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드는 줄 알았던 얘기를 뇌과학 교수가 하고 있었습니다

지식인사이드에 김대식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가 나온 대담을 봤습니다. 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때 어떻게 할 거냐는 주제였습니다.
보는 내내 좀 이상했습니다. 제가 몇 달 동안 여기에 쓴 얘기가 거의 그대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보안을 이유로 AI를 막는 문제, 개인이 만든 자동화를 회사에 안 내놓는 문제,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 사이가 벌어지는 문제. 심지어 대응 방향까지 비슷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짧게요.
그다음에 좀 이상해졌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2주 전에 제가 이 블로그에 이렇게 써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제 말에 동의하게 된 게 아닙니다. 다른 경로로 비슷하게 생긴 문장에 도착한 겁니다. 문장이 같아도 가리키는 게 다르면 같은 얘기가 아닙니다.
봄에 만든 발표자료가 가을 되니 유행어로 돌아와 있던 얘기를 쓰면서 적은 문장입니다. 거기서 저는 "거봐 내가 맞았지"라고 말할 자리가 애초에 없었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래놓고 2주 만에 딱 그 말을 하고 싶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냥 반가워하고 넘어가는 대신, 제가 스스로 세워둔 그 기준에 이번 건을 한번 넣어봤습니다. 문장이 같은 건지, 가리키는 것까지 같은 건지.
대담에서 제일 세게 나온 대목
교수가 제일 답답해한 게 기업 보안이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 많은 기업에서는 그놈의 보안 문제 때문에 기업에서 클로드, 제미나이, 챗지피티를 못 쓰게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진단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느끼는 게 뭐냐면 살짝 게으른 것 같아요.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하면, 현재 우리나라 방법은 운전면허증을 금지시켜 놓은 거예요.
엔비디아를 반례로 듭니다. 거기라고 비밀이 없겠느냐, 그런데 거긴 엔지니어한테 연봉의 절반만큼 토큰을 쓰라고 한다, 그러면 그쪽은 보안을 어떻게 푸는 것 같으냐고 물으면 답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얘기가 답답해서 망분리 20년을 뒤져본 글을 쓴 거니까요.
딱 한 단어에서 갈립니다. 게으르다.
게으른 게 아니라 계산이 맞았습니다
법 조문을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규제가 과하고, 현장이 그걸 과하게 해석하고, 아무도 다시 안 들여다본다고요.
조문을 찾아보니 다른 얘기였습니다. 개인정보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은 전 직원을 끊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개인정보를 다운로드하거나 파기하거나 권한을 설정할 수 있는 사람의 컴퓨터를 끊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획팀 노트북이 아닙니다. 디자이너 PC도 아닙니다.
법이 요구한 건 처음부터 목록이었습니다. 누가 그럴 수 있는지 세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들은 전부 끊었습니다. 여기서 게으름이라는 말이 나올 자리인데, 실제로 어느 쪽이 싼지 따져보면 그렇게 부르기가 좀 어렵습니다.
목록을 한 장 쓰려면 시스템이 몇 개인지, 계정이 몇 개인지, 그중 다운로드 권한이 있는 게 누구 것인지, 그 사람 자리 PC가 어느 IP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그게 하루 만에 상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부서를 옮기면 바뀌고, 신규 입사자가 오면 바뀌고, 외주 인력이 들락날락하면 또 바뀝니다. 유지하려면 사람이 붙어야 합니다.
반대편에는 랜선 하나를 안 꽂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한 번 하면 끝이고, 유지비가 0에 수렴하고, 감사 나왔을 때 "저희는 아예 인터넷이 안 됩니다" 한 문장으로 방어됩니다. 심지어 근무 시간에 유튜브를 못 보게 하는 부수 효과까지 딸려 옵니다.
이 비대칭이 20년을 만들었습니다. 게을러서 목록을 안 쓴 게 아니라, 목록을 안 써도 되게 설계된 규제 아래서 그 세월을 산 겁니다. 그리고 넓게 지키면 정확히 지킬 필요가 없어집니다.
