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서울에서 모델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판다

며칠 전 브라우저 탭 세 개를 나란히 열어두고 있었다.

하나는 구글이 서울에서 연다는 "AI Agents Live + Labs" 등록 페이지였고, 하나는 앤트로픽이 6월에 자사 최신 모델 접근을 정부 지침으로 막았다가 다시 연 공지였고, 나머지 하나는 오픈AI가 새 모델 라인업을 미국 정부 요청으로 일부 제한했다는 6월 말 기사였다. 원래는 서울 행사만 확인하려던 거였는데, 탭을 닫으려다 세 화면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표면만 보면 셋은 따로 노는 뉴스다. 하나는 아시아 개발자 행사 초대장, 둘은 프런티어 랩의 접근 제어 사건. 그런데 시점이 겹친다. 두 프런티어 모델 층이 6월 한 달 사이에 나란히 정부발 제한을 맞는 동안, 구글은 모델 자체를 자랑하는 대신 그 위에 얹는 층(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프로덕션)을 들고 서울로 오고 있었다.

나는 행사 참석자도 아니고 이 모델들을 직접 만져본 사람도 아니다. 세 조각을 나란히 놓고 봤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놓고 보니, 구글이 계속 밀어온 "멀티모델 유연성"이라는 슬로건이 갑자기 다르게 읽혔다. 그게 이 글의 출발점이다.

6월에 두 프런티어 모델이 나란히 정부에 붙잡혔다

먼저 곁다리부터 빠르게 짚고 넘어가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구글이지만, 배경을 모르면 뒷부분이 안 산다.

6월 12일, 앤트로픽이 방금 공개한 Fable 5와 Mythos 5의 접근을 당일 끊었다. 회사가 스스로 판단해서 조심한 게 아니었다. 앤트로픽 공지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권한을 근거로, 모든 접근을 중단하라는 수출통제 지침을 발령"했다. 지침은 오후 5시 21분(미 동부시각)에 도착했고, 모델은 그 즉시 내려갔다.

막힌 대상이 흥미롭다. 미국 안이냐 밖이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외국 국적자"였다. 앤트로픽에서 일하는 외국 국적 직원까지 포함해서. 국경이 아니라 여권으로 선을 그은 셈이다. 한국에서 이 모델을 워크플로에 얹어 쓰던 팀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오후 문이 잠긴 것이다.

무엇이 이 사달을 냈나. 앤트로픽이 검토한 건 "좁은 범위의 잠재적 탈옥(jailbreak)"이었는데, 그 정체가 소박하다 못해 허무하다. 모델에게 특정 코드베이스를 읽게 하고 소프트웨어 결함을 찾아 고치게 하는 것. 개발자라면 매일 하는 그 일이다. 그런데 같은 능력이 방향만 틀면 취약점을 찾아내는 도구가 된다. CNBCTIME 보도에 따르면 이 우회 기법을 시연한 게 아마존 연구진이었고, 그게 국가안보 우려로 번졌다.

18일쯤 지나 통제가 풀렸다. 6월 30일 상무부가 제한을 해제했고, 7월 1일 전 세계에서 다시 접근이 열렸다. 재개된 모델에는 해당 기법을 99% 넘게 걸러내는 새 안전 분류기가 붙었고, 걸린 요청은 이전 세대인 Opus 4.8로 우회 라우팅된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한 문장. 이건 랩이 알아서 몸을 사린 자율 규제가 아니라, 정부 명령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오픈AI도 비슷한 자리에 섰다. 6월 26일 롤아웃한 GPT-5.6 라인업(최강 Sol, 균형형 Terra, 속도·저가형 Luna) 역시 일부 접근이 미국 정부 요청으로 제한됐다. 두 프런티어 랩이 한 달 안에 나란히, 자기 최신 모델의 문을 정부 손에 맡긴 것이다.

