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H는 날짜를 짚었고 저는 AI에 손코딩을 넘긴 날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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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H가 올해 Rails World에서 한 발표를 요약한 영상을 몇 편 봤습니다. 원본 발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아니고, 한국어로 정리해 준 유튜브 영상 네 편을 이어서 봤습니다. 발표를 남이 정리해 준 걸로 보고 대충 알았다고 넘어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요즘 제가 코드를 대하는 방식이랑 비슷합니다. 원본을 다 읽지 않고 정리된 결과를 보고, 이상한 데가 있으면 그때 찾아봅니다. 내용이 많았는데 제일 오래 남은 건 날짜 하나였습니다. 2025년 11월 24일. 영상에 따르면 DHH는 이날을 "우리 시대의 코닥 브라우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Claude Opus 4.5가 나온 날입니다. 1900년에 1달러짜리 카메라가 나오면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일감을 잃고 방향을 틀었던 것처럼, 그날부터 프로그래머의 일이 바뀌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기술은 비탈길처럼 매끄럽게 오르는 게 아니라 한참 평평하다가 어느 날 한 칸 뛰는 계단처럼 온다고 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제 날짜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였지. 생각이 안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친 코드 어림잡을 수 있는 건 있습니다. 2025년 9월쯤부터는 제가 코드를 직접 쓴 기억이 없습니다. DHH가 짚은 날보다 두 달쯤 앞입니다. 이걸 날짜라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9월 몇 일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날부터 안 쓴 게 아니라, 거꾸로 짚어 올라가다 보니 그쯤부터는 기억이 비어 있다는 정도입니다. 어느 날 키보드에서 손을 뗀 게 아니라 손으로 친 마지막 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니 안 떠오르는 겁니다. 두 달 앞이라고 해서 제가 남들보다 빨랐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때 무슨 모델을 쓰고 있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DHH는 특정 모델이 나온 날을 짚었는데 저는 어떤 모델 때문에 넘어왔는지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모델이 바뀐 날은 발표가 있으니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제가 바뀐 날은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커밋 기록을 뒤져 보면 뭔가 나올...

회사 AI 구독과 개인 구독을 따로 쓰는 이유 - 관리자 열람 범위와 한도 실측

밝은 책상 위에 신용카드 두 장과 스마트폰 결제 화면, 커피잔이 나란히 놓인 오버헤드 구도

AI 에 쓰는 돈을 좀 줄여보려고 했습니다. 회사가 ChatGPT 를 지원해 주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한 게 개인 구독 해지였습니다. 반년 동안 매달 빠져나가던 20달러가 없어지고 카드 명세서에서 한 줄이 지워졌습니다. 생각한 대로였습니다.

오늘 그 줄이 다시 생겼습니다. 옆에 한 줄이 더 붙은 채로요. 줄이려고 끊었던 게 두 배가 돼서 돌아온 겁니다.

14일이 6개월이 됐습니다

AI 를 처음 제대로 써본 건 ChatGPT 였고, 14일 무료 체험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이게 얼마짜리인지 감이 없어서 체험이라니까 그냥 눌렀습니다. 써보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좀 부끄러운 표현인데 달리 쓸 말이 없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14일이 끝나고 무료 플랜으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딱 하루였습니다. 응답이 느려지고, 모델이 조용히 아래 등급으로 내려가고, 하루 질문 수 상한에 걸리는 걸 연달아 겪고 나니까 지난 2주 동안 쓴 게 무료 플랜이 아니었다는 게 그제야 몸으로 와닿았습니다. 다음 날 결제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료 체험은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무료 플랜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보여주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무료 플랜만 줬으면 저는 AI 가 이 정도구나 하고 끝냈을 겁니다. 비교할 게 없으니 불편한 줄도 몰랐을 테고요. 그런데 14일 동안 위쪽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아래로 내리면 같은 무료 플랜이 전혀 다른 물건이 됩니다. 없던 걸 파는 게 아니라 있던 걸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없던 걸 얻는 것보다 있던 걸 잃는 데 훨씬 예민하니까요. 요즘은 AI 말고도 거의 모든 구독이 이렇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설계에 딱 걸렸고, 걸린 걸 알면서도 결제했습니다. 알아본다고 안 걸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든 제품이라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그 14일 동안 제가 일하는 방식이 이미 바뀌어 있었고, 바뀐 방식을 되돌리는 게 20달러보다 비쌌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썼습니다.