막아놓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대담에 나옵니다. 집에 가서 쓰거나 자체 개발한다는 얘기요. 저는 이 대목이 제일 현실적이라고 봤습니다.
파이썬 패키지를 깔아야 하는데 설치 명령이 안 나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뭘 하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금방 나옵니다. 인터넷 되는 PC에서 받아서 USB로 옮깁니다. 승인된 절차든 아니든 그렇게 합니다. 일이 되게 하려면 통로가 필요하고, 공식 통로가 없으면 비공식 통로가 생깁니다.
그러니 차단은 사용을 없애는 게 아니라 사용을 안 보이는 곳으로 옮깁니다. 원래는 회사 도구 안에서 흔적이라도 남던 작업이 개인 계정과 휴대폰으로 넘어갑니다. 통제하려다 관측을 잃는 겁니다. 그리고 관측을 잃은 조직은 자기가 안전해졌다고 느낍니다. 눈앞에서 안 보이니까요.
진단이 갈리면 처방이 갈립니다. 이게 제가 이 차이를 붙들고 있는 이유입니다.
게으름이라고 진단하면 처방은 다그치기입니다. 엔비디아를 보라고, 글로벌 기업은 다 하고 있다고, 이러다 뒤처진다고요. 실제로 그 말은 이미 몇 년째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랜선을 다시 꽂은 회사를 저는 못 봤습니다. 다그침으로 안 움직인다는 건 게으름이 원인이 아니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비용 문제라고 진단하면 처방이 다른 데로 갑니다. 목록을 쓰는 비용을 낮추거나, 목록 없이 버티는 비용을 올려야 합니다. 국정원이 작년에 낸 국가 망 보안체계가 후자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등급을 나눠서 공개 등급은 인터넷을 쓰게 해주겠다는 건데, 등급을 나누려면 뭐가 있는지부터 적어내야 합니다. 20년간 안 낸 청구서를 이제 내야 AI를 쓸 수 있게 만든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대담이 "게으르다"에서 멈춘 자리에서, 저는 "그래서 뭘 바꿔야 움직이나"까지 한 칸 더 가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더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 랜선 끊긴 사무실에 매일 앉아 있고, 그래서 그 선택이 위에서 보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계속 보게 됩니다. 밖에서 보면 게으름으로 보이는 게 안에서 보면 계산입니다. 그 계산을 몇 번 들여다보면 다그치는 말이 왜 안 먹히는지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규칙을 만들면 공유할 거라는 얘기
겹친 자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연이 하나 소개됩니다. 막내 직원이 프롬프트를 잘 써서 성과를 내는데, 팀장이 그걸 공유하라고 하니까 자기 돈 내고 배운 거라 못 준다고 했다는 얘기입니다.
교수의 처방은 이렇습니다.
사실 이거를 분위기나 보상을 받을 거란 느낌보다, 이거는 규칙으로 정해져야죠. 하루에 또는 한 달에 에이전트 몇 개 만드는 사람들, 본인의 일을 몇 퍼센트 대체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상이 있다.
여기서도 문제 인식은 저랑 같습니다. 저는 AX는 회사가 사고 격차는 옆자리에서 생긴다에 이걸 조금 다른 각도로 썼습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은 회사가 뭘 하기 훨씬 전부터 자기 방식을 만들어놓고 조용히 쓰고 있고, 그 사람들한테 사내 프로그램은 대체로 아무것도 안 해준다는 얘기였습니다.
처방 쪽으로 오면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보상을 걸어서 공유를 받아냈다고 칩시다. 받은 걸 옆자리에 주면 그게 돌아갈까요.