여기서 하나 짚어둘 게 있다. 앤트로픽과 오픈AI는 안전을 대하는 평판이 정반대에 가까운 회사들이다. 한쪽은 신중하기로, 다른 쪽은 공격적으로 배포하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6월엔 그 정반대의 두 회사가 같은 달에 같은 벽에 부딪혔다. 이건 어느 랩이 조심스러웠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층에 있었다. 프런티어 모델 층 자체가 이제 정부가 스위치를 쥐는 자리가 됐다는 것.

이 평행선이 이 글에서 내가 계속 되돌아올 지점이다. 모델 층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룻밤 사이에 문이 닫힐 수 있다는 것.

같은 달, 구글은 모델을 자랑하는 대신 플랫폼을 깔았다

이제 주인공으로 넘어가자.

구글이라고 모델 경쟁에서 발을 뺀 건 아니다. Gemini 3는 에이전틱·"바이브코딩" 최강급을 주장한다. WebDev Arena에서 1487 Elo, Terminal-Bench 2.0에서 54.2%, SWE-bench Verified에서 76.2%. Google I/O 2026에서는 Gemini 3.5와 Omni, 에이전트 개발 플랫폼 Antigravity, 시스템 레벨 에이전트까지 쏟아냈다. 벤치 슬라이드만 놓고 보면 여느 프런티어 랩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구글이 진짜 힘을 준 곳은 벤치 숫자가 아니었다.

4월 Cloud Next 2026에서 구글은 Vertex AI를 Gemini Enterprise Agent Platform으로 리브랜드하고 통합했다. 공지의 표현을 빌리면 "앞으로 모든 Vertex AI 서비스와 로드맵은 독립 서비스가 아니라 이 Agent Platform을 통해서만 제공된다." 별도로 돌던 Agentspace도 이 안으로 흡수됐다. 메시지가 노골적이다. 우리가 파는 건 이제 '모델을 부르는 API'가 아니라 '에이전트를 굴리는 공장'이다.

숫자 몇 개가 이 전환의 무게를 보여준다. 에이전트끼리 통신하는 A2A(Agent2Agent) 프로토콜은 50여 개 파트너로 출발해 지금은 150개 조직이 파일럿이 아니라 실제 업무 프로덕션에서 돌리고, 버전이 1.2까지 올라가면서 이제 리눅스 재단 산하 Agentic AI Foundation이 관리한다. Merck는 Gemini Enterprise 에이전트를 전사에 까는 데 최대 10억 달러 규모의 다년 계약을 맺었다. 구글이 공개한 수치로는 이 플랫폼 위에서 처리되는 토큰이 월 6조 개에 달한다.

이게 왜 중요한가. 프런티어 랩들이 "우리 모델이 벤치에서 몇 점"을 다투는 동안, 구글은 그 층 한 칸 위, 여러 모델을 오케스트레이션하고 조직 전체에 배포하고 거버넌스를 거는 프로덕션 층에 판돈을 옮겼다. 모델은 부품이고, 부품을 조립해 돌리는 라인이 상품이라는 관점이다.

모델 발표와 플랫폼 발표는 청중이 다르다. 모델 발표는 벤치 슬라이드를 들고 연구자와 얼리어답터를 향한다. 플랫폼 발표는 도입 사례와 계약 규모를 들고 조직의 의사결정자를 향한다. Merck의 10억 달러, 150개 조직 프로덕션, 월 6조 토큰. 이건 "우리가 몇 점"이 아니라 "이미 다들 쓰고 있다"는 사회적 증거의 언어다. 같은 회사가 Gemini 3 벤치도 자랑하고 이 계약 숫자도 자랑하지만, 무게중심이 어디로 옮겨갔는지는 숫자의 종류가 말해준다.

Model Garden을 보면 이 관점이 더 선명해진다. 200개가 넘는 모델을 한 자리에 모아두는데, Gemini 3.1 Pro나 Flash Image, Lyria 3, 오픈 Gemma 4 같은 자사 모델만 있는 게 아니다. 공지에 명시된 대로 "앤트로픽의 Claude Opus, Sonnet, Haiku 같은 서드파티 모델"도 일급으로 서빙한다. 경쟁사 모델을 자기 진열대에 얹어 파는 것이다.

