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H는 날짜를 짚었고 저는 AI에 손코딩을 넘긴 날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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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H가 올해 Rails World에서 한 발표를 요약한 영상을 몇 편 봤습니다. 원본 발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아니고, 한국어로 정리해 준 유튜브 영상 네 편을 이어서 봤습니다. 발표를 남이 정리해 준 걸로 보고 대충 알았다고 넘어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요즘 제가 코드를 대하는 방식이랑 비슷합니다. 원본을 다 읽지 않고 정리된 결과를 보고, 이상한 데가 있으면 그때 찾아봅니다. 내용이 많았는데 제일 오래 남은 건 날짜 하나였습니다. 2025년 11월 24일. 영상에 따르면 DHH는 이날을 "우리 시대의 코닥 브라우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Claude Opus 4.5가 나온 날입니다. 1900년에 1달러짜리 카메라가 나오면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일감을 잃고 방향을 틀었던 것처럼, 그날부터 프로그래머의 일이 바뀌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기술은 비탈길처럼 매끄럽게 오르는 게 아니라 한참 평평하다가 어느 날 한 칸 뛰는 계단처럼 온다고 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제 날짜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였지. 생각이 안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친 코드 어림잡을 수 있는 건 있습니다. 2025년 9월쯤부터는 제가 코드를 직접 쓴 기억이 없습니다. DHH가 짚은 날보다 두 달쯤 앞입니다. 이걸 날짜라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9월 몇 일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날부터 안 쓴 게 아니라, 거꾸로 짚어 올라가다 보니 그쯤부터는 기억이 비어 있다는 정도입니다. 어느 날 키보드에서 손을 뗀 게 아니라 손으로 친 마지막 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니 안 떠오르는 겁니다. 두 달 앞이라고 해서 제가 남들보다 빨랐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때 무슨 모델을 쓰고 있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DHH는 특정 모델이 나온 날을 짚었는데 저는 어떤 모델 때문에 넘어왔는지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모델이 바뀐 날은 발표가 있으니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제가 바뀐 날은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커밋 기록을 뒤져 보면 뭔가 나올...

유튜브가 YPP 약관에서 단어 하나를 바꿨다

밝은 작업대 위에 놓인 망치 한 자루와 그 옆에 흩어진 못들

작년 7월 중순에 유튜브가 YPP(YouTube Partner Program) 약관에서 단어 하나를 바꿨습니다. "repetitious content" 가 "inauthentic content" 가 됐습니다. 그때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책 노트 한 줄이었고 유튜브도 작은 업데이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신호였던 것 같습니다.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막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이름 모를 페이스리스 채널 몇 개가 사라졌고, 1월 말부터는 매주 큰 채널이 한두 개씩 떨어져 나갔습니다. 2~3월에는 구독자 수백만짜리 AI 채널이 통째로 수익화를 잃거나 아예 닫혔습니다. 메이저 AI 채널 십여 개가 정리되면서 조회수 수십억 회, 구독자 수천만 명짜리 규모가 한 분기 만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한국 얘기가 특히 눈에 걸렸습니다. 작년 말 가디언이 전 세계 인기 유튜브 채널을 조사했더니 그중 수백 개가 AI 전용 채널이었는데, 이런 슬롭(slop) 콘텐츠를 제일 많이 본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2위부터 4위까지 다 합친 것보다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3분 지혜' 채널 하나가 한국 전체 AI 슬롭 조회수의 4분의 1 정도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왜 하필 한국이었을까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짧고 자극적인 걸 빨리 넘겨보는 데 익숙해서일 수도 있고, 그냥 한국어 채널 몇 개가 크게 터져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걸 보는 사람 중에 제 주변 사람도 꽤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코드를 짜고 AI 랑 매일 일하는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책에 화를 내는 것도 반기는 것도 둘 다 쉬운데, 저는 둘 다 좀 걸렸습니다.

바뀐 단어 하나

유튜브가 바꾼 건 정확히 한 단어입니다. repetitious(반복적인)가 inauthentic(진정성 없는)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게 꽤 큰 차이라고 봤습니다. 반복은 셀 수 있는 성질인데 진정성은 판단이 들어가는 말이니까요. 같은 포맷 영상을 백 개 올려도 그 안에 사람의 의도와 노력이 들어가 있으면 진정성이 없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한 번 만든 영상이라도 템플릿에 데이터만 갈아 끼운 거면 진정성이 없는 겁니다. 유튜브가 이걸 작은 업데이트라고 부른 게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문장은 거의 그대로니까요. 그런데 판단하는 주체가 달라졌습니다. 반복이면 숫자가 판단하는데 진정성이면 유튜브가 판단합니다.