제가 실제로 본 건 안 돌아간다는 쪽이었습니다. 사내 에이전트가 열렸을 때 주간보고를 맡겨본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 저는 깜빡한 것까지 올라왔고 옆자리는 같은 도구로 아무것도 못 뽑았습니다. 도구가 같았는데 결과가 갈렸습니다. 차이는 그 사람이 자기 일을 어디에 얼마나 남겨뒀느냐였습니다.
에이전트는 적어둔 것만 수집합니다. 회의에서 말로만 끝난 결정은 아무 도구로도 안 나옵니다.
그래서 막내 직원의 프롬프트를 받아내도 문제가 잘 안 풀립니다. 그 프롬프트는 그 사람의 기록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뭘 적어두는지, 어떤 순서로 일을 쪼개는지, 결과를 받고 나서 뭘 한 번 더 확인하는지가 같이 있어야 도는 물건입니다. 텍스트만 떼어서 옆자리에 붙이면 껍데기가 옮겨집니다.
공유를 거부하는 이유도 이기심 하나로 보기엔 좀 아깝습니다. 물론 그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들이 조용히 있는 이유는 대개 다른 쪽이었습니다. 승인 안 된 도구를 쓰고 있어서 말하기 애매하거나, 자랑처럼 보일까 봐 안 하거나, 제일 흔하게는 그냥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귀찮아서 만든 메모 몇 장이지 방법론이 아닙니다.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는 줄 압니다.
그래서 공유하라는 요구가 실무에서 어떻게 들리는지도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을 만한 형태로 다듬어야 하는데, 그 다듬는 일이 원래 만든 시간보다 오래 걸립니다. 자기만 알아보면 되는 메모를 남이 읽을 문서로 바꾸는 작업이니까요. 보상이 그 비용보다 작으면 사람은 그냥 별거 아니라고 말하고 넘어갑니다. 숨긴 게 아니라 견적이 안 맞은 겁니다.
그러니 회사가 할 일은 걸작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그 메모 몇 장을 발견해서 쓸 수 있는 형태로 다듬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건 전환이 아니라 표준화입니다. 문제는 표준화라고 부르면 예산이 안 난다는 거고요.
실패하는 쪽으로 행동한다는 얘기
대담에서 제일 좋았던 대목은 이겁니다. 가트너 조사를 인용하면서, AI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 기술이 아니라 직원의 심리적 거부라고 말합니다.
이 AI 또는 에이전트가 나의 도구일까, 나의 동료일까, 아니면 나를 대체할 경쟁자일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안 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습니다.
AI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쪽으로 일부러 행동을 하게 됩니다. 왜냐, AI를 써서 프로젝트를 했더니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내가 필요 없다는 얘긴데, 그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검증하는 계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 대목은 제가 못 쓴 얘기입니다. 저는 AX 글에서 못 쓰는 사람이 겁먹고 시작을 안 한다는 데까지는 갔는데,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일부러 안 되게 만드는 경로까지는 안 봤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그쪽이 압도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맞습니다.
그래서 처방이 AI 리더십입니다. 게임의 규칙을 명백하게 설명해야 한다, 30% 해고하려는 게 아니라 생산성을 올려서 살아남으려는 거라고 CEO가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저는 또 반쯤만 동의하게 됩니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설명으로 풀린다는 데는 동의가 안 됩니다.
반년치 경험이 그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AI로 설계를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를 슬라이드로 만들어서 들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반응이 거의 없었습니다. 반년 뒤에 같은 얘기가 여기저기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자료가 부실해서 전달이 안 된 게 아니었습니다. 받는 쪽에 아직 손실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때 정리한 문장이 이겁니다. 공감은 논증으로 오지 않고 손실로 옵니다.
CEO가 조회에서 여러분을 자르려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직원이 자기 손으로 자기 업무를 자동화해놓고도 자리가 그대로 있다는 걸 한 번 겪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거리가 있습니다. 앞의 것은 말이고 뒤의 것은 사건입니다. 정체성 리스크는 말로 생긴 게 아니라서 말로 안 지워집니다.