회사가 사주기 시작했을 때

6개월쯤 지났을 때 회사에서 ChatGPT 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계정이 생겼고, 제 돈으로 쓰던 것과 같은 모델을 회사 워크스페이스에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당연히 개인 구독은 끊었습니다. 같은 걸 두 번 살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때 저는 같은 모델이면 같은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나중에 틀린 생각이 됩니다.

얼마 뒤엔 Claude 지원도 붙었습니다.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최상위 모델 두 개를 쓰는데 제 카드에서는 한 푼도 안 나갔습니다. 도구를 사주는 회사에 다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잘 돌아갔습니다. ChatGPT Work 로 브라우저 탭 일곱 개를 줄여본 것도 그때였습니다. 회사 계정이라 사내 문서와 연결되는 게 핵심이었고, 개인 계정으로는 처음부터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회사 계정의 값어치가 모델이 아니라 연결된 데이터에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게 장점으로만 보였습니다. 데이터가 연결돼 있다는 건 거꾸로 그 안에서 한 일도 다 회사 쪽에 남는다는 얘기였는데, 그건 한참 뒤에야 생각났습니다.

이 상태가 생각만큼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팀 플랜인데 한도가 먼저 찼습니다

문제는 Claude Code 에서 생겼습니다. 회사 팀 플랜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사용 한도가 자꾸 꽉 찼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뭘 잘못 쓰나 했습니다. 컨텍스트를 너무 많이 넣나, 세션을 안 끊나, 큰 파일을 습관처럼 통째로 읽히나. 하나씩 줄여봤는데 아무리 아껴 써도 결국 같은 데서 막혔습니다. 회사 좌석이니까 개인 요금제보다는 넉넉하겠지 하고 막연히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창 하다가 막히면 잃는 게 두 겹입니다. 남은 작업이 멈추는 건 눈에 보이는 거고, 실제로 아픈 건 그 세션에 쌓인 맥락이 통째로 날아가는 겁니다. 어떤 파일을 왜 그렇게 고쳤는지, 어떤 방향은 이미 해보고 버렸는지가 전부 그 세션 안에 있습니다. 다시 붙을 때는 그걸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이 또 한도를 씁니다. 막혀서 잃은 맥락을 되살리는 데 다시 한도를 쓰니까 한 번 막히고 나면 그 뒤로는 효율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알아보니 팀 좌석은 한도 구조가 개인 요금제랑 달랐습니다. 팀 플랜에서 Claude Code 는 Premium 좌석에 붙는데, 사용량 자체는 개인 Pro 보다 몇 배 많습니다. 차이는 양이 아니라 다시 채워지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Premium 좌석은 전체 모델 한도와 Sonnet 계열 한도가 따로 돌고, 둘 다 세션을 시작하고 7일 뒤에 리셋됩니다. 개인 Max 는 5시간마다 돌아옵니다. 5시간짜리는 크게 한 번 쓰고 점심 먹고 오면 어느 정도 돌아와 있는데, 주 단위는 화요일에 크게 쓰면 목요일에 남는 게 없고 그 주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입니다. 제가 겪은 게 이거였습니다. 총량이 모자란 게 아니라 총량이 돌아오는 속도가 제가 일하는 리듬이랑 안 맞았습니다.

그래서 개인 카드로 Claude Pro 를 결제했습니다. 회사 계정으로 하다가 막히면 개인 계정으로 넘어가서 이어서 했습니다. 이게 첫 번째 이중 구독이었습니다.

이건 계산이 되는 돈이었습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제가 왜 돈을 더 내는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좌석만 쓰면 돈은 안 들지만 주 단위로 막힙니다. 개인 Pro 를 하나 더하면 20달러로 막혔을 때 넘어갈 데가 생깁니다. 회사가 전원을 Premium 으로 올려주는 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회사는 좌석을 사람 수만큼 사야 합니다. Claude Code 를 하루 종일 돌리는 사람과 가끔 문서 요약에나 쓰는 사람이 한 조직에 같이 있는데, 앞사람에 맞춰 좌석을 올리면 뒷사람 몫까지 몇 배 값으로 사게 됩니다. 저는 저 하나만 사면 됩니다. 회사가 못 하는 최적화를 제가 20달러로 한 셈입니다. 더 쓰니까 더 낸 거라 납득이 됐습니다.