당장은 이게 그냥 넉넉한 벤더 정책처럼 보인다. 고르고 싶은 거 고르세요. 뒤에서 이 조각을 다시 꺼낼 텐데, 그때는 다르게 읽힐 것이다.

그 베팅이 서울에 상륙하는 지점

구글의 "AI 에이전트 트렌드 2026" 리포트를 보면 회사가 이 서사를 얼마나 밀고 있는지 감이 온다. 그리고 그 서사를 지역 개발자·기업 앞에 실물로 내려놓는 자리가 곧 서울에서 열린다. "AI Agents Live + Labs".

등록 페이지의 아젠다를 열어보면, 앞 절에서 말한 "무게중심을 프로덕션 층으로 옮겼다"는 얘기가 세션 제목 하나하나에 그대로 박혀 있다. (정확한 개최 날짜만은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확정 표기를 피해 둔다. 필요하면 등록 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시간표는 오전 9시 체크인부터 GMT+9로 돈다.)

트랙 이름부터 보자. Keynote 아래로 Scaling AI Agents, Agentic Enterprise, Agentic Data Cloud, Cloud with Google DeepMind, Agentic Work, Gemini User Talk까지 여섯 갈래다. 여섯 중 어디에도 "우리 모델이 벤치에서 몇 점"이 트랙 제목으로 올라와 있지 않다. Data Cloud에도, Work에도, Enterprise에도 'Agentic'이 접두어처럼 붙어 있다. 전부 '에이전트를 어디에, 어떻게 얹느냐'의 언어다.

키노트 세션을 따라가면 그림이 더 선명해진다. Google Cloud Korea 지사장의 오프닝과 Google Research의 'Neuro Context' 데모로 판을 깐 다음, 무게가 실린 두 세션이 연달아 온다.

하나는 "Agentic Era: from vision to value". 제목이 이미 다 말한다. 비전에서 값어치로. 세션 설명을 보면 Gemini 3.5·Live·Omni 같은 모델을 소개하긴 하는데, 그건 도입부다. 진짜 데모는 그다음이다. 노코드 workflow 에이전트부터 하이코드 Agent Platform(구글이 GEAP라 줄여 부르는 그 Gemini Enterprise Agent Platform) 아키텍처까지 연이어 시연해서, "비개발자의 직관적 개발부터 기업형 멀티 에이전트의 기획·배포·거버넌스·운영까지"를 한 줄에 꿴다. 앞 절에서 내가 "모델은 부품이고, 조립해 돌리는 라인이 상품"이라고 쓴 그 관점을, 구글이 무대 위에서 데모로 재연하는 셈이다.

다른 하나가 특히 눈에 걸린다. "Securing the AI Era with AI Threat Defence". 발표자는 구글 클라우드에 편입된 보안 회사 Wiz다. 소개하는 'Google AI Threat Defense'는 Gemini의 추론에 Wiz의 위험 분석, CodeMender의 자동 코드 수정, Mandiant의 위협 인텔리전스를 하나로 묶은 물건이다. 세션 설명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공격자가 악용하기 전에 위험 경로를 사전에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차단"한다.

여기서 앞의 곁다리가 되돌아온다. 코드를 읽고 취약점을 찾아내는 능력, 6월에 Fable 5를 정부 손에 내려가게 만든 바로 그 양면성을, 구글은 서울 무대에서 방어 제품으로 뒤집어 세운다. 한쪽에서는 같은 능력이 수출통제 대상이 되어 문이 잠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일즈 데크의 하이라이트로 무대에 오른다. 능력 자체는 하나인데, 그것을 '위협'으로 보느냐 '제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취급을 받는다. 6월의 렌즈로 보면 이 대비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멀티모델 유연성"을 다시 읽으면

여기가 이 글에서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구글이 "여러 모델 중에 골라 쓰세요"라고 할 때, 나는 그동안 이걸 벤더 마케팅으로만 들었다. 락인 싫어하는 기업 고객 달래는 문구. 어차피 다들 하는 말. AWS도 Bedrock에서 여러 모델 서빙하고, 다른 클라우드도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6월의 두 사건을 옆에 놓으니 같은 문장이 다르게 들린다.