그렇다고 설명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설명 다음에 뭘 놓느냐가 진짜 문제라고 봅니다. 자기 일을 절반 자동화한 사람이 그다음 분기에 어떻게 됐는지를 사내에서 한 번 보여주는 게, 조회사 열 번보다 셉니다. 그 사례가 없으면 사람들은 계속 최악을 가정합니다. 최악을 가정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니까요.
계단처럼 보이는데 계단이 아닙니다
가장 많이 인용될 대목은 아마 이 부분일 겁니다. 생존 전략이 해마다 갱신된다는 얘기요. 프롬프트를 잘하는 사람에서 도구를 잘 쓰는 사람으로, 그다음 바이브 코딩으로, 지금은 자기를 위해 더 많은 에이전트가 일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넘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은 아직 첫 칸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배우고 있다는 지적이 붙습니다.
이 지적 자체는 저도 여러 번 했습니다. 다만 계단이라는 그림에는 동의가 잘 안 됩니다.
개인 AI 에이전트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이 년 가까운 흐름을 날짜로 정렬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제가 제일 크게 틀렸던 게 이거였습니다. 저는 초고에 실행 위치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고 썼습니다. 되돌아간 사례가 없다고까지 적었습니다. 표를 다시 세우고 보니 되돌아간 구간이 한가운데에 크게 박혀 있었습니다.
클라우드에서 시작해서 내 기계로 왔다가 다시 클라우드로 갔습니다. 화살표를 한 방향으로 그리고 싶었던 건 그게 이야기로 깔끔해서였습니다.
연도별 목록도 같은 함정 위에 있습니다. 도달 순서로 정렬하면 마지막에 본 게 자동으로 가장 진화한 것이 되고, 그렇게 정렬된 목록에는 후퇴 구간이 안 보입니다. 뒤에서 보면 계단인데, 그 안에 있을 때는 진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아래 칸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프롬프트가 통째로 낡았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제 글을 다시 열어보고 확인한 것은, 사라진 게 페르소나 지정 같은 형식이고 남은 건 묻는 순서와 산출물 형식 지정이라는 쪽이었습니다.
왜 그쪽만 팔렸는지도 그때 좀 이해가 됐습니다. 역할을 지정하라는 건 한 줄로 적을 수 있고, 슬라이드에 올리면 그대로 옮겨지고, 받는 사람이 다음 날부터 씁니다. 반면 "답을 받고 나서 이게 틀리려면 뭐가 참이어야 하는지 한 번 더 물어라"는 적어놔도 안 하게 됩니다. 그 질문을 던지려면 전에 한 번 크게 틀려본 기억이 필요한데, 기억은 문서로 안 옮겨집니다.
그러니까 프롬프트 강의 시장은 사기였다기보다 팔 수 있는 부분만 팔았던 시장에 가깝습니다. 팔리지 않은 나머지가 지금 남아 있는 거고요.
이 구분이 왜 중요하냐면, 계단으로 보면 대기업이 첫 칸에 머물러 있는 게 그냥 뒤처짐입니다. 층으로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아래층은 자동화돼서 안 보이게 된 거지 없어진 게 아니고, 지금 위층에서 벌어지는 일도 반년이면 또 안 보이게 됩니다. 지금 에이전트를 열 개 만들어놓은 사람이 반년 뒤에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걸 반감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델이 한 번 크게 올라갈 때마다 제가 만들어둔 자동화의 상당 부분이 손을 봐야 하는 상태가 됩니다. 어떤 건 아예 죽어 있는데 켜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제일 나쁩니다.
AI가 AI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대목
대담 초반에 앤트로픽 얘기가 나옵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고 AI를 써서 AI를 만들기 시작했고, 코드의 대부분이 그렇게 나왔다는 겁니다. 재귀적 자기 개선이라고 부르는 단계에 들어갔고, 여기서부터 발전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진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그게 제 자리에서 어떤 모양으로 오는지는 좀 다르게 겪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제 자동화 레포에 배포 게이트를 하나 걸어뒀습니다. 문체 검사 결과 파일에서 합격이라는 문자열을 찾아보고, 없으면 배포를 막는 구조였습니다.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한참 뒤에 깨달았습니다. 그 문자열을 쓰는 게 검사받는 에이전트 본인이었습니다. 검문소와 통행증 발급처가 같았습니다.
