쪽이 자연스러운데, 그러려면 서버를 띄우고 Docker를 올리고 HTTPS를 걸고 백업을 챙겨야 한다. 그 서버가 죽으면 내 모든 계정의 비밀번호가 같이 안 열린다. 취미로 돌리는 라즈베리파이가 아니라 내가 가용성을 책임지는 인프라가 된다.
그래서 멈췄고 아직 1Password에 남아 있다. 다시 해볼 생각이긴 하다.
여기서 알게 된 게 이 글에서 제일 쓸모 있는 문장이다. 내가 매달 내는 돈의 상당 부분은 기능값이 아니라 편의성값이다. 기능 목록으로 비교하면 진작 옮겼어야 하는데 안 옮겼다. 하루에 열 번 여는 도구에서는 마찰 1초가 월 몇 달러를 이긴다. 그리고 무료로 옮긴다는 건 돈을 안 낸다는 뜻이 아니라 그 편의성과 운영을 내가 떠안는다는 뜻이다. 그 교환이 이득인지는 내 시급으로 따져야 하는데, 나는 그 계산을 하다 말았다. 귀찮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아직 값을 안 매긴 노동이다.
구독이라고 생각한 적 없던 것들
여기부터가 이 글을 쓰게 만든 부분이다.
정수기 렌탈. 인터넷 + TV. 전화 요금.
이걸 나는 한 번도 구독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런데 구조를 보면 똑같다.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쓰든 안 쓰든 나가고, 끊으려면 위약금이나 약정 잔여기간을 확인해야 하고, 대부분 내가 계약 시점의 조건을 기억 못 한다.
오히려 AI 구독보다 나쁜 조건도 있다. Claude Pro는 이번 달에 끊으면 다음 달부터 안 나간다. 정수기 렌탈은 그게 안 된다. 약정이 걸려 있고, 중도 해지에는 위약금이 붙고, 소유권 이전 시점이 계약서에 적혀 있는데 나는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 인터넷 약정 만료일도 모른다. 해지 난이도가 높을수록 그 구독은 내 시야에서 더 빨리 사라졌다.
이 항목들은 AI 구독보다 훨씬 오래됐고, 훨씬 오래 나갈 예정이고, 총액도 더 크다. 다른 집을 생각해보면 여기에 비데,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같은 게 더 붙는다. 렌탈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하는 일은 구독이다.
AI 구독료가 비싸다고 느껴진 건 그게 비싸서가 아니라 새로워서였다. 새 항목은 눈에 띄고 오래된 항목은 배경이 된다. 매달 나가는 돈 중에 내가 의식하는 건 최근에 추가한 것뿐이다.
왜 총액이 안 세어지는가
여기까지 적고 보니 내가 총액을 못 세는 이유가 네 가지로 정리됐다. 각각이 다른 종류의 문제다.
- 결제 경로가 흩어져 있다. 카드 두 장, 계좌 자동이체, 앱스토어 인앱 결제, 통신사 합산 청구. 한 화면에 모이는 곳이 없다.
- 표기가 상품명이 아니다. 인앱 결제는 스토어 이름으로 찍히고, 해외 서비스는 영문 약어로 찍힌다. 명세서를 봐도 뭘 산 건지 모른다.
- 금액이 고정이 아니다. 달러 결제는 환율에 따라 매달 다르고, 인앱 결제는 기기에 따라 다르고, 프로모션 가격은 갱신 시점에 원가로 돌아간다.
- 여러 항목이 한 줄로 합쳐진다. 인터넷·TV·전화가 결합 청구서 한 줄로 오면 그 안에서 각각이 얼마인지 모른다. 묶을수록 싸지는 대신 뜯어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결합 상품은 총액은 알고 내역은 모르는 상태로 몇 년씩 간다.
이 네 가지 중에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1번뿐이다. 결제 수단을 몰면 되니까 마음만 먹으면 된다. 나머지는 파는 쪽이 정한 표기 방식이고 청구 방식이라 소비자가 손댈 데가 없다. 구독 총액이 안 세어지는 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세기 어렵게 설계돼 있어서라는 결론이 좀 억울했다.
억울해하는 걸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세기 어렵게 만든 쪽을 탓해도 청구서는 나한테 온다.
왜 전부 구독이 됐나
목록을 보다가 궁금해졌다. 이 중에 원래부터 구독이었던 게 몇 개나 되나.