반복이라는 단어가 원래 거기 왜 있었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셀 수 있어서였을 것 같습니다. 같은 영상을 몇 번 올렸는지,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는 기계가 재기 쉽고 크리에이터도 미리 따져볼 수 있습니다. 규칙이 좀 엉성해도 무엇에 걸리는지는 알 수 있는 규칙이었던 거죠. 진정성으로 바꾸면서 그 예측 가능함이 같이 빠졌습니다. 더 정확한 단어로 바꾼 건 맞는 것 같은데, 정확해진 만큼 크리에이터 쪽에서 미리 알 수 있는 건 줄었습니다. 엉성해도 읽히는 규칙과 정확한데 안 읽히는 규칙 중에 어느 쪽이 나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식 문서는 거의 차이 없는 템플릿으로 찍어낸 영상, 쉽게 대량 복제할 수 있는 구조, 의미 있는 내레이션이나 논평이나 교육적 가치 없이 슬라이드쇼만 늘어놓은 영상을 예로 듭니다. 위키 본문을 AI 음성으로 그대로 읽어주는 영상, 같은 슬라이드 템플릿에 텍스트만 바꾼 영상, 남의 영상을 번역해서 AI 더빙으로 다시 녹음한 영상, 같은 폼과 같은 음악과 같은 인트로에 데이터만 바꿔서 찍어내는 채널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서 많이들 오해하는 것 같은데, AI 를 쓴다고 수익화가 막히는 건 아닙니다. 유튜브 Head of Creator Liaison 인 르네 리치(Rene Ritchie)가 발표 직후 커뮤니티에 직접 답을 남겼는데, 오래 있던 정책을 더 분명하게 한 작은 업데이트일 뿐이고 AI 도구로 스토리텔링을 키우는 크리에이터는 환영한다는 얘기였습니다. 'welcomes' 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환영한다는 말이 정책 문서가 아니라 커뮤니티 답글로 나왔다는 게 좀 묘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AI 를 쓰다가 걸린 사람이 그 답글을 근거로 내밀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정책이 겨냥한 건 AI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의도와 노력이 빠진 채 찍어내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도구를 금지한 게 아니라 도구를 쓰는 방식을 단속하기 시작한 겁니다.

오래 있던 정책이라는 말은 아마 맞는 말일 겁니다. 반복적인 콘텐츠를 막는 조항이라면 재업로드 채널이나 짜깁기 채널을 걸러내려고 원래부터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이번 변화는 새 규칙이라기보다 원래 있던 규칙에 이유를 다시 적어 넣은 것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같은 걸 반복하는 게 문제라고 적었고, 이제는 그 반복이 왜 문제였는지, 사람이 안 들어가서라고 적은 겁니다. 이유를 적어 넣으니 규칙이 넓어졌습니다. 반복하지 않아도 사람이 빠져 있으면 걸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AI 슬롭이라는 말

이 글에서 계속 쓸 단어가 AI 슬롭(AI slop)입니다. 위키피디아는 생성 AI 로 만든 콘텐츠 중에 노력과 품질과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 주목을 끌거나 돈을 벌려고 클릭베이트 모양으로 대량 생산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slop 이 원래 돼지 먹이 찌꺼기를 가리키는 말이라 어감부터 깔보는 말이고, 한국 언론은 AI 찌꺼기라고 옮깁니다.

학술 쪽에서는 슬롭의 성질을 셋으로 봅니다. 겉만 그럴싸하고(superficial competence), 만든 사람의 노력보다 보는 사람이 들이는 시간이 더 크고(asymmetric effort),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mass producibility). 셋 다 맞으면 슬롭이고 하나라도 빠지면 그냥 AI 를 쓴 콘텐츠라는 겁니다. 이 말이 얼마나 빨리 퍼졌는지 작년 12월에 메리엄-웹스터와 미국방언학회가 같이 slop 을 올해의 단어로 뽑았습니다. 사전이 이렇게 빨리 반응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슬롭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작년 말 포춘에 실렸습니다. 미시시피 주립대를 그만둔 22살 어데이비아 데이비스(Adavia Davis)가 페이스리스 유튜브 채널 다섯 개를 운영하는데, 제일 잘되는 게 'Boring History' 라는 채널입니다. 잠들 때 듣는 6시간짜리 역사 다큐이고, 데이비드 애튼버러를 닮은 영국식 AI 음성이 끝없이 내레이션을 합니다. 사람들은 이걸 자장가로 틀어둡니다. 보는 영상이라기보다 틀어두는 영상이라서, 내용이 맞는지는 보는 사람도 별로 신경을 안 쓸 것 같습니다.

