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AI 시대, 나와 같은 평범한 개발자가 겪고 있을 고민과 마음가짐

급변하는 AI 시대, 나와 같은 평범한 개발자가 겪고 있을 고민과 마음가짐

새벽 안개 속 흙길·자갈·진흙이 갈라지는 산길 — 각자의 발자국이 남는 길

복잡한 마음에 산에 올랐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풀리지 않는 게 있을 때, 화면에서 눈을 떼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는 걸 안다. 그날은 화면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감각은 같았다. 신발을 신고 나갔더니 발이 산 쪽으로 향했다. 의식적인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높은 곳에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 올라가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작아 보일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다만 한 가지가 보였다. 길.


산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밟아서 완전히 다져진 길이 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단단한 게 발바닥에 전해진다. 아무리 힘껏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 길은 이미 수천, 수만 개의 발자국이 지나가며 굳어버린 길이다. 단단하다는 감각은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단단하다. 다만 그 단단함은 내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단단함 위에 내가 잠시 올라서 있는 거다. 그 길은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흙길이 있다. 걸으면 발자국이 남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향, 여러 깊이의 발자국들이 겹쳐 있다. 누군가는 가볍게 스쳐갔고, 누군가는 깊이 박혔다. 같은 길인데 같은 방향으로만 걷지 않는다. 각자의 속도, 각자의 무게로 지나간 흔적이다. 흙길은 지나간 것들을 기억한다. 발이 닿은 자리를, 그 무게가 얼마였는지를.

자갈길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 보인다. 발을 디뎌보면 다르다. 자갈이 굴러간다. 발이 미끄러진다. 확신하고 들어섰는데 예상과 다른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진다. 자갈길인 걸 알고 들어가면 다르게 걸을 수 있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무게를 싣기 전에 확인하면서. 근데 단단한 길인 줄 알고 성큼 들어갔다가 자갈길이라는 걸 발이 먼저 알게 되면, 그 순간 몸의 중심이 흔들린다. 발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 판단이 흔들린다.

진흙길이 있다. 비 내린 뒤의 진흙길은 발이 푹푹 빠진다. 한 발 빼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진흙인 줄 알고 들어가면 그냥 느리게 걷는 거다. 힘들어도 예상 안의 힘듦이다. 단단한 길인 줄 알고 성큼 들어섰다가 발이 빠지면, 그건 느린 게 아니라 당혹스러운 거다. 몸의 반응보다 마음의 반응이 먼저 온다. 이게 뭐야, 왜 이래, 아까는 괜찮았는데.


그날 나는 내 앞에 어떤 길이 있는지 보지 않고 걸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모르는 곳이었다. 산길은 분명 거기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 위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를 잃었다. 발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었고, 몸만 거기 있었다.

무서운 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걸어와도 발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 머리가 다른 곳에 가 있어도 다리는 알아서 움직인다는 것. 익숙한 동작은 의식 없이도 작동한다는 것. 그게 묘하게 무서웠다.

그게 지금 살아온 방식 같았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일을 하고, 익숙한 결정을 익숙한 방식으로 내렸다. 어느 순간부터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머리가 다른 데 가 있어도 일은 굴러갔다. 그게 능숙함이라고 믿어왔다. 익숙해진다는 게 잘하게 되는 거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날 산에서, 무의식적으로 걸어온 자리에 서서 나는 처음으로 의심했다. 잘 알고 있다고 믿어온 길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나는 내 마음이 단단하다고 믿었다.

근거 없는 믿음은 아니었다. 살면서 여러 번 흔들렸고, 그때마다 버텼다.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 됐다는 감각이 생겼다. 감각이 쌓이면 확신이 된다. 확신이 쌓이면 전제가 된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단단하다는 건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가 됐다. 그 전제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의심하지 않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매번 자기 자신을 의심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믿음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언제 생겼는지,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잊어버렸다는 거다.

오래전에 버텼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이 쌓여서 나는 버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됐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다른 상황이다. 버텼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다. 같은 나인데 다른 나다. 그걸 생각하지 않았다.