당신의 프로덕션 에이전트 밑에 깔린 모델이 하룻밤 새 정부에 의해 내려가면 어떻게 되는가?

이건 가상의 질문이 아니다. 6월 12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Fable 5에 의존하던 워크플로가 있었다면 오후 5시 21분에 그냥 멈췄다. 외국 국적 직원이 쓰던 라인이라면 통제가 풀린 7월 1일까지 18일간 멈춰 있었다. 그동안 대안이 없는 조직은 손을 놓고 기다렸을 것이고, 밑에 다른 모델을 갈아끼울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조직은 라우팅만 바꿔 돌아갔을 것이다.

그 "밑에 다른 모델을 갈아끼울 수 있는 구조"가 바로 구글이 파는 것이다. A2A로 에이전트를 느슨하게 연결하고, Model Garden에서 모델을 부품처럼 교체하고, 오케스트레이션 층에서 라우팅을 다시 건다. 벤더 유연성이라는 상품이, 6월의 렌즈로 보면 지정학적 가용성 리스크에 대한 헤지가 된다.

구체적으로 그려보자. 서울 트랙 중 ADK 워크숍에서 만든 에이전트를 상상한다. 데이터 소스를 붙이고, 툴 몇 개를 연결하고, Model Garden에서 밑 모델을 하나 고른다. 여기까지는 어느 클라우드에서 해도 비슷하다. 차이는 그다음에 갈린다. 밑에 고른 모델이 6월의 Fable 5처럼 내려가는 상황에서, 에이전트 정의는 그대로 두고 라우팅 대상만 다른 모델로 바꿀 수 있느냐. A2A로 느슨하게 연결된 구조라면 이 교체가 설정 값 하나 바꾸는 수준이고, 특정 모델 SDK에 하드코딩된 구조라면 코드를 다시 써야 한다. 6월 이전이라면 이 차이는 '편하냐'의 문제였다. 6월 이후라면 '멈추냐 마냐'의 문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까 미뤄둔 조각이 돌아온다. Model Garden은 Claude를 서드파티로 서빙한다. 즉 6월에 앤트로픽 모델이 정부 지침으로 내려갔을 때, 그 충격은 앤트로픽 자체 채널만이 아니라 구글 플랫폼 위에서 Claude를 부르던 워크플로에도 직접 닿았다는 뜻이다. 헤지를 파는 플랫폼 자신이 헤지가 필요한 리스크를 진열대에 얹고 있는 구조. 이게 우연히 맞물린 그림이라 더 흥미롭다.

구글 입장에서 이건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오히려 세일즈 포인트가 선명해진다. "한 모델에 전부 걸지 마세요. 우리 층 위에서는 밑을 갈아끼울 수 있습니다." 서울 키노트가 'from vision to value'라는 제목 아래 모델 소개는 도입부로 밀어두고 거버넌스·운영까지 한 줄에 꿴 것도, 이 각도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밑을 갈아끼울 수 있는 층을 파는 회사가, 그 층의 값어치를 지역 의사결정자 앞에 풀어놓는 자리다.

물론 이 헤지에도 한계는 있다. 밑 모델을 갈아끼운다고 성능이 그대로 보존되진 않는다. Fable 5에 맞춰 튜닝한 프롬프트가 다른 모델에서 같은 품질을 낼 거란 보장은 없고, 앤트로픽이 자기 모델의 차단 요청을 Opus 4.8로 우회 라우팅한 것처럼 다운그레이드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다중화는 '멈추지 않는 것'은 보장해도 '품질이 유지되는 것'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그래도 멈추는 것과 다운그레이드되는 것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

브레이크가 랩 안에서 정부로 넘어갔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6월에 바뀐 건 개별 모델의 접근 권한이 아니다. 브레이크를 쥔 손이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안전 vs 속도"의 긴장은 대체로 랩 내부의 이야기였다. 어떤 능력을 언제 풀지, 어떤 안전장치를 걸지, 레드팀이 무엇을 걸러낼지. 이 결정은 회사 안에서 이뤄졌고, 바깥에서 보면 자율 규제의 영역이었다. 앤트로픽이 신중하기로 유명하든 오픈AI가 공격적으로 배포하든, 결국 브레이크는 랩의 발밑에 있었다.