동업자가 만든 'TubeGen' 이라는 자동화 파이프라인이 핵심이었습니다. Claude 로 스크립트를 쓰고, ElevenLabs 로 영국식 내레이션을 입히고, 자동으로 영상을 조립합니다. 6시간짜리 한 편이 60달러에 만들어집니다. 포춘이 확인한 애드센스 기록으로는 1년에 70만 달러쯤 남고,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평균 두 시간 정도였습니다. 그 대목에서는 솔직히 좀 멈칫했습니다. 그러다 곧 그 6시간짜리 다큐 내용은 누가 확인했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넘어갔습니다. 의미 있는 사람 손이 거의 안 들어가고, 6시간짜리 영상이 그럴싸하게 이어지고, 같은 파이프라인으로 매주 새 영상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설명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사례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채널이 한두 개가 아니고, 한국이 그 시장에서 제일 많이 보는 나라입니다.

망치는 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정책을 두고 제일 많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AI 콘텐츠는 막아야 한다는 쪽과 유튜브가 결국 AI 를 막는다는 쪽. 저는 둘 다 도구한테 죄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데서 틀린 것 같았습니다.

망치는 집을 짓는 데도 쓰고 유리창을 깨는 데도 씁니다. 똑같은 망치입니다. 같은 무게, 같은 손잡이, 같은 머리입니다. 망치가 유리창을 깬다고 망치를 다 부수면 집 짓던 사람도 같이 멈춥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유리창은 계속 깨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도를 봅니다. 유리창을 깬 사람이 잡혀가지 망치 회사가 잡혀가지는 않습니다. 망치는 도구고 도구에는 선악이 없습니다. 그건 도구를 든 손에 있습니다. 다만 이 비유가 좀 너무 깔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망치로는 한 번에 유리창 하나를 상대하지만 AI 는 한 사람이 하루에 영상 수십 개를 찍어내게 해줍니다. 손이 문제라는 건 맞는데, 그 손이 할 수 있는 양이 달라졌다는 건 망치 비유로는 잘 안 담기는 것 같습니다.

AI 도 그렇다고 봅니다. Claude 로 스크립트를 쓰는 것, ElevenLabs 로 음성을 만드는 것, 6시간짜리 영상이 자동으로 조립되는 것.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쓰는 사람의 의도가 뭐냐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도 망치 비유에서 빠진 게 하나 있습니다. 망치 가게는 망치를 팔 때 뭘 지을 거냐고 묻지 않지만, 유튜브는 망치를 판 게 아니라 망치로 지은 걸 진열해주는 쪽입니다. 진열대에 기준이 있는 건 원래부터 그랬고, 그 기준이 왜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번 정책도 진열대 주인이 할 만한 일로 보입니다. 다만 진열대 기준이 바뀔 때 미리 알려주는 방식은 지금보다 좀 더 친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답글 하나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기준을 바꾼 쪽은 이유를 알고 있겠지만, 그 아래에서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되니까요. 짐작이 틀리면 그다음 30일은 그 사람 몫이 됩니다.

제가 매일 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AI 한테 코드를 쓰라고 시킵니다. 그 코드를 그대로 PR 에 넣으면 그건 슬롭 코드입니다. 같은 도구로 같은 양을 짜도 제가 읽고, 의도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고치고, 그 결과를 책임지면 슬롭이 아닙니다. 도구는 같은데 손이 다릅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사주, 타로, 미연시, 로봇 네 개를 AI 랑 넉 달 동안 만든 기록을 따로 정리했는데, 네 번 다 같은 데서 막혔고 그건 제가 AI 한테 안 적어준 제약이 쌓인 데였습니다. 손이 다르다는 말이 실제로는 그런 거였습니다.