단단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걸어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아니었다. 이게 자갈길인지 진흙길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믿었던 것과 다른 길이었다. 발자국이 깊이 남는 길이었다. 발이 조금씩 빠지는 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 단단해 보였는데.

약하다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다. 단단하다고 믿어왔던 것이 흔들릴 때, 그 당혹감은 단순히 약한 것보다 훨씬 크다. 믿음이 무너지는 거니까. 마음이 흔들리는 것과 마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건 다른 경험이다. 전자는 그냥 힘든 거고, 후자는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다.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같은 길이라도, 어느 시점엔 단단했던 길이 다음 시점엔 자갈일 수 있다. 비가 한 번 오면 진흙이 된다. 길이라는 건 멈춰 있는 게 아니다. 길이 그대로여도, 그 길을 둘러싼 날씨와 시간이 바뀌면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달라진다.

내가 걸어온 길도 그랬다.

처음 들어섰을 때는 단단했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앞서 간 사람들이 다져놓은 자리였고, 어떤 발자국을 따라 걸어야 할지가 명확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도구를 써야 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 누군가 이미 충분히 밟아둔 길이었다. 발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그게 단단함의 증거 같았다. 모두가 그 위를 걷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발바닥의 감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자리에서 자갈이 굴러갔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발이 빠졌다. 같은 길인데 다른 길이 됐다. 정확히는, 길이 바뀐 게 아니라 길의 조건이 바뀐 거다. 매일같이 새로운 도구가 나오고, 어제까지 통하던 방식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다. 5년을 쌓아 만든 능숙함이 6개월짜리 도구 앞에서 흔들린다. AI가 코드를 쓰기 시작했고, 그건 내가 지금까지 단단함이라고 믿어왔던 자리를 자갈로 만들고 있다.

약해진 게 아니다. 길이 변한 거다.

그런데 약해지는 것과 길이 변하는 것은 같은 감각으로 도착한다. 발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중심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내가 알던 그 길이 아니다"라는 당혹감이 든다는 점에서. 어느 게 원인이든 발바닥에 닿는 건 같은 자갈이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흔들림을 느낀다. 약해서가 아니라 길이 변해서다. 그 흔들림 자체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부끄럽지 않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발 아래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어떤 길 위에 있는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었다는 사실을.


이 글이 코드 한 줄도 짚지 않는다는 걸 안다. 다만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한 번 묻고 싶었다. 익숙한 줄 알았던 자리에서 자갈을 밟은 적 있는지.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어느 날 한 번 흔들린 적 있는지. 단단하다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은 그냥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던 건 아닌지.


산을 다 내려왔을 때 해가 거의 떨어져 있었다.

같은 길을 두 번 걸었다. 올라갈 때 한 번, 내려올 때 한 번. 그런데 내려올 때의 길은 올라갈 때와 다른 길 같았다. 같은 흙, 같은 자갈, 같은 진흙인데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달랐다. 방향이 달라지면 같은 길도 다른 길이 된다.

그날 산에서 알게 된 건 결국 한 가지였다. 길이 어떤 길이냐는 내가 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단단할지 자갈일지 진흙일지는 가봐야 알고, 가본 다음에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 오늘의 단단함이 내일의 단단함은 아니다. 어제 자갈을 밟았다고 해서 오늘 자갈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같은 길이라도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른 길이다. 그 위를 어떤 무게로 걸을 것인지, 그것만이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다.

단단한 길이 좋은 길은 아니다. 다져진 길이 안전한 길도 아니다. 어떤 길 위에서도 발은 빠질 수 있고, 어떤 길 위에서도 마음은 흔들릴 수 있다. 다만 그 흔들림을 모르는 채로 걷는 것과 알고 걷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러니 한 번 더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있는가.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는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개발자는 코드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 AI 시대에 남는 자리는 '책임'에 있다

Harness Engineering in Practice — How Anthropic Designs AI Agents

What Is Harness Engineering — Designing the Reins for AI Ag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