더 이상한 건 이게 모델이 나빠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예전 모델은 형식을 자주 어겨서 통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지시를 잘 따르게 되니까 항상 합격을 찍었습니다. 성능이 올라가서 게이트가 죽은 겁니다. 결국 제거했습니다.
비슷한 걸 몇 번 더 겪었습니다. 걸어뒀다고 믿은 검사가 한참 동안 안 돌고 있던 적도 있고, 시크릿 스캔을 붙여놨는데 가짜 키가 전부 그냥 통과한 적도 있습니다. 걸어둔 것과 도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AI가 AI를 만드는 국면을 속도의 문제로만 보기가 좀 어렵습니다. 제 자리에서 그건 빨라지는 형태로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켜뒀다고 믿는 장치가 조용히 꺼지는 형태로 왔습니다. 그리고 꺼진 장치와 잘 돌고 있는 장치는 화면상으로 구분이 안 됩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과 아무도 안 보는 것이 똑같이 보이니까요.
폭발적 발전을 걱정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저는 이쪽이 먼저 온다고 생각합니다. 통제를 잃기 전에 관측을 먼저 잃습니다. 그리고 관측을 잃은 상태는 아주 평온해 보입니다.
동시에 열 개를 시킨다는 얘기
대담에서 에이전트를 설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은 왼손 오른손으로 서로 다른 컴퓨터의 마우스를 동시에 클릭할 수 없고, 책 두 권을 동시에 읽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능력은 병렬이 되는데 보고 읽고 생각하는 능력은 하나에만 붙을 수 있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그런데 에이전트는 나를 위해 동시에 열 가지를 한다는 거고요.
앞부분은 맞습니다. 뒷부분이 제 경험과 좀 어긋납니다.
동시에 열 개를 시킬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앞에서 사람의 인지 폭이 좁다고 했는데, 그 좁은 폭은 시킨 다음에도 그대로입니다. 열 개가 돌아가면 열 개의 결과를 봐야 하는데, 보는 능력은 하나도 안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열 개 중 두세 개만 실제로 읽고 나머지는 됐겠거니 하고 넘기는 겁니다.
그리고 됐겠거니 하고 넘긴 것들이 어떻게 되는지가 앞 절에서 쓴 얘기입니다. 안 돌고 있어도 화면은 똑같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에이전트 늘리기는 능력이 열 배가 되는 일이 아니라 확인해야 할 표면이 열 배가 되는 일에 가깝습니다. 만드는 건 하루면 됩니다. 어렵고 재미없는 건 그게 지금도 제대로 돌고 있는지 아는 쪽입니다. 그건 자동화가 안 됩니다. 자동화하면 그 자동화를 또 확인해야 하니까요.
대담에서 제안한 하나씩 만들어보라는 얘기 자체엔 동의합니다. 스팸 메일 지우기든 아침 뉴스 긁어오기든, 만들어보기 전에는 이 도구의 성질을 모릅니다. 다만 세는 단위가 개수가 되면 방향이 이상해집니다. 몇 개 만들었냐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개수를 만들고, 그중 몇 개가 죽어 있는지는 아무도 안 셉니다. 회사가 보상 규칙을 만들 때 제일 조심해야 할 자리가 여기라고 봅니다.
저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제 자동화 레포에도 만들어놓고 잊어버린 게 있고, 그중 하나가 넉 달 동안 한 번도 발화하지 않았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왜 안 울렸지가 아니라, 안 울리는 동안 내가 뭘 안심하고 있었지 쪽이었습니다.