바이브 코딩 강의 얘기를 할 때도 비슷한 걸 썼습니다. AI 한테 시키면 한 달 만에 앱을 낸다는 광고가 사기인 건 AI 코딩이 안 돼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든 결과물에 의도와 확인과 책임이 다 빠져 있어서였습니다. 망치에 죄가 있는 게 아니라 망치를 들고 유리창을 깨러 가는 사람한테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가 AI 를 막은 게 아니라 슬롭을 만드는 사람을 막은 거라고 봤고, 그 결정 자체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왜 망치를 들고 유리창을 깨러 가는지는 계속 궁금했습니다.

왜 깨러 가는가

양산 채널을 만든 사람들을 쉽게 돈 벌려는 사람들이라고 한 줄로 정리하는 건 편합니다. 편한 만큼 게으른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처지에 놓이면 누구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환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유튜버의 평균 수입만 보면 꽤 괜찮아 보입니다. 그런데 펼쳐보면 상위 1%가 한 명에 10억 넘게 벌고, 상위 10%가 전체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가고, 하위 절반은 한 달에 200만 원 남짓입니다. 영상 한 편에 들어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최저시급도 안 될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균을 안 봅니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건 상위 1%의 삶입니다. 외제차 리뷰, 두바이 디지털 노마드, 한 달 천만 원 자동 수익 인증. 그게 유튜브의 기본처럼 느껴집니다. 자영업이 몇 년 안에 절반 넘게 문을 닫는다는 숫자는 안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는 진짜 절박함입니다. 2024년 한국에서 폐업 신고를 한 사람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소매업과 음식점이 그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그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갈까 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N잡러도 늘었는데, 50대 이상의 N잡 비중이 연령대 중에 제일 높고 60대 부업자는 1년 만에 크게 늘었습니다. 40대와 50대 초반 부업자들이 관심 갖는 일 중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있는데, 이유는 단순할 것 같습니다.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업이니까요. 보증금도 권리금도 인허가도 필요 없습니다.

그 사이에 강의 산업이 자랐습니다. GPT 자동화로 한 달 몇천만 원, 노코드 AI 로 100억 매출, 자는 동안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 이런 광고가 인스타 피드와 유튜브 광고를 덮었습니다. 미국에서는 FTC 가 이런 수익 보장 AI 부업 강좌를 단속해서 큰 벌금을 매겼는데 한국에는 비슷한 장치가 거의 없습니다. 강의는 몇십만 원부터 몇백만 원짜리 마스터 코스까지 있습니다. 이 강의 시장은 글을 쓰고 나서 따로 들여다봤는데, 채널이 정지된 그달에 같은 운영자의 다음 영상이 강의 광고로 바뀌는 순서가 사람마다 거의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강의를 파는 쪽은 양산이 막혀도 별로 잃을 게 없다는 게 묘했습니다. 채널이 막히면 그다음엔 채널 만드는 법을 팔면 되니까요.

이걸 다 합쳐서 한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이렇습니다. 50대 후반 가장이 하던 음식점이 코로나와 고금리와 임대료를 못 버티고 문을 닫았습니다. 퇴직금은 가게를 정리하면서 다 들어갔습니다. 다시 일을 구하기엔 나이가 걸립니다. 인스타 피드에 AI 자동화로 한 달에 영상 100개를 찍어내는 자동 수익 파이프라인 광고가 뜹니다. 후기는 화려합니다. 강의에 50만 원, 강의가 시키는 도구에 30만 원을 씁니다. 망치를 빌린 겁니다. 이 사람이 그 망치로 뭘 할 수 있을까. 이 사람한테 슬롭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건 쉬운데, 그럼 뭘 하라는 거냐고 물으면 저도 바로 할 말이 없습니다.