정수기는 예전엔 사서 썼다. 소프트웨어도 패키지로 사서 설치했다. 음악은 앨범을 샀고, 영화는 빌리거나 샀다. 지금은 전부 매달 낸다. 나는 이걸 소비자 편의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파는 쪽 입장에서 보니까 이유가 훨씬 명확했다.
한 번에 100만 원을 받는 것과 5년 동안 매달 2만 원을 받는 것은 총액이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사업이다. 후자는 매출이 예측된다. 다음 분기에 얼마가 들어올지 알면 그만큼 미리 쓸 수 있고, 회사 가치도 그 예측 가능성에 값이 매겨진다. 그래서 파는 쪽은 총액이 같아도 구독을 선택할 이유가 충분하다.
소비자 쪽에서는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100만 원짜리 정수기를 살 때는 고민하지만 월 2만 원은 안 고민한다. 이게 핵심이다. 진입할 때 한 번 고민하던 걸 안 고민하게 만드는 대신, 나갈 때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갈 때의 고민은 위약금과 약정 잔여기간이라는 형태로 미리 심어둔다.
그리고 매출을 올리는 두 번째 방법이 있다. 가격을 안 올리고 과금 단위를 쪼개는 것이다.
Netflix가 한 게 정확히 이거다. 요금제 가격은 그대로 17,000원이다. 대신 그 17,000원이 커버하는 범위를 "한 가구"로 좁혔다. 예전에는 계정 하나면 됐던 게, 이제는 같이 안 사는 사람마다 5,000원씩 붙는다. 내 경우 17,000원이 27,000원이 됐으니 59% 인상인데, 이걸 요금 인상이라고 보도한 기사는 없다. 인상이 아니라 정책 변경이기 때문이다. 가격표는 그대로 두고 가격표가 적용되는 범위만 줄이면, 소비자가 내는 돈은 오르는데 인상 뉴스는 안 난다.
이 수법이 무서운 건 소비자가 반발할 지점이 없다는 거다. 요금이 올랐으면 화를 내겠는데, 요금은 그대로고 "원래 이게 규칙이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실제로 규칙상 맞는 말이다.
같은 구조를 회사 좌석에서도 봤다. 회사가 AI를 도입할 때 사는 단위도 사람이다. 인원이 늘면 총액이 그만큼 곱해진다. 좌석 단가를 안 올려도 조직이 커지면 매출이 커진다. 소비자 쪽이든 법인 쪽이든, 파는 쪽은 가격이 아니라 단위를 만진다.
AI 구독은 여기서 하나 더 다르다. 이건 판매 전략이 아니라 원가 구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스트리밍한다. 내가 하루에 10시간을 봐도 넷플릭스가 그 드라마를 다시 만들지는 않는다. 추가 원가가 대역폭 정도다. 그래서 무제한 요금제가 성립한다. 그런데 AI는 내가 요청할 때마다 GPU가 실제로 돈다. 어제 한 질문과 오늘 한 질문은 각각 따로 비용이 든다. 원가가 사용량에 정비례한다.
그래서 AI 구독에는 반드시 한도가 붙는다. 붙을 수밖에 없다. 정액제처럼 팔지만 실제로는 종량제이고, 그 사이의 간극을 한도라는 이름으로 메운다. 내가 팀 플랜에서 막힌 것도 회사가 좌석을 아껴서가 아니라 이 구조 때문이었다. 좌석 등급이 올라가면 한도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회사가 대신 부담하는 종량 예산이 올라가는 거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AI 구독은 앞으로도 "다 쓰면 막히는" 형태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처럼 마음 편히 무제한이 되는 날이 오려면 추론 원가가 대역폭 수준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때까지는 나 같은 사람이 회사 좌석 위에 개인 구독을 하나 더 얹는 구조가 계속 생긴다. 이건 내 소비 습관 문제가 아니라 요금제 설계와 내 사용량이 만나는 지점의 문제다.
이건 나만의 계산이 아니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봤다. AI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보다 이 목록이 훨씬 길 것이다.