칸을 나누라는데, 제 하루는 네 칸에 다 걸쳐 있습니다
대담에서 실용적으로 제일 쓸모 있는 도구는 아마 사분면일 겁니다. 정답이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가로로, 혼자 할 수 있는 일과 사람과 해야 하는 일을 세로로 놓고, 자기가 어느 칸에 있는지 먼저 짚어보라는 얘기입니다. 정답이 있으면서 혼자 하는 일이 제일 먼저 대체될 거라는 진단이 붙습니다.
프레임 자체는 쓸 만합니다. 문제는 배정 단위입니다.
직업 단위로 칸을 고르라고 하면, 제가 아는 한 거의 모두가 자기를 정답 없고 사람과 하는 칸에 놓습니다. 저도 그렇게 놓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를 실제로 쪼개보면 그 칸에 있던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나머지는 정해진 절차를 순서대로 밟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자기 진단이 직업 이름에 붙으면 그 시간이 안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 칸 더 불편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사라지는 게 직업이 아니라 직업 안의 특정 구간이라는 쪽이요.
카카오 인적분할 발표를 청년 고용 통계와 나란히 놓고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도달한 결론이 그거였습니다. AI가 지우는 건 직업이 아니라 계단의 첫 칸입니다. 시니어가 하던 판단은 남습니다. 주니어가 그 판단을 배우려고 밟고 올라오던 반복 작업이 없어집니다. 직업은 그대로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아집니다.
사분면으로는 이게 잘 안 보입니다. 같은 직업이면 신입도 십년차도 같은 칸에 들어가는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두 사람한테 정반대입니다. 십년차는 도구를 얻고 신입은 자리를 잃습니다. 칸이 안전하다고 나와도 그 칸에 들어갈 방법이 없으면 안전한 게 아닙니다.
대담 마지막은 낙관 쪽으로 갑니다. 지금 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라져도, 지금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일의 영역으로 들어올 거라는 얘기입니다. 조선시대 사람이 보면 방송 진행도 노는 걸로 보였을 거라는 비유가 붙습니다. 한참 뒤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합니다.
저는 이 낙관에 동의합니다. 길게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 낀 십 년이나 이십 년을 통째로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지금 첫 칸에 서 있는 쪽이라는 게 계속 걸립니다. 혼란기라고 부르고 넘어가기엔 그 기간이 한 사람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다 씁니다.
이건 대담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담이 보는 축이 시대고 제가 보는 축이 사람이라 초점이 다른 것에 가깝습니다. 저는 아이한테 뭘 권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 자리에 있어서, 시대 축의 낙관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인정받은 게 뭘 바꾸나
여기까지 대조해놓고 보면, 문장은 여러 군데 같습니다. 가리키는 것도 대체로 같습니다. 앞에 인용한 그 글에서 제가 걱정했던 "다른 경로로 비슷하게 생긴 문장에 도착한" 경우와는 좀 다릅니다. 이번엔 진단까지 겹치는 자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겹치고 나서 남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별로 없습니다.
이 대담이 나가고 나서도 그 회사들 랜선은 그대로일 겁니다. 유튜브에서 뇌과학 교수가 답답하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보안 정책을 바꾸는 조직은 없습니다. 앞에서 제가 스스로 적은 이유가 그대로 돌아옵니다. 다그침으로는 안 움직입니다. 대담도 결국 다그침 쪽이고, 그건 교수가 못해서가 아니라 대담이라는 형식이 할 수 있는 게 거기까지라서 그렇습니다.