6월은 그 브레이크가 바깥으로, 정부 쪽으로 넘어간 걸 보여준 달이다.

Fable 5를 내린 건 앤트로픽의 안전팀이 아니라 상무부의 수출통제 지침이었다. 능력이 국가안보 사안이 되는 순간, 그 능력의 스위치는 더 이상 회사가 단독으로 쥐지 못한다. 코드베이스를 읽고 결함을 고치는 능력, 그러니까 개발자 생산성의 핵심 그 자체가 방향만 틀면 취약점 발굴 도구가 되고, 그 양면성이 능력을 규제 대상으로 만든다.

수출통제라는 단어가 낯익다면 그럴 만하다. 몇 년째 미국의 수출통제는 AI 하드웨어, 고성능 GPU를 겨냥해 왔다. 어떤 칩을 어느 나라에 팔 수 있느냐가 반복적으로 규제의 축이었다. 6월에 달라진 건 그 통제의 대상이 하드웨어에서 모델 접근 자체로 한 칸 옮겨왔다는 점이다. 칩은 물건이라 국경에서 막을 수 있지만, 모델 접근은 API 호출이라 여권으로 막는다. 규제가 물리 층에서 소프트웨어 층으로 올라온 것이고, 그만큼 스위치가 눌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칩 선적을 막는 데는 몇 달이 걸리지만, 모델 접근을 끊는 데는 오후 5시 21분의 지침 한 장이면 됐다.

여기에 개발자에게 특히 아픈 아이러니가 있다. 6월에 문이 닫힌 건 이미지 생성 모델도, 잡담용 챗봇도 아니었다. 코딩·에이전트 능력이 가장 센 프런티어 모델이었다. 우리가 프로덕션 에이전트에 제일 넣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능력이, 안보 스위치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리스크는 "언젠가 더 세지면"이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지금 제일 유능한 개발 도구를 고르는 순간 함께 딸려오는 현재형이다. 유능함을 고를수록 스위치에 가까워진다.

이건 프런티어 모델이 강해질수록 구조적으로 심해질 흐름이다. 모델이 더 유능해질수록 그 유능함이 안보 사안과 겹치는 면적이 넓어지고, 넓어질수록 외부 스위치가 눌릴 확률이 올라간다. 6월은 그 확률이 처음으로 두 번 연속 현실이 된 달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관점에서 구글의 베팅은 꽤 영리해 보인다. 모델 층은 앞으로도 지정학의 축구공이 될 것이다. 국적으로 선이 그어지고, 정부 지침으로 문이 여닫히고, 능력이 셀수록 그 진폭이 커진다. 그 층에 전부를 거는 대신, 구글은 그 위에서 부품을 교체하고 라우팅을 다시 거는 층을 판다. 축구공이 어느 쪽으로 튀든, 공을 담는 상자를 파는 쪽이 되겠다는 것에 가깝다.

주의할 건, 이게 구글이 안전지대라는 뜻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Gemini도 유능한 프런티어 모델이고, 유능한 만큼 언젠가 같은 종류의 외부 스위치 앞에 설 수 있다. 다만 구글은 자기 모델과 남의 모델을 한 진열대에 올려두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내려가도 상자 자체는 계속 돌릴 여지를 확보해뒀다. 헤지를 파는 쪽이 헤지를 가장 잘해둔 셈이다.

그래서 방어선은 프로덕션 층의 다중화

여기까지 오면 개발자와 조직 입장에서 하나의 관찰이 남는다.