나는 개발자고 AI를 코드와 글에 쓴다. 그래서 내 스택은 언어 모델 몇 개로 끝난다. 그런데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이미지 생성, 영상 생성, 음성 합성, 자막, 편집, 썸네일, 스톡 소재가 붙는다. 실제 가격을 찾아봤다.
| 도구 | 진입 요금 | 실무용 구간 |
|---|---|---|
| Midjourney (이미지) | $10 | Standard $30 |
| Runway (영상) | $12 (연납 기준) | Pro~Max $28~76 |
| ElevenLabs (음성) | $5~6 | Creator $22 |
상업적 이용 조건이 요금제에 걸려 있는 게 포인트다. ElevenLabs는 유튜브 수익화나 클라이언트 작업에 쓰려면 최소 Starter 요금제여야 한다. 무료 플랜으로 만든 결과물은 애초에 수익화에 못 쓴다. 크리에이터한테 이 구독은 도구값이 아니라 영업 허가증에 가깝다.
진입 요금으로만 세도 이미지·영상·음성 세 개에 월 27달러다. 실무용 구간으로 올리면 80달러가 넘고, 여기에 언어 모델 한두 개와 편집 도구를 얹으면 월 15만 원 선이다. 내 통신비를 넘긴다.
그리고 이 도구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끊는 순간 만든 결과물의 재편집이 막힌다. 프로젝트 파일이 그 서비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넷플릭스는 끊어도 어제 본 드라마가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니 잃을 것도 없다. 그런데 영상 생성 도구를 끊으면 진행 중이던 작업이 잠긴다. 내보내기 한 최종본은 남지만, 그걸 다시 고칠 수 있는 상태는 안 남는다.
기존 구독은 접근권을 판다. AI 도구 구독은 접근권에 더해 내가 만든 것의 보관과 편집권을 같이 쥐고 있다. 그래서 해지 결정의 무게가 다르다. 넷플릭스 해지는 그 달에 안 보면 되는 문제고, 제작 도구 해지는 내 포트폴리오가 동결되는 문제다.
같은 구조가 회사 계정에서도 나온다. 회사 워크스페이스에 쌓인 내 대화 기록은 내가 만든 건데 내 계정에 있지 않다. 퇴사하면 못 가져간다. 관리자 열람 고지가 나를 찌른 지점이 정확히 여기였다. 나는 그 기록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몇 달을 썼다.
세 번째 선택지는 있는데 그것도 공짜가 아니다
돈을 안 내고 프라이버시를 챙기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로컬 LLM이다.
나는 M4 맥북에서 로컬 LLM으로 5일을 살아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데이터는 확실히 안 나간다. 그건 진짜였다. 프롬프트가 내 랩탑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갔고, 그게 주는 안심이 생각보다 컸다.
문제는 대가다. 속도가 떨어지고, 컨텍스트가 짧고, 도구 호출 안정성이 클라우드 모델과 비교가 안 됐다. 회사에 로컬 LLM을 들여놓으면 ROI가 나오는지 따져봤을 때도 같은 벽이었다. 계산이 맞는 구간이 분명히 있는데, 그 구간이 내 일상 작업 대부분과 겹치지 않았다.
그리고 로컬 LLM에도 값이 붙는다. 큰 모델을 돌릴 만한 통합 메모리가 달린 랩탑은 수백만 원이다. 이건 구독료를 면제받은 게 아니라 3년치 구독료를 선불로 낸 것에 가깝다. 다만 성질이 다르다. 값이 오르지 않고, 서비스가 문 닫아도 안 죽고, 약관이 바뀌어도 내 쪽은 그대로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로컬로 갈아타자가 아니었다. 어떤 대화를 어디에 넣을지 내가 나누는 것이다. 자리가 세 개 있고 각각 성질이 다르다.
| 자리 | 넣어도 되는 것 | 대가 |
|---|---|---|
| 회사 워크스페이스 | 업무 코드·문서·사내 데이터 연결이 필요한 일 | 관리자 열람 경로가 항상 열려 있음 |
| 개인 계정 | 사이드 프로젝트·글·커리어·개인 고민 | 월 20달러 |
| 로컬 | 나가면 안 되는 것 | 성능 저하 + 하드웨어 선불 |
오늘 내가 산 건 두 번째 줄이다. 20달러로 산 건 보안이 아니라 이 표를 쓸 수 있는 상태다. 표가 없을 때는 전부 첫 번째 줄에 들어갔다.
끊을 것과 안 끊을 것을 가르는 질문
목록을 다 적고 나니 어떤 걸 끊어야 하는지가 오히려 애매해졌다. 금액순으로 자르는 건 답이 아니었다. 제일 비싼 게 제일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항목마다 질문 세 개를 던져봤다.