그때 제 상태는 회사가 내주는 ChatGPT 와 Claude, 그리고 제 돈으로 내는 Claude Pro 였습니다. AI 에 나가는 돈은 다시 20달러가 됐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오늘 뜬 고지 한 줄

오늘 ChatGPT 에 들어갔더니 안내가 하나 떠 있었습니다. 제 채팅 내역을 회사 관리자가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동안 화면을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 놀랐다기보다 몰랐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저는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데이터가 어디에 남는지를 남들보다는 자주 생각한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회사 워크스페이스에 뭘 넣었는지를 한 번도 이런 눈으로 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가 몰래 뭘 하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ChatGPT Enterprise 나 Edu 워크스페이스에서는 관리자가 Compliance API 와 감사 로그로 구성원의 대화를 열어보고, 내보내고, 지울 수 있습니다. 숨겨둔 기능이 아니라 공개된 관리자 기능이고, OpenAI 는 그 용도를 소송이나 규제 조사, 보안 감사라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평소 인사 관리나 근태 감시에 쓰라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 관리자가 제 대화를 본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관리자가 제 대화를 볼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길을 언제 여는지는 제가 정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말 같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 기능을 안 켤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유료 AI 워크스페이스를 들이는 순간 회사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도 같이 삽니다. 누가 고객 개인정보를 프롬프트에 붙여넣으면 그건 회사의 개인정보 사고가 되고, 소스 코드를 통째로 넣으면 회사 자산이 밖으로 나간 게 됩니다. 나중에 규제 기관이나 법원이 그때 어떤 데이터가 어디로 갔는지 대라고 하면 회사는 대야 하는데, 감사 로그가 없으면 아무 말도 못 합니다. 그래서 이 기능은 감시하는 도구이기 전에 증명하는 도구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감시하는 도구와 증명하는 도구가 기술적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는 겁니다. 같은 API 를 열면 둘 다 됩니다. 구분은 정책과 절차에서만 생기는데 정책은 사람이 바꿉니다.

이 모양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침해 사고를 알고 나서 공개하기까지 한쪽은 7일, 한쪽은 40개월이 걸렸던 일을 쓸 때도 제가 센 건 유출 규모가 아니라 언제 알았고 언제 말했느냐였습니다. 그때 40개월을 만든 건 기술이 아니라 그 위에서 판단하는 층이었습니다. 오늘 본 것도 비슷했습니다. 기능은 중립인데 그걸 언제 쓸지 정하는 사람이 제 밖에 있습니다.

제가 산 건 막는 게 아니었습니다

개인 구독을 다시 한다고 회사 워크스페이스 관리자 권한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미 쌓인 기록도 그대로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결제했습니다. 제가 산 건 나눠 쓸 수 있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회사 계정에 넣을 것과 제 계정에 넣을 것을 제가 나눌 수 있는 상태. 그게 전부입니다.

업무 코드와 업무 문서는 회사 워크스페이스에 넣는 게 맞습니다. 그러라고 산 좌석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그게 안전합니다. 문제는 제가 그 경계를 잘 지키고 있었느냐인데, 솔직히 그렇지 못했습니다. 업무 계정이 손 닿는 데 있으면 일과 개인 작업 사이가 흐려집니다. 창을 새로 열고 계정을 바꾸는 것보다 이미 열려 있는 탭에서 이어서 묻는 게 빠르니까요.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가 무해한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고지를 보고 제일 늦게 든 생각이 이거였습니다. 이어진 기록은 대화들을 합쳐놓은 것과는 다른 물건입니다. 몇 달 치를 시간순으로 이어 붙이면 제가 뭘 궁금해했고 뭘 계속 붙잡고 있었는지가 보이는 궤적이 됩니다. 저는 그런 문서를 만든 적이 없는데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관리자가 그걸 실제로 열어볼까 봐 걱정한 건 아니었습니다. 열지 말지를 제가 정할 수 없다는 게 걸렸습니다.

같은 모델이면 같은 물건이라고 했던 생각이 틀린 게 여기였습니다. 모델도 같고 답의 품질도 같습니다. 다른 건 그 대화가 누구 계정에 남느냐였습니다. 6개월 전에 저는 그걸 비교할 항목에 넣지도 않고 계산을 끝냈습니다.

두 번째 이중 구독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용량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소유 때문이었습니다. 둘은 꽤 다른 것 같습니다. 용량은 더 쓰면 더 내는 거라 계산이 되는데, 소유는 얼마를 내야 충분한지 계산이 안 됩니다.

그래서 구독을 전부 적어봤습니다

두 번째 결제를 하고 나서, 지금 매달 뭘 사고 있는지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앉아서 적어봤습니다.