쉽게 돈 벌려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고 끝내면 절반만 보는 것 같습니다. 동기에는 환상도 있고 절박함도 있습니다. 환상은 비판할 수 있지만 절박함은 비판하기 전에 먼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동기를 이해하는 것과 결과를 다르게 보는 건 다른 얘기였습니다. 저는 양산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데이비스가 화려해 보여도 양산 채널이 살아남는 비율은 가혹합니다. 가디언 조사에 잡힌 채널들은 살아남은 쪽이고, 그 옆에는 시작했다가 1년 안에 사라진 채널이 수도 없이 있습니다. 양산 강의를 듣고 도구를 사고 영상을 백 개 올린 사람 대부분은 수익화 조건도 못 채우고 멈춥니다. 채운 사람도 올해 단속에 채널을 잃었습니다. 양산은 사람을 살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되더라도 오래 안 가고, 오래 가더라도 결국 알고리즘이나 정책에 정리됩니다.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안에 있는 동전을 줍는 건 가끔 되지만 그게 직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양산에 뛰어드는 사람을 비웃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양산이 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는 게 이 얘기에서 제일 불편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책이 모호하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정책 방향에 동의한다고 정책이 완벽하다는 건 아닙니다. 제일 걸리는 건 사람 손과 AI 를 섞어 쓰는 크리에이터가 알고리즘에 잘못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디지데이(Digiday)가 정책 발표 직후 인터뷰한 베넷 산토라(Bennett Santora)라는 크리에이터가 있습니다. 'StoriezTold' 라는 채널에서 동물 단편 픽션을 만드는데, 기존 영상 클립을 이어 붙이고 자기가 쓴 내레이션을 입히고 AI 도 일부 씁니다. 그 사람이 한 말이 정확했습니다. "우리가 올리는 모든 영상은 다른 동물의 다른 이야기인데, 그래도 알고리즘은 이걸 repetitious 로 분류할 수 있다."

같은 포맷에 다른 내용을 담는 채널은 어떻게 판정할까요. 톤도 길이도 인트로도 같은데 이야기는 매번 다른 채널은요. 정책은 템플릿에 데이터만 갈아 끼우는 걸 슬롭으로 본다고 했지만 실제 알고리즘이 그걸 얼마나 잘 가려낼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도 매일 같은 인트로로 경제 뉴스를 만드는 채널, 같은 목소리와 같은 스튜디오로 매일 다른 IT 소식을 다루는 채널, 보드게임 룰을 같은 톤으로 설명하는 채널이 있습니다. 이들은 슬롭이 아닙니다. 매번 다른 의도와 다른 확인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보기엔 겉모양이 비슷합니다. 결국 알고리즘한테 의도를 읽으라고 하는 셈인데, 사람도 남의 의도를 잘 못 읽습니다. 기계가 그걸 정확히 해낼 거라고 기대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 단어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반복으로 판정할 때도 같은 인트로를 쓰는 채널이 걸릴 위험이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어를 진정성으로 바꿨다고 알고리즘이 갑자기 의도를 읽게 된 건 아닐 테니, 실제로는 겉모양을 보는 판정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진정성이라는 이름만 얹혔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단어만 바뀌고 걸리는 채널은 별로 안 바뀐 셈입니다. 그냥 짐작이고, 밖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로 올해 단속 중에 제대로 운영하던 중소 채널이 같이 휘말렸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는 30일 기다리면 YPP 를 다시 신청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혼자 하는 크리에이터한테 30일 동안 수익이 막히는 건 치명적입니다. 항의해도 사람이 보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슬롭을 막는 건 맞는데 막는 도구가 정밀하지 않으면 도구를 진지하게 쓰는 사람까지 같이 치게 됩니다. 망치를 다 부수면 집 짓던 사람도 멈춘다는 비유가 여기서 다시 맞아떨어졌습니다.

30일이라는 기간도 왜 그렇게 정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마 거절당하자마자 다시 신청하는 걸 막으려고 둔 것 같은데, 그 장치가 잘못 걸린 사람한테는 그냥 벌이 됩니다. 슬롭 채널은 채널을 새로 열면 되니 30일이 별로 안 아프고, 이름을 걸고 하는 사람일수록 그 30일이 더 아픕니다. 막으려던 쪽보다 막을 생각이 없던 쪽이 더 크게 다치는 구조라면, 그 기간은 한 번쯤 다시 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임이 한쪽으로만 가는 것도 걸렸습니다. 유튜브는 정책을 모호하게 정해두고 판정은 자기가 합니다. 크리에이터는 결과를 보고서야 압니다. 뭐가 슬롭이고 뭐가 아닌지 미리 알 방법이 없고, 자기 영상이 슬롭으로 분류되는 순간 한 달 수익이 0이 됩니다. 저는 이 힘의 차이가 이 정책에서 제일 약한 데라고 봤습니다. 딸깍으로 만든 제품은 딸깍으로 복사된다는 얘기를 할 때도 비슷한 걸 썼습니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책임의 선이 흐려집니다. AI 가 만든 코드의 버그는 누구 버그인가 하는 질문이 콘텐츠에도 그대로 옵니다. 알고리즘이 잘못 분류한 책임은 알고리즘 회사가 진다고 하지만 손해는 크리에이터가 봅니다. 방향은 맞는데 집행은 더 정교해져야 하고, 결국 사람의 의도와 확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책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짜로 쓰는 것과 찍어내는 것