첫째, 끊으면 뭐가 잠기나. Claude Pro는 다음 달에 다시 사면 그대로다. 제작 도구는 작업물이 잠기고, 클라우드 저장소는 파일이 잠긴다. 잠기는 게 있는 구독은 사실상 해지 옵션이 없는 구독이다. 그런 건 들어갈 때 더 따졌어야 한다.
넷플릭스는 내 쪽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잠긴다. 그런데 이 질문의 대상을 나로 한정하면 답이 틀린다.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 잠긴다. 내가 추가 회원 슬롯을 빼면 아버지와 동생의 계정이 같이 죽는다. 두 사람은 각자 계정과 시청 기록을 갖고 있는데 결제 스위치는 나한테 있다.
금액만 보면 27,000원에서 만 원을 덜어낼 수 있는 제일 만만한 후보다. 실제로는 전화를 두 번 걸어야 하는 항목이다. 그래서 이 줄은 내 판단만으로 정리할 수 있는 구독이 아니다.
둘째, 이게 대체제인가 보완제인가. 회사 Claude 좌석과 개인 Claude Pro는 대체제처럼 보이지만 보완제였다. 하나가 막힐 때 다른 하나로 넘어가는 용도니까. 반대로 ChatGPT Plus와 Google One AI Plus는 상당 부분 대체제다. 이건 겹치는 만큼 낭비다. 대체제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있으면 그중 하나는 대체로 습관이다.
셋째, 최근 30일에 몇 번 열었나. 이게 제일 정직하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사용 기록을 봐야 하는데, 대부분의 구독은 그걸 안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시청 기록을 보여주고, AI 도구는 대화 목록이 남아 있어서 셀 수 있다. 반면 정수기가 이번 달에 몇 리터를 뽑았는지, 클라우드 저장소에 마지막으로 접속한 게 언제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사용량을 안 보여주는 구독일수록 해지 후보에서 조용히 빠진다. 기억나는 게 없으면 아쉬울 것도 없어야 정상인데, 실제로는 반대로 작동한다.
이 셋으로 걸러보니 지금 당장 정리할 후보는 AI 쪽이 아니었다. 게임 구독 두 개와, 금액도 모르고 만료일도 모르는 렌탈 계약 쪽이었다. AI 구독이 눈에 띄었을 뿐이지 문제는 거기 있지 않았다.
세어본 다음에 남은 것
이 글을 쓰면서 내 지출을 다 세는 데 실패했다. 게임 구독 두 개의 금액을 모르고, 정수기 렌탈 잔여 기간을 모르고, 인터넷 약정 만료일을 모르고, Google One 가격이 인하 반영됐는지 모른다.
확실하게 센 건 AI와 미디어뿐이다. AI 연 80만 원, 미디어 연 50만 원, 합쳐서 연 131만 원. 그리고 이게 전체의 절반쯤 될 거라고 짐작한다. 짐작이라고 쓰는 이유는 나머지를 안 세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AI 구독을 몇 개 쓰는지는 정확히 안다. 방금 결제했으니까.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진짜 결론이다. 나는 최근에 추가한 지출만 관리하고 있었다. AI 구독이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 건, 그게 유일하게 내 시야 안에 있는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AI가 구독의 시대를 연 게 아니다. 구독의 시대는 정수기 렌탈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이미 시작돼 있었고, AI는 그중에 내가 유일하게 날짜를 기억하는 항목일 뿐이다.
AI 거품이 터지면 내 개발 환경이 어떻게 되는지 세어봤을 때 내 커밋의 92%가 외부 서비스에 얹혀 있었다. 그때 센 건 의존도였다. 오늘 센 건 그 의존도에 붙은 청구서다. 그리고 AI랑 일하면서 네 번 같은 자리에서 막혔던 것처럼, 이것도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막혔다. 6개월 전에 개인 구독을 끊을 때 나는 "같은 모델이면 같은 물건"이라고 계산했고, 오늘 그 계산에 빠져 있던 항목의 값을 치렀다.
이번 주말에 카드 명세서를 열어서 나머지를 마저 셀 생각이다. 세고 나면 몇 개는 끊을 것 같다. 다만 오늘 결제한 두 줄은 아닐 거다. 그 둘은 용량과 소유를 사는 거고, 둘 다 아직 나한테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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