AI 쪽은 회사가 내주는 ChatGPT 업무 워크스페이스와 Claude 업무 좌석이 있고, 제가 내는 Claude Pro 20달러, ChatGPT Plus 20달러, Google One AI Plus 가 있습니다. Google One AI Plus 는 올해 초에 한국에 나왔을 때 월 11,000원이었는데, 그 뒤에 구글이 글로벌 기준가를 내리고 저장공간을 늘렸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 청구서에 찍히는 금액은 제가 기억하는 금액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충 합치면 AI 에만 한 달에 6만 원 후반, 1년이면 80만 원쯤입니다.

여기서 걸리는 건 회사가 내주는 두 줄이었습니다. 그걸 0원으로 적는 순간 이 지출이 싸 보입니다. 실제로는 제가 쓰는 AI 에 좌석 두 개 값이 더 들어가 있고, 저는 그중에 제 카드에 찍히는 것만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숫자와 실제로 저한테 쓰이는 숫자가 다릅니다. 회사 지원이 끊기는 날 이 목록은 갑자기 두 배가 될 겁니다. 그날이 오면 여기 적은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차분하게 적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미디어는 YouTube Premium 과 Netflix 프리미엄이고, Netflix 에는 아버지와 동생이 추가 회원으로 붙어 있습니다. 이건 제가 제일 정확하게 아는 줄입니다.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를 유료로 바꾼다는 얘기를 해외 뉴스로 먼저 봤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시작했으니 한국에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였고, 그래서 국내에 적용되자마자 두 사람을 추가 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걸리고 나서 허둥댄 게 아니라 규칙이 바뀔 걸 알고 바뀌는 날 맞춰서 처리했습니다.

넷플릭스 계정은 회원 본인과 같이 사는 사람, 그러니까 한 가구가 쓰는 겁니다. 따로 사는 사람과 나눠 쓰려면 추가 회원 슬롯을 사야 하고 한 명에 5,000원입니다. 프리미엄은 두 명까지, 스탠다드는 한 명까지 붙일 수 있고 그 아래 요금제는 아예 안 됩니다. 그래서 프리미엄의 동시 접속 4명과 추가 회원 2명은 다른 숫자입니다. 4명은 우리 집 안에서 쓰는 몫이고 아버지와 동생은 거기에 안 들어갑니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계정과 비밀번호와 프로필을 따로 받고 각자 한 대에서만 봅니다. 저한테 있는 건 돈을 낼 의무와 추가하고 삭제하는 권한뿐입니다. 그 만 원은 가족이 보태주는 돈이 아니라 넷플릭스에 내는 돈이고, 2만 7천 원이 전부 제 카드에서 나갑니다.

제가 몰랐던 건 아닙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아도 결과가 같았습니다. 미리 알고 준비한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이 정해진 날에 만 원을 더 내는 거였습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아버지와 동생은 제 가족이 아니라 다른 가구입니다. 같이 안 사니까요. 예전에 계정 하나로 되던 걸 가구라는 선을 새로 그어서 돈을 받는 대상으로 바꿨습니다. 가족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하는 게 통신사도 나라도 아니고 스트리밍 회사라는 게 저는 좀 이상했습니다. 가구라는 말이 이렇게 돈이랑 붙어 있는 단어인 줄은 그전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YouTube Premium 은 iOS 앱 안에서 결제하면 애플 수수료가 붙어서 안드로이드나 PC 보다 한 달에 4,600원 비쌉니다. 같은 상품인데 결제한 기기에 따라 1년이면 5만 원 넘게 차이가 납니다. 음악을 안 들으면 라이트 요금제가 맞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는 한 달에 4만 원 조금 넘고 1년이면 50만 원 정도입니다.

그다음이 1Password 와 로블록스 게임 구독, 마인크래프트 게임 구독입니다. 앞의 하나는 제 것이고 뒤의 둘은 아들 겁니다. 게임 구독 둘은 금액이 크지 않은데 이게 제일 안 세어졌습니다. 결제일이 제각각이고, 인앱 결제라 카드 명세서에 게임 이름이 아니라 스토어 이름으로만 찍힙니다. 같은 스토어 이름으로 여러 줄이 찍혀 있으면 그게 구독인지 한 번 산 건지 그 줄만 봐서는 모릅니다. 이 두 줄의 정확한 금액은 지금 못 적겠습니다. 명세서를 열어봐야 압니다.