브레이크가 랩 안 윤리 위원회에서 바깥 정부로 넘어간 시대에, 개별 모델의 안정성은 더 이상 개별 랩의 신중함만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아무리 조심스러운 랩의 모델을 쓰고 있어도, 그 모델은 당신과 상관없는 이유로, 다른 나라 연구진의 시연이나 다른 부처의 판단으로 하룻밤 새 내려갈 수 있다. 6월이 그걸 증명했다.

그러니 통제할 수 있는 방어선은 모델 선택이 아니라 그 위층에 있다. 프로덕션 층을 다중화해 두는 것. 에이전트를 특정 모델에 하드코딩하지 않고, 밑을 갈아끼울 수 있는 추상 위에 얹어두는 것. 한 모델이 멈춰도 라우팅을 다시 걸어 최소한 다운그레이드된 채로라도 돌게 만드는 것.

이걸 새삼 대단한 아키텍처처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다중 프로바이더 추상은 예전부터 있던 엔지니어링 상식에 가깝다. 다만 그 상식을 떠받치던 이유가 바뀌었다. 예전엔 비용 최적화나 품질 비교나 벤더 락인 회피가 이유였다면, 이제는 "밑 모델이 정부 손에 내려갈 수 있다"는 가용성 리스크가 그 위에 하나 더 얹혔다. 같은 설계인데 명분이 지정학까지 올라온 것이다.

개인 개발자와 조직은 이 관찰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혼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굴리는 사람이라면 밑 모델이 18일 멈추는 게 불편할 뿐 치명적이진 않다. 기다리거나 다른 걸 잠깐 쓰면 된다. 그런데 프로덕션 에이전트가 매출에 걸려 있는 조직이라면 그 18일이 계약 위반이 되고 신뢰 손실이 된다. 6월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야 할 쪽은 후자다. 그리고 서울 키노트의 "Agentic Era: from vision to value" 세션이 "비개발자의 직관적 개발부터 기업형 멀티 에이전트의 거버넌스·운영까지"를 굳이 한 줄에 묶어둔 걸 보면, 구글이 겨냥하는 청중도 바로 그 후자다.

구글이 서울에서 파는 게 정확히 그 명분의 상품화라는 게 내 관찰이다. 이게 구글의 선의라거나 유일한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Model Garden에 Claude를 얹어둔 플랫폼조차 6월엔 그 리스크를 그대로 통과시켰으니, 완벽한 방패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세 탭을 나란히 놓고 봤을 때 드러난 긴장은 이거였다. 모델 층이 흔들릴수록, 통제 가능한 방어선은 그 위층으로 올라간다는 것.

마치며

나는 서울 행사에 가지 않을 것 같고, 가더라도 이 글의 결론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 확인하고 싶은 건 딱 하나다. "Agentic Era"든 "Securing the AI Era"든, 무대 위 누군가가 6월의 두 사건, 밑 모델이 하룻밤 새 정부 손에 내려간 그 일을 세일즈 시나리오로 꺼내느냐다. 만약 발표자가 "당신 에이전트 밑의 모델이 갑자기 내려가는 상황"을 꺼낸다면, 이 글의 가설은 꽤 정확했던 셈이 된다. 안 꺼낸다면, 구글은 아직 자기가 파는 헤지의 진짜 값어치를 말로 옮기지 못한 것이고.

한 가지 더. 이 글은 구글을 편들려고 쓴 게 아니다. 구글도 결국 자기 모델을 파는 회사고, 그 모델 역시 언젠가 같은 스위치 앞에 설 수 있다. 다만 6월의 두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멀티모델 유연성"을 그냥 흘려들었을 것이다. 세 탭이 우연히 한 화면에 겹치지 않았다면, 벤더 문구로만 읽고 지나쳤을 문장이다. 관점은 대개 이렇게 온다. 따로 놀던 조각들이 어쩌다 한 자리에 놓이는 순간에.

어느 쪽이든, 6월에 내가 세 탭을 나란히 놓고 본 그림은 당분간 유효할 것 같다. 모델은 축구공이고, 서울에 오는 건 그 공을 담는 상자를 파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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