그럼 슬롭과 AI 를 제대로 쓰는 것 사이의 선은 어디쯤일까요. 저는 PR 리뷰를 할 때 보는 걸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좋은 PR 과 나쁜 PR 을 나눌 때 결국 보는 건 의도, 확인, 책임이었고, 이걸 콘텐츠에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의도는 이 영상을 왜 만드느냐입니다. 보는 사람한테 뭘 전하고 싶은지, 어떤 질문에 답하고 싶은지, 어떤 관점을 보여주고 싶은지. 슬롭 채널의 의도는 대개 조회수에서 멈춥니다. 뭘 전하느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뭘 좋아하느냐가 의도를 대신합니다. 그러면 영상은 보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향하게 되고, 결과물에 그게 그대로 묻어납니다.

확인은 영상에 들어간 정보가 사실인지, 인용이 정확한지, 데이터가 최신인지, 추론이 맞는지입니다. AI 는 자신 있게 틀립니다. 위키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는 채널이 위험한 게 그래서입니다. AI 가 정리한 텍스트를 그대로 읽으면 환각도 그대로 영상으로 나갑니다. 아무도 확인 안 한 정보가 6시간짜리 다큐 모양으로 나오면 보는 사람은 그걸 사실로 믿습니다. 제대로 쓰는 쪽은 AI 결과물을 원래 자료와 대조하고 직접 고치는 단계가 꼭 있을 것 같습니다.

책임은 잘못됐을 때 누가 대답하느냐입니다. 슬롭 채널은 대개 익명입니다. 운영자가 누군지 모르고, 실수가 드러나면 채널이 사라지거나 영상이 비공개가 됩니다. 제대로 쓰는 쪽은 운영자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데이터를 잘못 다뤘으면 정정 영상을 올리고, 표현이 치우쳤으면 사과하고, 비판이 오면 답합니다. 책임은 결국 얼굴이 있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얼굴이 있으면 틀렸을 때 창피합니다. 그 창피함이 다음 영상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익명 채널에는 그게 없습니다. 틀려도 채널 하나 닫고 새로 열면 그만이니까요.

제가 콘텐츠를 만든다면 이런 걸 물어볼 것 같습니다. 이 영상의 핵심을 한 줄로 말할 수 있나, 그게 알고리즘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향해 있나. AI 가 만든 텍스트와 음성과 이미지를 실제로 들여다봤나, 원래 자료랑 맞춰봤나. 누가 틀렸다고 하면 고칠 생각과 방법이 있나. 다음 영상에 이번 피드백이 들어가나. 하루에 영상 100개를 찍어낼 수 있는 구조인가, 그렇다면 사람 손이 들어갈 틈이 있긴 한가. 만들면서 제가 새로 배운 게 있나, AI 가 준 걸 그대로 받아쓰기만 한 건 아닌가. 이 중에 대부분이 아니라면 슬롭에 가깝고, 대부분이 그렇다면 도구를 진지하게 쓰는 쪽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개발자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AI 가 만든 걸 책임지는 사람과 그냥 갖다 쓰는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지 좁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빨리 망하는 쪽과 늦게 크는 쪽

효율과 진정성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AI 를 안 써야 진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AI 를 잘 써도 진정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손으로 다 만들어도 의도가 빈 콘텐츠가 있습니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직접 편집하는 채널 중에도 슬롭은 많습니다. 도구 종류로는 슬롭과 진짜를 나눌 수 없고 의도와 확인과 책임이 있느냐가 나누는 것 같습니다.

그런 채널이 예전 단어로는 안 걸리고 새 단어로는 걸릴 수 있다는 게 좀 흥미롭습니다. 반복하지 않으니 예전 규칙으로는 빠져나가지만, 의도가 비어 있으면 진정성 쪽에서는 걸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단어를 바꾼 의도가 그쪽이라면 이건 AI 를 겨냥한 정책이라기보다 원래 하려던 일을 이제야 제대로 적은 쪽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장에는 시간차가 있습니다. 양산은 빨리 망하고 제대로 쓰는 쪽은 늦게 큽니다. 양산이 빨리 망하는 건 슬롭이 다른 슬롭과 구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TubeGen 으로 6시간짜리 역사 다큐를 만들 수 있다는 건 다른 사람도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들어오는 데 60달러면 되는 시장에 모이는 건 60달러짜리 경쟁자들입니다. 데이비스는 운 좋게 먼저 시작했을 뿐이고, 같은 시장에 새로운 데이비스가 매주 나타나고, 대부분은 본전도 못 찾을 겁니다. 여기에 알고리즘과 정책이 더해집니다. 올해 1월부터 시작된 단속이 그 신호입니다. 유튜브는 슬롭을 거르고, 광고주는 슬롭 옆에 자기 광고가 붙는 걸 싫어하고, 보는 사람도 결국 지칩니다. 시간이 지나면 슬롭 단가는 떨어지고 마진은 0 에 가까워질 것 같습니다.