1Password 는 좀 달랐습니다. 이건 실제로 끊을까 고민하고 대체품까지 써본 항목입니다. 가족 요금제를 쓰는데 실제로는 저 혼자 씁니다. 다섯 명까지 되는 요금제에서 한 명분만 쓰고 있는 셈입니다. 액수가 커서 못 견디겠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걸 알면서 계속 낸다는 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Bitwarden 무료 버전으로 옮기려고 했고, 셀프호스팅까지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안 옮겼습니다. 막힌 건 아니고 UI 가 별로였습니다. 기능이 없는 게 아니라 쓰는 맛이 떨어졌습니다. 비밀번호 관리자는 하루에 열 번 넘게 여는 물건이라 이 차이가 크게 옵니다. 자동 완성이 한 번에 안 붙거나 검색 결과가 한 번 더 들어가야 나오면 그 1~2초가 하루에 열 번 쌓이고 한 달이면 꽤 됩니다. 가격은 분명히 Bitwarden 이 낫습니다. 무료로도 충분히 쓸 만하고 프리미엄도 1Password 가족 요금제의 5분의 1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안 옮겼습니다. 셀프호스팅은 거기 얹힌 두 번째 짐이었습니다. 서버를 띄우고, Docker 를 올리고, HTTPS 를 걸고, 백업을 챙겨야 합니다. 그 서버가 죽으면 제 모든 계정 비밀번호가 같이 안 열립니다. 취미로 돌리는 라즈베리파이가 아니라 제가 살아 있게 책임져야 하는 인프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멈췄고 아직 1Password 에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해볼 생각은 있습니다.

이걸 겪으면서 제가 매달 내는 돈의 꽤 많은 부분이 기능값이 아니라 편한 값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능 목록으로만 비교하면 진작 옮겼어야 하는데 안 옮겼습니다. 하루에 열 번 여는 도구에서는 1초의 불편이 한 달 몇 달러를 이깁니다. 무료로 옮긴다는 건 돈을 안 낸다는 게 아니라 그 편함과 운영을 제가 떠안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게 남는 장사인지는 제 시급으로 따져봐야 하는데 그 계산은 하다 말았습니다. 귀찮음은 게으름이라기보다 아직 값을 안 매긴 노동 같은 거라고 봤습니다.

구독이라고 생각한 적 없던 것들

이 글을 쓰게 된 건 사실 여기부터였습니다. 정수기 렌탈, 인터넷과 TV, 전화 요금.

이걸 한 번도 구독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생긴 걸 보면 똑같습니다. 매달 알아서 빠져나가고, 쓰든 안 쓰든 나가고, 끊으려면 위약금이나 약정 남은 기간을 확인해야 하고, 계약할 때 조건을 저는 대부분 기억 못 합니다. 오히려 AI 구독보다 나쁜 조건도 있습니다. Claude Pro 는 이번 달에 끊으면 다음 달부터 안 나갑니다. 정수기 렌탈은 그게 안 됩니다. 약정이 있고, 중간에 끊으면 위약금이 붙고, 소유권이 넘어오는 시점이 계약서에 적혀 있는데 그게 언제인지 저는 모릅니다. 인터넷 약정이 언제 끝나는지도 모릅니다. 끊기 어려운 구독일수록 제 눈에서 더 빨리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AI 구독보다 훨씬 오래됐고, 앞으로도 훨씬 오래 나갈 거고, 총액도 더 큽니다. 다른 집이면 비데나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같은 게 더 붙을 겁니다. 렌탈이라고 부르지만 하는 일은 구독입니다. AI 구독료가 비싸게 느껴진 건 비싸서라기보다 새로워서였던 것 같습니다. 새로 생긴 건 눈에 띄고 오래된 건 배경이 됩니다. 매달 나가는 돈 중에 제가 의식하는 건 최근에 생긴 것뿐이었습니다.

총액이 왜 안 세어지는지도 생각해 봤습니다. 결제하는 길이 흩어져 있습니다. 카드 두 장, 계좌 자동이체, 앱스토어 인앱 결제, 통신사 합산 청구. 한 화면에 모이는 데가 없습니다. 명세서에 상품 이름이 아니라 스토어 이름이나 영문 약어가 찍혀서 봐도 뭘 산 건지 모릅니다. 금액도 고정이 아닙니다. 달러 결제는 환율 따라 달라지고, 인앱 결제는 기기 따라 다르고, 프로모션 가격은 갱신할 때 원래 값으로 돌아갑니다. 인터넷과 TV 와 전화가 결합 청구서 한 줄로 오면 그 안에서 각각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묶을수록 싸지는 대신 뜯어보기가 어려워져서, 결합 상품은 총액만 알고 내역은 모르는 채로 몇 년씩 갑니다.