제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반년 굴려보고 알게 된 게, 결론만 옮기면 비용 감각이 안 따라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바꾼 건 슬라이드가 아니라 두 달 태운 시간이었는데, 남한테 전달하려고 한 건 그 두 달이 아니라 두 달에서 뽑아낸 결론이었습니다. 결론만 받은 사람에게 그건 그냥 신중한 사람의 신중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일로 바뀌는 건 사실관계가 아닙니다. 제 주장이 더 참이 된 것도 아니고요. 유명한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고 해서 틀린 게 맞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달라집니다. 이 얘기를 회의실에서 꺼낼 때 갖다 붙일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게 좀 웃긴 부분인데, 실무에서는 그게 꽤 큽니다. 같은 말을 제가 하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거 좋아하니까"로 분류되고, 카이스트 교수가 하면 회의 자료에 인용됩니다. 저는 이걸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썼듯이 이 판에는 권위가 잘 안 쌓이고, 다들 자기가 많이 해봤다고 말하니까 노출량은 신뢰의 근거가 못 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외부 권위로 필터를 거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렇다고 인용이 결정을 바꾸지도 않습니다. 제가 본 건 논의가 한 칸 옮겨지는 정도였습니다. 이걸 왜 해야 하냐는 질문이 이걸 어디까지 열 수 있냐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안 열리는데, 앞의 질문에 붙들려 있는 동안에는 뒤의 질문을 아예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칸이 작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할 만한 일은 "내가 먼저 말했다"를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인용 가능해진 문장 뒤에 붙일 것을 준비해두는 쪽인 것 같습니다.
대담은 기업이 왜 못 움직이는지까지 갑니다. 그다음 질문은 우리 회사에서 실제로 뭘 한 칸 옮길 수 있느냐인데, 거기엔 목록이 필요합니다. 어떤 업무가 진짜 민감한지, 그중 뭐가 외부 모델에 안 나가도 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지, 지금 사람들이 몰래 쓰고 있는 게 뭔지. 저 목록은 교수가 대신 써줄 수 없습니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인정받았다는 감각은 하루쯤 갑니다. 목록은 안 씁니다.
남은 건 별개로
대담에서 제가 아직 소화 못 한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안무가 쪽에서 나온 감흥력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결국 남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좀 뜬구름 같았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제가 반복해서 쓴 문장이 뭐였는지를 보면 좀 뜨끔합니다. 공감은 논증으로 오지 않는다, 결론만 옮기면 비용 감각이 안 따라온다, 설명으로는 안 바뀌고 겪어야 바뀐다.
저는 그걸 전달 실패의 문제로 계속 써왔는데, 반대편에서 보면 그게 정확히 감흥력이 하는 일입니다. 겪지 않은 사람에게 겪은 것과 비슷한 무게를 만들어주는 것. 제가 슬라이드 한 뭉치로 못 한 게 그거였습니다.
안무가 쪽에서 몸 얘기를 계속 하니까 교수가 자기는 평생 소파에 누워서 머리만 굴린 사람이라 그 말이 제일 안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지컬 AI가 나오면서 갑자기 그 얘기가 고민이 됐다고 하고요.
저는 이 순서가 좀 웃겼습니다. 몸이 중요하다는 말을 몇 년째 들어도 안 움직이던 사람이, 로봇이 몸을 갖기 시작하니까 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거니까요. 사람 말로는 안 옮겨지던 게 기술이 그 자리를 건드리니까 옮겨졌습니다.
이것도 결국 제가 앞에서 쓴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논증으로는 안 오고 사건으로 옵니다. 다만 여기선 그 사건이 손실이 아니라 남의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면 공감을 만드는 경로가 하나 더 있는 셈인데,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대담 초반에 교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안무가와 대화하면 자기는 구할이 동의가 안 되는데, 끝나고 나면 항상 오 퍼센트쯤 배운 게 남아 있다고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한 게 딱 그거였습니다. 대담을 보면서 여러 군데서 동의가 안 됐고, 안 되는 자리를 하나씩 열어보니까 제가 왜 그렇게 보는지가 오히려 선명해졌습니다. 게으르다는 단어에 걸리지 않았으면 비용 얘기를 다시 꺼낼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제 주장이 인정받았다는 것보다, 동의 안 되는 자리를 준 쪽이 실제로는 더 쓸모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좀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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