제대로 쓰는 쪽이 늦게 크는 것도 같은 이유의 반대편입니다. 의도와 확인과 책임이 들어간 콘텐츠는 만드는 데 시간이 들고, 처음엔 잘 안 되고, 들인 품에 비해 조회수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쌓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같은 사람의 다섯 번째 영상은 첫 번째보다 낫고, 쉰 번째는 다섯 번째보다 확실히 낫고, 오백 번째는 아예 다른 수준입니다. 보는 사람들이 그걸 압니다. 이름이 쌓이고 신뢰가 쌓이고 채널이 쌓입니다. 슬롭 채널이 무더기로 사라지는 동안 진짜 채널은 남는 것 같습니다. 다만 늦게 큰다는 건 그동안 버틸 수 있는 사람한테만 해당되는 얘기라는 게 좀 걸립니다. 앞에서 떠올린 그 50대 가장한테 천천히 크면 된다고 하는 건 위로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AI 에게 도메인을 이해시킨다는 얘기에서 쓴 도메인 깊이 문제와 비슷하다고 봤습니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도구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의 값은 떨어지고 도구로 못 만드는 것의 값은 오릅니다. 사람의 안목, 도메인 이해, 결과를 책임지는 능력 같은 게 남는 것 같습니다. AI 시대 크리에이터한테 필요한 건 AI 를 빨리 쓰는 능력보다 AI 가 만든 걸 정확히 보고 자기 의도에 맞게 다시 빚는 안목일 것 같고, 그건 양산해서는 안 늘고 한 편 한 편 제대로 만들어본 사람만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망치로 뭘 지을지

저는 이 정책에 화가 나지도 않고 딱히 반갑지도 않습니다. AI 를 감싸고 싶지도 탓하고 싶지도 않고, 양산 채널 운영자를 비웃고 싶지도 치켜세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도구가 결백하다고 변호할 필요도 없고 도구한테 죄를 묻는 것도 헛수고 같습니다. 남는 건 망치를 든 손이 뭘 짓느냐인 것 같습니다.

도구를 진지하게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단속에 너무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의도가 있고, 확인을 거치고, 책임을 지고 있다면 슬롭이 아닙니다. 알고리즘이 잘못 분류할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시장과 보는 사람이 알아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30일 정지가 무서워서 도구를 안 쓰는 것보다 더 잘 쓰는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절박해서 양산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위 1%가 보여주는 삶이 평균이 아니라는 것부터 의심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자영업에 평균이 있는 것처럼 유튜브에도 평균이 있습니다. 양산 강의가 약속하는 자동 수익은 평균이 아니라 아주 드문 예외고, 그 예외도 올해 단속을 못 버텼습니다. 60달러짜리 진입 장벽 뒤에는 60달러짜리 경쟁자들이 있고 알고리즘과 정책이 그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라면 거기에는 안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래도 꼭 시작해야 한다면 자기가 진짜로 아는 분야에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당을 20년 했으면 식당 운영을, 자동차 정비를 했으면 정비를, 공장을 돌렸으면 공장 운영을 다루고, 거기에 AI 를 도구로 붙이는 겁니다. 편집에 AI, 자막에 AI, 썸네일에 AI. 그래도 콘텐츠의 중심은 그 사람이 겪은 일이고, 그건 60달러로 복제가 안 됩니다. 저는 그게 도구가 넘쳐나는 지금 사람이 가진 거의 유일한 진짜 자산이라고 봅니다.

저도 제가 쓰는 글과 코드를 의도, 확인, 책임으로 놓고 보면 어디가 제일 약할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의도가 보는 사람 쪽을 향해 있는지, 확인을 정말 제가 하고 있는지, 틀렸을 때 대답할 얼굴이 있는지. 그게 정해지면 망치로 뭘 지을지도 대충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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