이 중에 제가 고칠 수 있는 건 결제 수단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파는 쪽이 정한 표기 방식이고 청구 방식이라 손댈 데가 없습니다. 구독 총액이 안 세어지는 게 제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세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억울했습니다. 그렇다고 억울해하고 끝낼 일도 아닙니다. 세기 어렵게 만든 쪽을 탓해도 청구서는 저한테 오니까요.

왜 전부 구독이 됐을까

목록을 보다가 이 중에 원래부터 구독이었던 게 몇 개나 되나 궁금해졌습니다. 정수기는 예전엔 사서 썼습니다. 소프트웨어도 패키지로 사서 깔았습니다. 음악은 앨범을 샀고 영화는 빌리거나 샀습니다. 지금은 다 매달 냅니다. 막연히 소비자가 편해서 그렇게 된 줄 알았는데, 파는 쪽에서 보니 이유가 훨씬 분명했습니다.

한 번에 100만 원을 받는 것과 5년 동안 매달 2만 원을 받는 건 총액이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사업입니다. 뒤쪽은 매출이 예측됩니다. 다음 분기에 얼마가 들어올지 알면 그만큼 미리 쓸 수 있고, 회사 가치도 그 예측 가능성에 값이 매겨집니다. 사는 쪽에서는 들어가기가 쉬워집니다. 100만 원짜리 정수기는 고민하지만 월 2만 원은 안 고민합니다. 들어갈 때 한 번 하던 고민을 안 하게 만드는 대신 나갈 때 고민하게 만들고, 그 고민은 위약금과 약정이라는 모양으로 미리 심어둡니다. 만드는 쪽에 서면 저도 아마 같은 걸 고를 것 같습니다. 사는 쪽에 서 있을 때만 이게 불편하게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출을 올리는 방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값을 안 올리고 돈을 받는 단위를 쪼개는 겁니다. 넷플릭스가 딱 그랬습니다. 요금제 가격은 그대로인데 그 가격이 덮는 범위를 한 가구로 좁혔습니다. 예전에는 계정 하나면 됐는데 이제는 같이 안 사는 사람마다 5,000원씩 붙습니다. 제 경우엔 한 달 1만 7천 원이 2만 7천 원이 됐으니 거의 60% 가 오른 건데, 이걸 요금 인상이라고 쓴 기사는 못 봤습니다. 인상이 아니라 정책 변경이라서요. 가격표는 그대로 두고 가격표가 적용되는 범위만 줄이면 내는 돈은 오르는데 인상 뉴스는 안 나옵니다. 이게 무서운 건 화낼 데가 없다는 겁니다. 요금이 올랐으면 화를 낼 텐데, 요금은 그대로고 원래 이게 규칙이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규칙으로는 맞는 말이니까요.

회사 좌석도 비슷했습니다. 회사가 AI 를 들일 때 사는 단위도 사람입니다. 사람이 늘면 총액이 그만큼 곱해집니다. 좌석 값을 안 올려도 조직이 커지면 매출이 커집니다. 파는 쪽은 개인한테든 회사한테든 가격보다 단위를 만지는 것 같습니다.

AI 구독은 여기서 하나가 더 다른 것 같습니다. 판매 전략이라기보다 원가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만들어둔 콘텐츠를 보내주는 거라 제가 하루에 열 시간을 봐도 그 드라마를 다시 만들지 않습니다. 더 드는 건 대역폭 정도라서 무제한 요금제가 됩니다. AI 는 제가 물어볼 때마다 GPU 가 실제로 돕니다. 어제 한 질문과 오늘 한 질문에 각각 따로 돈이 듭니다. 원가가 쓰는 만큼 늘어납니다. 그래서 AI 구독에는 한도가 붙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액제처럼 팔지만 실제로는 쓰는 만큼 드는 구조고, 그 사이를 한도라는 이름으로 메웁니다. 제가 팀 플랜에서 막힌 것도 회사가 좌석을 아껴서가 아니라 이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좌석 등급을 올리면 한도가 올라간다기보다 회사가 대신 내주는 사용량 예산이 올라가는 거니까요. 그렇게 보면 한도에 막혔을 때 짜증이 났던 게 좀 머쓱해집니다. 제가 많이 쓴 만큼 어딘가에서 GPU 가 그만큼 돌았던 거니까요.

그렇다면 AI 구독은 앞으로도 다 쓰면 막히는 모양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처럼 마음 편히 무제한이 되려면 추론 원가가 대역폭 수준까지 떨어져야 할 텐데, 그때까지는 저 같은 사람이 회사 좌석 위에 개인 구독을 하나 더 얹는 일이 계속 생길 것 같습니다. 이건 제 씀씀이 문제라기보다 요금제가 생긴 방식과 제가 쓰는 양이 만나는 데서 생기는 문제로 보였습니다.

저보다 목록이 긴 사람들

AI 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저보다 이 목록이 훨씬 길 겁니다. 저는 개발자고 AI 를 코드와 글에 써서 언어 모델 몇 개로 끝나는데,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면 이미지 생성, 영상 생성, 음성 합성, 자막, 편집, 썸네일, 스톡 소재가 붙습니다. Midjourney, Runway, ElevenLabs 가격을 찾아보니 들어가는 요금은 몇 달러에서 십몇 달러인데 실제로 일에 쓰는 구간은 몇 배씩 올라갔습니다. 상업적으로 써도 되는지가 요금제에 걸려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ElevenLabs 는 유튜브 수익화나 클라이언트 작업에 쓰려면 최소 Starter 요금제여야 하고, 무료로 만든 결과물은 처음부터 수익화에 못 씁니다. 크리에이터한테 이 구독은 도구값이라기보다 영업 허가증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가는 요금으로만 세도 세 개에 한 달 몇십 달러고, 실제로 일하는 구간에 언어 모델과 편집 도구까지 얹으면 제 통신비를 훌쩍 넘길 것 같습니다. 저는 언어 모델 몇 개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 그쪽 일을 안 해봐서 모르는 거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도구들은 끊는 순간 만든 걸 다시 고칠 수가 없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프로젝트 파일이 그 서비스 안에 있으니까요. 넷플릭스는 끊어도 어제 본 드라마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래 제 것이 아니었으니 잃을 것도 없습니다. 영상 생성 도구를 끊으면 하던 작업이 잠깁니다. 내보낸 최종본은 남지만 그걸 다시 고칠 수 있는 상태는 안 남습니다. 예전 구독은 볼 수 있는 권리를 팔았다면, AI 도구 구독은 거기에 더해 제가 만든 것을 보관하고 고칠 권리까지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끊는 결정의 무게가 다릅니다. 넷플릭스 해지는 그달에 안 보면 되는 일이고, 제작 도구 해지는 제 포트폴리오가 얼어붙는 일입니다.

회사 계정에서도 같은 게 보였습니다. 회사 워크스페이스에 쌓인 제 대화는 제가 만든 건데 제 계정에 있지 않습니다. 회사를 나가면 못 가져갑니다. 관리자 열람 고지가 저를 찌른 게 바로 여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기록을 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달을 썼습니다.

세 번째 길도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돈을 안 내고 프라이버시를 챙기는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로컬 LLM 입니다. M4 맥북에서 로컬 LLM 으로 닷새를 살아본 적이 있는데, 데이터가 안 나가는 건 확실했습니다. 프롬프트가 노트북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갔고, 그게 주는 안심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문제는 대가였습니다. 느리고, 컨텍스트가 짧고, 도구 호출이 클라우드 모델이랑 비교가 안 될 만큼 불안정했습니다. 회사에 로컬 LLM 을 들이면 남는 장사인지 따져봤을 때도 같은 데서 막혔습니다. 계산이 맞는 경우가 분명히 있는데 그게 제 평소 일 대부분과 겹치지 않았습니다. 로컬 LLM 에도 값은 붙습니다. 큰 모델을 돌릴 만한 메모리가 달린 노트북은 수백만 원이고, 그건 구독료를 면제받은 게 아니라 몇 년 치 구독료를 미리 낸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성질은 다릅니다. 값이 안 오르고, 서비스가 문을 닫아도 안 죽고, 약관이 바뀌어도 제 쪽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로컬로 다 옮기자는 쪽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대화를 어디에 넣을지를 제가 나누는 쪽으로 생각이 갔습니다. 회사 워크스페이스에는 업무 코드와 문서, 사내 데이터랑 연결해야 하는 일을 넣고, 관리자가 볼 수 있는 길이 늘 열려 있다는 걸 알고 씁니다. 개인 계정에는 사이드 프로젝트와 글, 커리어, 개인적인 고민을 넣고 한 달 20달러를 냅니다.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건 로컬에 넣고, 느린 것과 하드웨어 값을 감수합니다. 오늘 제가 산 건 그중 두 번째였습니다. 20달러로 산 건 보안이 아니라 이렇게 나눠볼 수 있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눠보기 전에는 전부 첫 번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나눠 쓴다는 것도 결국 매번 창을 바꾸는 귀찮음을 감수하는 일이라, 1Password 를 못 옮긴 것처럼 1초의 불편에 약한 제가 이걸 얼마나 지킬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뭘 끊을지

다 적고 나니 뭘 끊어야 할지가 오히려 애매해졌습니다. 비싼 순서대로 자르는 건 답이 아니었습니다. 제일 비싼 게 제일 필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항목마다 몇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끊으면 뭐가 잠기나. Claude Pro 는 다음 달에 다시 사면 그대로입니다. 제작 도구는 작업물이 잠기고 클라우드 저장소는 파일이 잠깁니다. 잠기는 게 있는 구독은 사실상 끊을 수 없는 구독이라서, 그런 건 들어갈 때 더 따졌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는 제 쪽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잠기는데, 이 질문을 저한테만 대면 답이 틀립니다. 잠기는 건 제 것이 아니라 남의 것입니다. 제가 추가 회원 슬롯을 빼면 아버지와 동생의 계정이 같이 죽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계정과 시청 기록이 있는데 결제 스위치는 저한테 있습니다. 금액만 보면 만 원을 덜어낼 수 있는 제일 만만한 후보인데, 실제로는 전화를 두 번 걸어야 하는 항목입니다. 제 판단만으로 정리할 수 있는 구독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서로 대신하는 건가 서로 채워주는 건가. 회사 Claude 좌석과 개인 Claude Pro 는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채워주는 쪽이었습니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하나로 넘어가니까요. ChatGPT Plus 와 Google One AI Plus 는 꽤 많이 겹칩니다. 겹치는 만큼은 낭비입니다. 서로 대신할 수 있는 두 개를 같이 들고 있으면 그중 하나는 대개 습관인 것 같습니다.

최근 30일에 몇 번 열었나. 이게 제일 정직한 질문 같은데, 답하려면 사용 기록을 봐야 하고 대부분의 구독은 그걸 안 보여줍니다. 넷플릭스는 시청 기록이 있고 AI 도구는 대화 목록이 남아서 셀 수 있습니다. 정수기가 이번 달에 몇 리터를 뽑았는지, 클라우드 저장소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언제인지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사용량을 안 보여주는 구독일수록 끊을 후보에서 조용히 빠지는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게 없으면 아쉬울 것도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거꾸로 됩니다.

이렇게 걸러보니 당장 정리할 건 AI 쪽이 아니었습니다. 게임 구독 두 개, 그리고 금액도 만료일도 모르는 렌탈 계약이었습니다. AI 구독이 눈에 띄었을 뿐이지 문제는 거기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에 지출을 다 세지는 못했습니다. 게임 구독 두 개 금액을 모르고, 정수기 렌탈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고, 인터넷 약정이 언제 끝나는지 모르고, Google One 가격이 내린 게 반영됐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하게 센 건 AI 와 미디어뿐이고 그게 1년에 130만 원 정도입니다. 이게 전체의 절반쯤일 거라고 짐작하는데, 짐작이라고 하는 건 나머지를 안 세어봤기 때문입니다. AI 구독을 몇 개 쓰는지는 정확히 압니다. 방금 결제했으니까요.

저는 최근에 생긴 지출만 관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AI 구독이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 건 그게 제 눈에 들어와 있는 유일한 항목이어서였습니다. 구독의 시대는 정수기 렌탈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이미 시작돼 있었고, AI 는 그중에 제가 날짜를 기억하는 유일한 항목일 뿐이었습니다.

AI 거품이 터지면 제 개발 환경이 어떻게 되는지 세어봤을 때 제 커밋의 92% 가 외부 서비스에 얹혀 있었습니다. 그때 센 건 의존도였고 오늘 센 건 그 의존도에 붙은 청구서였습니다. AI 랑 일하면서 네 번 같은 데서 막혔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데서 두 번 막혔습니다. 6개월 전에 개인 구독을 끊을 때 같은 모델이면 같은 물건이라고 계산했고, 오늘 그 계산에서 빠져 있던 걸 값으로 치렀습니다.

이번 주말에 카드 명세서를 열어서 나머지를 마저 세보려고 합니다. 세고 나면 몇 개는 끊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결제한 두 줄은 아닐 겁니다. 그 둘은 용량과 소유를 사는 거고, 둘 다 아직 저한테는 모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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